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림
메시지 6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수 있는 땅
우리는 석류나 올리브나무가 되기도 좋아하지만, 누리는 것에서 멈출 수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목표가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이 건축물은 삼일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이다. 우리는 포도나무의 열매, 포도가지, 밀과 보리를 가지고 건축을 할 수 없다. 우리에게는 건축 재료인 돌이 필요하다. 우리는 주님께서 시몬의 이름을 돌이라고 바꿔주신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밀과 보리와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올리브나무에만 머문다면, 다만 자신의 누림과 만족의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다. 그러나 돌과 철과 산과 동은 하나님의 필요를 위한 것들이다. 하나님의 목표를 위한 것들이다. 우리가 더 전진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목표가 건축이이며, 두 번째 이유는 우리에게 대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대적이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에 마땅히 전쟁에 참여해야만 한다.
지난 60년 동안 한국은 매우 놀랍게 발전했다. 많은 것들이 산출되었고 또 우리 가운데 건축되었다. 그런데 남한에 군대가 없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는 북한에 어떠한 군대가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남한에 군대가 없다면, 지금 우리는 여기에 있을 수 없다. 혹은 현재와 같은 상황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우주 가운데 부정적인 것이 없다면 그것은 아주 좋은 것이다. 다만 삼일 하나님과 착한 천사들과 우리만 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은 이와 같지 않다. 대적이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또한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해 이 대적을 처리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도 잘 알듯이 남한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주의 회복 안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주의 회복 안에 돌과 철과 같은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산에서 전쟁에 필요한 동을 캐내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일들, 많은 놀라운 일을 하고, 주님을 누리고, 집회에 함께 모이기도 하고, 주님을 섬기며, 복음을 전파하기도 하고, 사역의 말씀을 확산하기도 하고, 교회생활을 여러 군데 확산하기도 한다. 이것은 모두 놀라운 일들이다. 그러나 영적 전쟁을 싸우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나는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태어났다. 그때 내 나이가 아마 5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내가 어느 날 아침에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을 듣고 있었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아주 좋아했다. 언젠가 나의 어머니가 내가 송아지 앞에 앉아있는 그런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후원하는 경연대회에 그 사진을 보낸 일이 있다. 그래서 내가 상을 받았다. 그래서 작은 집을 지을 수 있는 장난감(레고)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그날 아침에 상으로 받은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다. 그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놀았다. 그런데 갑자기 뉴스가 나왔다. 프랑스의 침공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불러서 내가 어머니에게 다가갔을 때, 내가 들은 말을 엄마에게 해 주었다. “엄마, 비행기, 총, 군대들이 여기 있어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 말을 듣고 무슨 말인지 알았다. 그리고서 또한 그 전쟁을 통해 사람들이 죽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다만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돌아가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그것이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동안 그때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노르망디 해변에서 죽어갔다. 다섯 살 난 아이가 이 전쟁에 보냄을 받을 수 없다.
오늘날 주님의 회복 안에 우리에게는 아주 많은 영적인 어린아이들이 있다. 어떤 분은 매우 어리고, 또 어떤 분들은 영적으로 말해서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정도이다. 물론 그들도 주님을 누리고, 섬길 수도 있다. 복음을 전파할 수도 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분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싸울 수도, 건축될 수도 없다. 싸울 준비가 된 소수의 사람들은 아주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된다. 아주 악하고 사악하고 험악한 대적이 거기에 있다. 우리는 석류, 계란, 빵을 던질 수 없다. 우리에게는 무기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왕국, 그분의 경륜을 위해 마땅히 전진해야만 한다.
어느 날 나는 평소처럼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훈련에서 봉사하고 있는 한 자매님이 와서 내게 간단한 교통을 해주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젊은 한 자매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자매는 특별한 방식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 자매는 그 어린 자매가 함께 영적 전쟁에 참여할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나는 “자매님,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자매님은 그 몸의 지체입니다. 자매님은 전쟁하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것은 그렇게 할 때 자매님은 덮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덮어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러므로 이 자매님들에게는 어느 정도 철, 동이 있었다. 그들의 기도를 통해 결국 주님은 그 젊은 자매를 구원하셨다. 우리는 대적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춘다. 그럴 때 그리스도 안에서 이 대적을 처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쟁은 항상 건축과 함께 한다.
느헤미야서 4장에서 이스라엘은 성벽을 건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적이 이 건축의 봉사를 막고자 했다. 그러므로 한 면으로 건축하면서 한 면으로 싸울 준비를 해야 했다. 이 성벽에는 나팔을 든 사람들이 서 있었다. 대적이 어떤 한 지점을 공격하면 나팔을 불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집결해서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건축에 대해 그다지 체험이 있지 않다. 우리가 한 면에 건축에 대해 신경을 쓰지만, 때로는 이 전쟁을 주의하지 않는다. 나의 말은 주의 회복에 군대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물론 군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전쟁에 있어서 전략은 군사들이 세우는 것이 아니다. 체험이 있는 사람들이 전략을 세운다. 그전에 전쟁을 체험해 보았던 사람들, 체험이 있는 사령관들을 말한다. 어떤 계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가운데 계급은 없다. 그러나 체험이 있는 전사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건축과 전쟁은 함께 한다.
우리는 이 땅이 돌의 땅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은 특별한 종류의 돌, 곧 철이 있는 땅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물로부터 시작해서 올리브나무까지 계속하여 누린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로 조성되게 되고, 우리 안에 뭔가 견고한 것이 조성된다. 이것이 곧 돌이다. 주님 자신이 곧 돌, 모퉁이 돌이시며, 우리는 산돌들이다. 이 돌은 견고한 것이다. 돌은 묵직하고, 견고하고 무게가 있다.
우리가 믿음이 없이 온 한국 땅을 바라보면 그냥 흙이 보인다. 우리가 또한 서로를 바라볼 때 흙을 바라보는 것은 믿음이 필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말하자면, “지금, 저는 흙을 보지 못합니다. 돌들을 보고 있습니다!”이렇게 말하겠다. 장래에 남한에는 돌-사람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자매님들, 여러분은 다만 흙이 아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진흙처럼 굳어지는 흙이 아니다. 자매님들 안에 돌-사람이 계신다. 돌-구주께서 여러분 안에 살고 계신다. 대적에게 “나를 만지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에게 돌을 던지겠다. 나는 돌-사람이다.”라고 말하라. 우리는 돌-성을 건축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다. 그러므로 젊은 부부가 자녀를 낳게 되면, 그 아이는 아직 돌-사람이 아니다. 흙은 흙을 낳을 뿐이다. 그러나 얼마 후에 이 아이가 돌-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돌-사람이시오, 또한 그분은 돌-사람으로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복사해 넣고 계신다. 결국 우리는 견고하고, 강하며, 의지할 만한, 어떤 것도 우리를 흔들리게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왜냐하면 돌-구주께서 우리를 돌이신 그분과 똑같이 만드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흙-기도를 하지 않는다. 우리는 돌-기도를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주여, 당신의 건축을 위해 당신을 부릅니다. 한국에서 30개의 도시를 얻으시옵소서. 더 많은 돌을 산출하소서. 주님, 우리는 올리브나무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 부을 것입니다. 주님, 이것을 하셔야만 합니다. 우리는 돌로서 지금 기도합니다. 돌의 성을 건축하소서. 우리에겐 더 많은 지방교회들이 필요합니다. 이 30개의 지방에 교회가 없는 상황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상황을 얻으소서. 주님, 우리와 함께 전진하옵소서. 당신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소서. 악한 자를 처리하시고, 하나님의 왕국을 나타내소서. 이러한 악한 자 사탄을 약화시키소서. 그의 왕국을 훼파하소서.”라고 돌-기도를 해야 한다.
산돌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조성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건축물을 위한 것이다. 물로부터 올리브나무에 이르기까지 모든 체험은 하나님의 건축을 위해 돌들을 산출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았다면 우리는 복된 자들이다. 사실 우리의 영성은 건축의 문제이며, 몸의 문제이다.
때때로 나는 축복하는 문자 메시지나 메일을 받는다. 한 면에서 그것을 귀히 여기지만, 한 면에서 염려가 있는데, 그들이 내게 주는 그 영적 축복의 내용이 몸을 위한 축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러한 메시지들은 몸의 건축으로부터 나온 것들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개인주의적인 영성에서 나온 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그 목표는 돌의 성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의 석류로서 전시장에 놓아두기를 원치 않으신다. 우리가 “어떤 자매를 보라. 오, 온 주의 회복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류가 아니냐? 여기에 유리 상자를 만들어서 이 자매를 거기에 놓아두자. 오, 석류자매를 보라. 나에게 또 올리브나무인 형제가 있다. 영이 너무나 충만하다. 가장 놀라운 올리브나무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은 아니다. 그들은 단체성을 잃었고, 하나 안에 있지 않고, 건축되지 않았고, 섞여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유리창을 모두 깨뜨리고, 이 모든 석류와 올리브나무가 돌과 철이 되기 원한다. 하나님의 목표는 돌의 성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목표를 위해 체험한다.
어떤 형제가 자기 자신 안에서 자신이 권위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나 형편없는 일이다. 전적으로 타고난 생명 안에 있는 것이다. 그 [권위와 순복]의 책 일부를 읽고서, 자신이 대표권위라고 주장한다. “나는 여기서 대표권위자다.”라고 하면서 마치 보안관처럼 행동한다. 마치 미국에서 서부시대의 배지를 달고, 총을 들고 있는 보안관 같다. 이것은 아주 두려운 일이다. 영적 권위가 항상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 안에 있는 것이다. 먼저는 부활이 있어야 한다. 싹난 지팡이는 부활의 표시이다. 부활이 없다면 참된 권위란 없는 것이다. 부활 안에 사는 사람들은 타고난 영역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며, 부활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부활 안에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타고난 방식 안에 있을 때 그것을 감지한다. 그러나 타고난 사람들은 결코 타고난 것과 부활 안에 있는 것을 분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이러한 종류의 훈련이 주님의 인도를 통해 계속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주님이 허락하신다면 또 다른 종류의 훈련이 있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다른 종류의 훈련을 할 수 있다. 어떤 개요의 한 요점에 도달 했을 때 다섯 명의 형제님들을 청해서 말씀을 전하게 할 수 있다. 다섯 명의 형제님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무엇인지 형제님의 체험을 우리에게 말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강의를 하지 말고, 당신의 체험을 말해주십시오.”라고 요청할 수 있다. 또 다른 다섯 형제님을 불러서 이 형제님들이 말한 것에 대해 해석을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훈련을 하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말에 대해 평가를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훈련할 수 있다면, 이 훈련 교사는 “여러분은 결코 십자가의 표시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아내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형제에게 내가 “당신이 젊지만, 형제님은 정말 십자가를 압니다. 십자가가 형제님을 깊이 만졌습니다. 아마 이것에 대해 아내가 증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당신을 만졌기 때문에 이 십자가가 자매님을 만졌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이 앞에 다섯 자매님들을 불러서 부활 안에 사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다섯 자매님들을 불러서, 앞에 다섯 사람이 한 말에 대해서 해석을 해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마 열 자매님들이 모두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우리의 생애에서 10년을 절약하게 해 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어둠 가운데 있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의 상황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활이다. 이것이 부활 안에 사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위가 임하는 것이다. 어떤 형제들이 권위에 관한 책을 읽고 나서,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을 아는 형제자매님들에게 권위가 있다.
1971년도 어느 땐가 위트리스 리 형제님이 나의 가족과 며칠을 머무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집회가 끝나고 나서 함께 모여 다과를 나누었는데, 나의 아내가 정말 죽을 정도로 긴장을 했다. 그리고서 우리 자매가 형제님에게 “형제님, 왜 자매들이 항상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위트리스 리 형제님이 아주 간략하게 “헛된 영광. 또한 불확실성”이라고 답변했다.
교회생활 안에서 일반적인 문제의 90%는 자매님들에게서 온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모두 형제님들에게서 온다. 그런데 위트리스 리 형제님이 ‘불확실함, 보장이 없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사실 우리 형제님들은 이러한 안전과 보장, 특별히 보장에 대한 필요가 더 크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여러분이 정말 불확실한 상황, 보장이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자매님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주 긴장하고, 어떤 공포상황에 떨어진다. 교회에는 보장, 안전이 필요하다. 모든 자매님들에게 보호가 필요하다. 우리는 안전한 가운데 살아야만 한다. 우리의 영적 자녀들은 모두가 안전과 보장이 필요한데,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권위를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대적을 향해 권위를 사용해야 한다.
주님과 제자들이 한 날은 배에 있었다. 폭풍이 불었을 때 물이 배 안으로 들어왔다. 그럴 때 제자들이 아주 두려웠다. 주님은 잠자고 있었지만, 일어나서 권위를 사용하셨다. 만약 우리가 교회라는 배에서 참되게 권위를 사용하는 한 사람이 있다면 잠자게 될 것이다. 주님이 건너편으로 가자고 했다. 주님이 주무신다면 우리도 잘 수 있다. 만약 우리 가운데 권위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결코 보장이 없다.
지금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산으로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높다. 이 산의 꼭대기는 하늘 끝까지 도달해있다. 온 땅의 산은 작은 언덕에 불과하다. 참된 산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산-사람들이다. 우리의 영 안에 산이 있다. 우리가 산 위에 있을 때 하늘에 속하고 대적은 우리 아래 있다. 그는 공중에 있고 우리는 승리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아닌 모든 것은 반드시 심판 받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놋-사람으로 만들어 싸울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먼저 심판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심판 받지 않는다면 대적을 처리하는데 쓰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고려하는 그 부분을 대적이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심판 받았다면 빛나게 될 것이다. 우리의 팔과 발은 빛나서 대적을 두렵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모든 심판을 완전히 통과했다. 이제 그분은 빛나는 놋-사람이 되셨다. 모든 제자들은 주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장담했지만 시험에서 모두 실패했다. 하나님의 시험 중 마지막의 시험에 통과하는 길은 실패하는 것이다. 실패할수록 폭로되고 우리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그분만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아버지 나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소서’ 우리는 실패한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그리스도는 나의 덮개이다. 이것이 우리의 무기이다. 하나님의 건축을 위해, 영적인 전쟁을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성숙에 이르도록 이끌기 구한다. (2011년 6월 전국 봉사자 온전케하는 훈련 메시지 6 R. K 교통 중에서)
2011 부산 교회 하반기 복음 전파 방향
2011년 부산 교회 방향은 모든 성도들이 헌신을 통하여 복음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2011년 상반기에 지역 복음 집회와 복음 텐트, 복음지 배포를 통하여 적지 않은 축복을 얻었습니다. 또한 현재 30 복음 확산에 부산 교회가 지원함을 통하여 인근 경남 하동에서 간증을 선포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3주간 합천, 산청 지역을 지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진보와 맞물려서 부산시 안에서도 복음의 일에 대한 하반기 계획을 안내해 드립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이 시대에 주님의 부담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나가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고, 삼일 하나님과 연합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건축되게 하여 왕국을 가져오는 것입니다(마 28:18~19). 또한 사도행전 1장 8절은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임하시면 여러분이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은 우리의 상황을 적용해 볼 때 우리와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척과 친
구와 이웃을 말하고, 유대는 지금 남한 땅의 30개 복음 확산 개척 지역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번 하반기에는 예루살렘과 유대에서 복음을 전파하길 원합니다. 이를 위해 소그룹에서 봉사하시는 분들이 활력되어 영 안에서 불타서 실제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그룹을 복음 전파로 이끌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각 소그룹과 지역과 구역에서 다음 사항을 유기적이고 활력적으로 실행하시길 바랍니다.
(1) 모든 것을 포함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파함 ―― 지금까지 실행해왔던 복음텐트, 복음 테이블, 북 테이블, 지역 복음전파, 소그룹 복음 전파를 지속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한 예로, 소그룹 단위 복음 전파는 매주 기도집회나 소그룹 집회 후 10~20분정도 아파트나 빌라 인근에 복음지를 뿌리고, 사람들을 접촉할 수 있습니다.
(2) 복음애찬 집회 ―― 소그룹이나 지역 단위로 12월 중순까지 1회 이상 실행하시기 바랍니다.
(3) 구역별 ―― 복음 전파하여 얻은 새 신자들을 위한 온전케 하는 새 신자 프로그램(생명 기초반)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인수, 기도, 성도들 소식, 금주의 추구
구 역 |
주 일 |
기 도 |
소그룹 |
어린이 |
중고 |
대학 |
청년 |
1구역 |
149 |
4 |
102 |
20 |
6 |
48 |
|
2구역 |
100 |
16 |
69 |
33 |
14 |
6 |
|
3구역 |
120 |
13 |
65 |
17 |
8 |
20 |
4 |
5구역 |
107 |
58 |
8 |
14 |
|||
6구역 |
196 |
15 |
106 |
11 |
26 |
8 | |
계 |
672 |
48 |
400 |
89 |
68 |
74 |
12 |
* 주일 인수는 대학청년, 중고등부를 포함한 인수임
■ 기도의 부담
1. 모든 성도들이 헌신을 통하여 복음을 살아내도록
2. 복음센터(5구역) 집회장소 매입을 위하여
3. 30 복음 확산을 위하여(간증 선포가 예정일에 이뤄지도록)
4. 부산 교회 성경 세미나를 위하여
5. 2011년도 대입 수험생들을 위하여
■ 성도들 소식
1. #2, #6 - 장례
6구역 생활하시는 박문호 형제님(손정미 자매님), 2구역 생활하시는 박은실 자매님(추경훈 형제님)의 부친 박종탁 형제님의 장례를 9/20(화) 송도 고신의료원 장례식장에서 무사히 치뤘습니다.
■ 금주의 추구
① 구약 성경 읽기 : 창43:1 ~ 출8:19
② RSG(신약 회복역) : 마13:53 ~ 마18:35
③ 라이프-스타디 : 출애굽기M179 ~ M180
알리는 말씀
■ 네팔에 있는 교회 섞임 방문 및 미얀마 국제 특별 집회 재안내
▷ 일정 및 내용
① 네 팔 : 11/ 4(금) ~ 11/11(금), 7박 8일, 섞임 및 여행
② 미얀마 : 11/17(목) ~ 11/24(목), 7박 8일, 집회참가 및 여행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9/26(월)까지 집사실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경비는 신청자 확정 후 개별 통보 할 예정입니다.)
■ 국제 추수감사절 기간 특별집회 안내
▷ 집회 일시 : 11/24(목) 오후 7:30 ~ 11/27(주일) 오후 12:00
▷ 출국 및 귀국 예정 : 11/23(수) ~ 11/28(월)
▷ 집회 장소 : San Jose, California
▷ 신청금 : 200,000원. 취소 시 신청금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 신청마감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10/21(금)까지 신청금 입금 후 집사실로 신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 무주 교회 간증 선포 집회 안내
▷ 일시 : 10/16(주일) 오전 10:30 ~ 오후 12:30
▷ 장소 : 전북 무주군 당산리 1199-3 예체문화관 대공연장
▷ 연락처 : 김형태 형제님(010-2796-9910), 이기철 형제님(010-6558-0991)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10/4(화)까지 집사실로 알려주시고, 별도의 차량 안배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