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생명의 교통, 혹은 신성한 생명의 흐름은 그 영의 교통이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너희 모두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은 근원이고, 그리스도의 은혜는 통로이고,
그 영의 교통은 그 통로의 흐름임을 본다.
우리의 누림을 위해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이 흐름이다. 그러므로 신성한 생명의 교통은 성령의 교통이라 불린다. |
신성한 생명의 교통은 믿는 이들과 사도들 사이의 교통이다(요일 1:3하, 행 2:42). 이것은 믿는 이들과 사도들 가운데 삼일 하나님의 공동 누림이 있다는 뜻이다.
믿는 이들과 사도들은 서로 접촉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합당한 접촉이 있을 때 거기에 쌍방 왕래(two way traffic)가 있게 될 것이며,
이 왕래는 교통(fellowship), 곧 공동 참여이다.
이 쌍방 왕래를 가질 때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신성한 생명을 누린다.
이것은 우리가 교통을 가질 때 신성한 생명의 누림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 쌍방 왕래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더더욱 좋을 것이다.
사도들을 접촉할수록 더욱더 우리는 신성한 생명을 누린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사도들이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있지 않다고 지적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옳은 말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도들의 글을 갖고 있다.
사도들의 글을 대할 적마다 우리는 사도들과의 교통 안으로 인도되고
또 우리와 그들 사이의 쌍방 왕래를 누린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이 왕래 안에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신성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