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생명의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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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처럼 2011-09-30 , 조회 (30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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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1:4-5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충만한 기쁨을 위해

요한은 1장 4절에서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다” 어떤 사본들은 ‘우리’ 대신에’너희’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의 기쁨은 믿는 이들의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믿는 이들은 사도들의 교통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통은 영원한 생명의 흘러나옴이고, 기쁨, 즉 삼일 하나님에 대한 누림은 이 교통의 결과, 즉 그 영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은혜에 참여한 결과입니다. 신성한 생명에 대한 그런 영적 누림에 의해 삼일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기쁨은 충만하게 됩니다. 우리는 보통 기쁨을 중요한 항목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서신에서 기쁨은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생명의 교통 뒤에 오는 것으로서 세 번째 중요한 항목입니다. 신성한 생명은 교통을 낳고, 교통은 기쁨을 낳습니다. 당신은 기쁨에 찬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슬픔에 찬 그리스도인입니까? 슬픔에 차 있다는 것은 당신이 신성한 생명의 교통 밖에 있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기쁨에 차서 기쁨이 충만하다면 당신은 이 교통 안에 있는 것입니다.

신약은 신성한 생명 안에 있는 우리의 기쁨을 기술하는 데 세 단어를 사용합니다. ‘기쁨에 찬(joyful)’이란 단어에 추가하여, ‘기뻐하다(rejoice)’와 ‘기뻐 뛰다(exult)’가 쓰인다. 우리는 기쁨에 차야 할 뿐아니라 기뻐하고 기뻐 뛰어야 합니다. 기쁘지만 잠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 뛰기 위해서는 잠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를 기쁘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기뻐하고 기뻐 뛰게 합니다. 그러므로 함께 모일 때 우리는 기쁨에 차야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기를 위해 함께 모일 때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시편에서 심지어 그들은 주님께 즐거운 소음을 내라는 명을 받기도 했습니다(시 95:1, 98:4, 6). 종교는 즐거운 소음을 싫어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귀히 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기쁨이 충만한 것을 보기를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만일 우리가 신성한 생명의 교통을 누린다면 틀림없이 기쁨이 충만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기쁨이 충만할 때, 우리는 기뻐하고 기뻐 뜁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기뻐하고 기뻐 뛰는 그리스도인들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신성한 교통 안에서 신성한 생명을 누림으로 기쁨에 차서 교회 집회에 오도록 합시다.

 

하나님을 빛으로 누림

1장 5절에서 요한은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라고 말합니다. 앞 구절들에 있는 세 가지 중요한 것들-생명, 교통, 기쁨-에 더하여 사도들이 주님에게서 들은 추가하는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빛이시라는 것을 믿는 이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신성한 생명을 갖고, 그 다음에는 이것에서부터 신성한 생명의 교통을 갖습니다. 교통은 기쁨을 낳습니다. 우리가 이 교통의 기쁨에 찬 요소 안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빛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순서는 생명, 교통, 기쁨, 빛입니다.

 

한국복음서원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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