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의 동역(3)
위트니스리
살렘 2011-08-12 , 조회 (48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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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움직이심 안에서의 동역: 1934-1936

C. 통문휘간(Collection of Newsletters)

1934년 여름에 이연여 자매는 광동성과 홍콩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기간 동안 위트니스리는 “<i>통문휘간</i>”의 편집작업을 맡도록 부탁받았습니다. 동시에 워치만니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그의 고향 복주에 갔습니다.

  1. 워치만니로부터 위트니스리에게

복주로 휴식을 취하러 간 그 기간에 그는 “통문휘간”의 발간에 관한 편지를 써서 위트니스리에게 보내 주었습니다. 이 편지는 “<i>통문휘간</i>” 제 9기에 실렸습니다.

    1934년 7월 6일

    이 형제님!


    (중략)
    “<i>통문휘간</i>”의 기사에 관해 내가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은, 앞으로 형제자매들이 어떻게 주님께 헌신했고, 어떻게 주님께 순종하고, 모든 일에서 주님을 으뜸 삼았으며, 어떻게 고갈된 생활에서 더 풍성한 생명으로 들어갔으며, 어떻게 범죄한 생활에서 벗어나 죄를 이긴 체험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한 더 많은 소식을 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방면이 외적으로 종파를 벗어나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일은 그리스도를 주로 전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종파를 벗어나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까? 나는 각지의 우리의 사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형제들이 하나님 앞에서 영적인 체험도 없이 다만 침례나 머리 덮는 것이나 종파 등 외적인 일들을 조금 안다고 해서 이것들을 자기 멋대로 선점함으로써 외인들로 하여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높이지 않고 다만 이 외적인 일들만을 주의한다고 오해하게 할까봐 정말 두렵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이 외적인 일들을 실행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이 외적인 일들을 실행했다고 해서 온전히 주님을 따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있는 무지한 형제들에게, 비록 우리가 이 외적인 일들을 믿을지라도, 우리의 간증과 우리의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이 외적인 일들에 있지 않음을 상기시켜 줘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최근 내 마음 속에 계속 두었던 일은 바로 동역자의 문제입니다. 많은 교파의 성직자들이 교회의 진리를 보았음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파의 분열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았을 뿐 아직 교파의 제도 또한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종파를 떠났지만 아직 제도를 거절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이 교파에서 사역자였기 때문에 거기서 나온 후에도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은사가 있는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들이 교파를 떠났지만, 아직 교파가 그들에게 준 일에서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리 가운데 불필요한 많은 사역자들로 가득하게 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이 이렇다고 믿습니다. 무릇 부르심이 분명치 않고 확실한 은사가 없는 사람은 그가 교파를 떠났을 때 마땅히 합당한 직장을 갖고 그 곳에서 주님을 위해 증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코 자신이 사역자였기 때문에 어떤 지방에서 사역을 해야 한다고 생각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 가운데 가장 위험한 일입니다. 한 지방에 사역자가 없고 아무런 역사가 없을지언정 함부로 행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오, 육체는 반드시 처리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외적인 일들을 준행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들이 준행해야 할 하나님의 뜻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무릇 내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외적인 것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중략)


    평안하시기를!

    <i>워치만니</i>

    1. 이연여자매로부터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에게

    같은 기간에 이 연여 자매는 남부 지방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여행 중에 그녀는 워치만니와 위트니스리에게 교회에 관한 편지 한 통을 보내주었습니다. 워치만니는 위트니스리에게 그것을 “<i>통문휘간</i>” 제 10기에 싣도록 요청하면서 다음과 같은 그의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1934년 7월 13일

    소개의 말: 다음은 이 자매님이 중국 남쪽 일대를 여행하던 중 나와 위트니스리 형제님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녀는 특별히 그녀의 편지를 “<i>통문휘간</i>”에 싣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이는 그녀가 자매로서 교회 문제를 논하는 것은 머리를 덮는 위치와 상반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편지가 각지에 있는 믿는이들에게 유익하리라고 생각되어 그 내용을 공개하는 바입니다. 이 기사에 대한 책임과 기타 모든 것은 나와 위트니스리형제님이 감당할 거입니다.



    <i>워치만니</i>

    이연여 자매의 편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 안의 워치만니 형제님과 위트니스리 형제님께:

    ...모든 일은 불을 거쳐야만이 비로소 무엇이 계수될 수 있고 무엇이 계수될 수 없는지를 알게 됩니다. 사람이 주님을 떠나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 제가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형제 자매들과 개인적인 교통을 가진 것이나 보고 들은 바를 인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또 한면에서 저에게는 두려움과 애탐도 있습니다. 샤토우에 있는 형제 자매들은 대부분 그 위에다 무엇이든지 쓰기만 하면 되는 한 장의 백지와 같고 다만 씨를 심기만 하면 되는 좋은 밭과 같습니다. 일 년 동안에 이미 형제님들 이십여 명과 자매님들 사오십 명이 생겼습니다(설교를 듣고자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타이샨의 자매들은 정말 끊임 없이 수고하고 힘을 다해 자신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매우 좋은 현상입니다.

    저는 이후로 형제님들이 다음 몇 가지에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1) 한 지방에 주님의 상이 있기 위해서는 그 지방의 형제들이 최소한 교회가 무엇인지 알고 그 상이 무엇을 위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아무런 명칭을 갖지 않으므로 그들이 종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많은 활동들 안에서 그들은 다만 변모한 종파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 자신들만이 교회이고 어떤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가장 위험한 종파가 될 것입니다.

    2) 만일 한 지방에서 형제나 자매들에게 은사가 없다면, 그들은 마땅히 합당한 직장을 갖고 직장에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다만 자기 자리에 앉아서 죽은 방식으로 전도하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그들에게서 죄인이 구원받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되며, 형제 자매들도 진보하지 못할 것이며, 결국에는 영적인 사망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교파로부터 오는 비웃음은 우리가 무시할 수 있지만, 우리의 간증은 어찌되는 것입니까? 만일 한 지방에 사역자가 없다면, 형제 자매 자신들이 살아 있는 방식으로 기도하고 주님을 기념하며 개개인이 간증하는 것이 제일 좋고, 일부러 사역자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형제나 자매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나 그들에게 은사가 없다면, 그 부르심은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 의심스러운 것입니다. 이러한 사역자 무리의 위험성은 바로 제멋대로 행동하거나 게으름에 빠지는 것입니다. 때로는 물질적인 면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깨끗한 사람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취할 것입니다.

    3) 형제나 자매에게 은사가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은사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의 은사를 넘어서서 섬길 때, 그가 사람들에게 공급한 것은 아마도 어떤 이상(理想)이나 오류일 것입니다.

    4) 심지어 우리가 “올바른” 편에 서 있을지라도, 우리의 모든 메시지들에서 우리는 성경 안에 있는 것들을 강조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 교파가 틀렸고 저 교파가 틀렸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추구하는 갈망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듣고 그들이 빠져 있던 오류에서 나와 성경을 따르기 위해 댓가를 지불하게 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사소한 것들을 가지고 많이 논쟁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성경 해석을 달리하기 때문에 갈라진다면, 그것은 형제회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가면 갈수록 저는 우리가 떡을 뗄 떼마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적은 수의 형제 자매일지라도 떡이 표명하는 것은 모든 구원받은 형제 자매임을 느낍니다. 그렇지 않다면 에베소서 1장 23절의 간증은 잃어버리게 됩니다.

    5) 한 지방 교회의 권위가 자매들 손에 있는 것을 그들 자신이 모를 경우, 형제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자매들에게 권면해야 합니다. 만일 자매들이 의도적으로 자기가 서야 할 위치에 서 있으려 하지 않는다면, 형제들은 그러한 곳에 함께 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지방에서 자매들은 정말 좋은데 형제들은 형식에 빠져 있고 죽은 옛 방식에 떨어져 있다면, 빛이 있는 형제들이 그들을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형제들이 듣지 않는다면, 자매들이 물러서고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형제들은 여전히 하나의 종파로서 거기에 다만 “자유”라는 두 단어를 덧붙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용서할 수 있지만, 알고도 순종하지 않는 것은 “동기의 문제”입니다.

    저 자신이 이러한 말을 하는 이유는 상해에 있는 형제들에게 어떤 장점이나 특권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형제님들이 입으로 전하는 면에서나 문서 방면에서 이 점들을 주의하시기 바라는 것뿐입니다. 저 자신은 한 자매로서, 이 편지를 통해 다만 형제님들과 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나의 관찰한 것을 보고할 뿐입니다.

    샤토우에 있는 형제님들은 복음 전파에 매우 열심입니다. 매주 두 차례 복음을 전하는 데, 매번 두 형제가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 일에 관해 저 자신에게 참말을 하라 한다면, 이 점에 있어서 상해에 있는 형제님들은 조금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진정으로 주님께서 사역자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최근에 들어 각지에 실직한 형제 자매들이 적지 않습니다.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일반적인 직장이 거반입니다. 비록 많은 형제 자매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사역자들의 필요는 여전히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면에서 사역자는 절대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시사하거나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게 해서도 안 됩니다.) 형제 자매들에 부족함을 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또 한면에서 형제 자매들은 책임을 짊어지는 사역자들을 부자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사역을 돌볼 뿐 사역자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제게 무슨 필요가 있어서가 아니라 제 관찰에 의해 다만 제 소견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주 안에서 이러한 말을 용서해 주시기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주 안에서 평안하시기를!


    <i>이 연여 자매 올림</i>

    상해 교회의 모든 형제 자매님들께 안부를 전합니다.

    1. 목적을 제시함

    같은 해 여름, 워치만니는 “<i>책임 형제들에게 주는 몇 마디</i>”를 썼고 위트니스리가 그와 함께 서명할 것을 요청했으며, 그 내용은 “<i>통문휘간</i>” 제10시에 실렸었습니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i>통문휘간</i>”은 일종의 가족 안에서의 소식을 전해주는 간행물로서 절대로 공개되지 않고 다만 우리와 같은 길을 가는 형제들에게만 보내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이것을 부쳐 드리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와 교통을 갖고 있고 이 안에 수록된 소식을 가지고 중보기도하는 책임을 지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여러분에게 보내주는 이유는 여러분이 이것을 “장막 밖”의 일반인에게 전하지 않고 “휘장 안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여러분이 우리의 일이 영적인 것이고 우리가 생명을 주의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깨달은 것은 다름아니라 <i>하나님께서는 지방 교회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내기</i>를 원하신다는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의 실제는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일의 외형은 지방 교회입니다. 현재 (외부) 교회들이 황폐할 때에, 우리는 새로운 “운동”이나 “단체”나 “기관”이나 “종파”를 일으킬 뜻이 조금도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각지에 있는 지방 교회라고 감히 자칭하기도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지방 교회의 위치에 서 있을 따름입니다. 이 간행물은 바로 각지에서 지방 교회의 위치에 서 있는 모임들의 소식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이 안에는 다른 것이 없고 다만 그리스도뿐입니다.


    우리에게는 본부가 없습니다. 각지에 대해 우리는 통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들의 행동을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그들의 머리이신 주 예수로부터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각지의 기도의 교통과 다양한 일에 대한 지침은 서로 상호적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어떤 필요가 있을 때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그 필요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답변은 다 영적인 것이지 공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은사에 속한 것이지 지위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서 디오드레베가 되지 말아야 하고 또한 니골라당의 계급을 형성하기도 원치 않습니다. 무릇 나가서 사역하는 모든 형제들은 주님에 의해 보내심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들과 동역할 뿐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우리와 영적인 책임을 함께 지기 원합니다.

    <i>워치만니</i>
    <i>위트니스리 올림</i>

    워치만니가 복주에서 상해로 돌아왔을 때, 위트니스리는 절강성 평양현의 교회들을 방문하도록 요청받았습니다. 워치만니의 격려가 있으므로 위트니스리는 그곳에 갔습니다. 그 해 10월, 워치만니는 제4차 이기는 자 집회를 갖기 위해 항주로 갔는데, 위트니스리는 평양에서 향주로 가서 그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것은 위트니스리에게 또 한 번의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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