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시력의 회복(펌)
자유게시판
수정처럼 2011-08-31 , 조회 (52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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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른 사이트에서 여러번 어느 형제님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가진 이상(vision)과 봄(seeing)에 관하여 성경을 읽다가 묵상하게 된 글입니다.

마가복음 8장에서 벳새다로 가신 주님이 [눈먼사람(소경)]을 치료하는 과정은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서로 나누기를 원합니다.

 

 [새번역]

 22 그리고 그들은 벳새다로 갔다. 사람들이 눈먼 사람 하나를 예수께 데려와서, 손을 대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23 예수께서 그 눈먼 사람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 두 눈에 침을 뱉고, 그에게 손을 얹으시고서 물으셨다. "무엇이 보이느냐?"

 24 그 사람이 쳐다보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보입니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습니다." 

 25 그 때에 예수께서는 다시 그 사람의 두 눈에 손을 얹으셨다. 그 사람이 뚫어지듯이 바라보더니, 시력을 회복하여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26 예수께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시며 말씀하셨다. "마을로 들어가지 말아라."

 

  1. 눈먼 사람은 누구인가

 

이 장면을 읽을 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눈먼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과연 우리는 이 [눈먼자들]과 관계없는가? 과연 우리가 정확한 시력이 회복되었는가? 저는 이 말씀이 [영적으로] 충분히 우리에게 적용이 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회복역 각주는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 내적 시력을 잃은 사람, 즉 영적으로 눈먼 사람(행26:18, 벧후1:9)을 의미한다."

 

 

2. 사람들(지체들)이 눈먼 사람을 데려옴

 

이러한 영적으로 눈먼 사람과 내적 시력을 잃은 사람들인 우리는 예수님께 데려가도록 인도하는 사람들(지체들)이 우리는 필요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영적인 시력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주변의 사람들(지체들)의 음성과 인도를 들어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는 참된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몸(the Body of Christ)을 관심하는 것이고, 몸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고 몸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3. 마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여기서 왜 예수님은 갑자기 이 눈먼 사람을 마을 바깥으로 데리고 가셔서 치유를 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까? 겨우 데리고 와서 치유하는 모습을 보기를 원했는데 왜 주님은 이 눈먼 사람을 데리고 나가셨을까요? 이런 영적시력과 내적시력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주님과의 개인적이고도 친밀한 관계회복의 시간] 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회복역 각주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영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노예-구주께서 그 눈먼 이와 개인적이고도 친밀한 시간을 가지심으로, 그 사람에게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요소를 주입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영적으로 눈먼 모든 이에게는 노예-구주와의 이러한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영적인 시력과 내적시력이 참으로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먼저는 (지체들)의 도움이 필요할 뿐 아니라, 또한 주님과의 친밀하고도 개인적인 이러한 관계회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접촉하고 주님을 만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4. 나무같은 것들이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본것이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본것은 때로는 이렇게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그럴때 마다 우리는 돌이킴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놀라운 안수와 고치심이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사람과 같은 비슷한 모양을 한 [나무같은 것들]을 보게 됩니다.

 

또한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이러한 고치심으로 우리는 눈이 완전히 열렸다고 착각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들은 아주 희미하고 분명하지 않는 것들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5. 다시(again)

 

저는 이 말씀에 부담이 있습니다. 우리가 본것이 부족할 때 우리는 이러한 [다시(again)] 안수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조금 본것으로 비슷하게 본것으로 만족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머지 않아 다시금 눈먼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다시금 주님의 안수하심을 기다리십시오..이것이 참된 시력을 회복하는 첩경입니다.

 

주여 저를 다시 방문하소서..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소서.. 새롭게 이상을 보기 원합니다. 이러한 마음 가짐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다른 것은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그분에게 자신을 내어드리고 다만 우리가 본것을 다 잊어버리고 그분께 메달리는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는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6. 시력을 회복하여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노예-구주의 이러한 세심한 손길은 참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우리가 본 이상이 부족합니까? 그러면 우리는 그분의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분과 개인적이고도 친밀한 시간을 가지고 그분의 다시 안수하시는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새롭게 이상을 보는 길입니다.

 

이상이 흐려지고, 나의 이상과 맞지 않다고, 조금 본 것으로 우리가 만족을 해버린다면 우리는 다시 영원히 회복할 길이 없습니다.

 

주님 참된 시력을 회복하여 똑똑히 보게 되도록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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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는 결코 사람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늘에서 보이신 이러한 이상(vision, 행26:19)을 감히 보았기 때문에

 

" 내가 하늘에 속한 그 이상을 거스리지 않고"(행26:19)

 

이러한 이상을 따라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려는 그 길은 바로 바울이 그토록 철처히 파멸시키기를 원했던 그 길(the Way)

 

"그 길에 속한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남자나 여자나 모두 결박하여...끌어오기 위한 것이었다"(행9:2)

 

그렇지만 이 길이 참된 길이기에 우리는 전혀 미동도,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질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그것만이 참으로 길입니다.

 

주님이 축복하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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