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한 빌라델비아=라오디게아
자유게시판
수정처럼 2011-10-10 , 조회 (31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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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빌라델비아를 볼 수 있고 라오디게아도 볼 수 있다.

이 둘은 교회의 위치에서 매우 비슷하다.

차이점은 빌라델비아에는 사랑이 있고 라오디게아에는 교만이 있는 것이다.

 

이 둘은 외면적으로는 분별이 없으나 라오디게아는 교만한 빌라델비아인 것이다.

 

 

나는 그들의 많은 일들을 다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만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그들 중의 어떤 형제가 말했다.

"우리 가운데서 찾을 수 없는 영적인 일이 있는가?"

어떤 형제는 새 잡지를 보면서,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새로운 것을 준단 말인가? 우리에게 없는 것이 그 무엇이란 말인가?" 라고 말하면서

잡지를 보지 않고 돌려보냈다.

 

또 어떤 형제는 말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큰 빛을 주셨으니 우리는 만족한다. 만일 다른 것을 읽는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이다."

또 한 형제는 말했다.

"우리가 갖지 않은 것이 그 무엇이냐?"

또 한 형제가 말했다.

"사람들이 가진 것을 우리는 다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사람들은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말을 들을 때 우리에게 즉시 떠오르는 것은

주님이 여기에서 지적하신 '나는 부자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라오디게아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대서양의 한 섬에 몇 형제가 있었다. 어느 날 태풍이 불어와 집이 많이 부서지고 '형제들'의 집과 집회소도 무너졌다.

몇 시간 후에 정부의 구제보다 먼저 전 세계의 '형제들'이 이십만 파운드를 보내 왔다.

 

그들 가운데 확실히 형제의 사랑이 있었으나 그중에는 교만해진 사람들도 있었다.

 

 

개신교는 라오디게아가 될 자격이 없다.

사데는 자기에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

내가 이십여 년 사역을 하는 동안 교파의 목사나 교사 중에 그들 자신이 신령한 것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들은 항상 부족하다고 말한다.

실패하고 약한 개신교는 사데요, 라오디게아가 아니다.

 

라오디게아의 특징은 오직 영적 교만인 것이다.

 

개신교에는 많은 죄가 있다.

그러나 영적 교만은 없다.

오직 하락된 형제들이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오직 하락한 빌라델비아만이 라오디게아로 변할 수 있다.

영적 풍성에 대하여 사데는 자신에게 없음을 잘 안다.

항상 자기들의 말은, "우리의 열심은 부족하다. 열심 있는 교우들은 다 가버렸다."는 것이다.

 

 

풍성한 것은 빌라델비아의 상태이지만 풍성을 과시하는 것은 라오디게아의 표시이다.

오직 라오디게아만이 과시한다.

빌라델비아의 위치를 떠난 사람이 사데로 돌아갈 수는 없다.

형제를 개신교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다만 라오디게아로 갈 수 있다.

그는 사도로부터 이어진 선을 넘어선 것이다.

그들은 지식만 있고 생명은 없으며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높다 하고, 스스로 크다 하는 사람들이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 : 17)

 

확실히 그들은 "나는 부자다.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정말 그들은 하나님 앞에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과시할 만한 이유가 있다.

나도 그들 가운데 과시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좋은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스스로 좋은 느낌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은 알 수 있어도 자신은 알 수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좋다고 말하지만 자기 자신은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영적인 일은 과시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 일은 자랑하고 스스로 부자라고 말한다고 해서 돈이 날아가거나 액수가 변하는 일은 없지만

영적인 일은 과시하는 즉시 사라진다.

 

 

누구든지 자신이 강하다고 말할 때 그의 강함은 사라진다.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을 그 자신은 몰랐다.

자신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는 것을 알 때 그의 얼굴의 빛은 사라져 버린다.

당신이 자신의 성장을 모른다면 당신은 복 있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상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잃는 것이다.

당신에게 영적 권위가 있는 것은 좋으나 당신 자신이 영적 권위가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은 좋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있고, 사실 그들이 갖고 있는 것도 매우 많지만 결국 하나님의 빛 속에서 볼 때

그들은 눈멀고 가난하고 벌거벗은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이 공과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라오디게아는 자신의 부요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성장을 원하지만 우리들 스스로가 그것을 알기를 원치 않는다.

 

교만한 빌라델비아=라오디게아  글쓴이: 이기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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