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는 사람의 죄를 씻는다
또 바울의 예를 들기로 한다. 아나니아가 바울에게 가서 그에게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고 말했다.
이 성경 구절이 말한바 침례가 당신의 죄를 씻을 수 있음을 보라.
천주교는 이 구절을 오용하여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개인적인 문제로 바꾸었다.
천주교는, 침례를 받으면 죄가 깨끗이 씻어지기 때문에 죽음이 임박할 때에
침례를 받는 사람의 죄도 씻어질 수 있다고 그릇되게 말한다.
그들은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문제와 관계되지 않고 세상 안에서의 문제와 관계됨을 모른다.
본래 바울은 세상 안에 있었던 사람이다.
이제 그는 주 예수를 믿고 또 보았기 때문에 마땅히 일어나 침례받아야 했다.
그가 침례받음으로 그의 죄가 씻어졌다. 그와 세상과의 관계가 끊어질 때에 그의 죄도 사라졌다.
만일 당신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뿐 침례를 받지 않았다면
이 세상은 여전히 당신을 그들 무리 안에 있는 한 사람으로 인정한다.
당신은 주 예수를 믿었다고 말하겠지만 그들은 보지 못했다고 말할 것이다.
당신이 물 속으로 들어갈 때에야 그들은 보게 된다. 그들은 만일 당신이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어찌 그처럼 어리석게 물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당신이 침례를 받을 때 곧 세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물 침례는 세상과의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침례는 사람으로 하여금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한다
베드로 전서 3장 20절은
『노아의 날 …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 겨우 여덟 명이라』고 말한다.
이 말씀 또한 침례가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함을 보여 준다.
물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다.
물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은 다 침례를 받고 죽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다 침례를 받았지만 나온 사람은 여덟 명뿐이었다.
그들은 다 침례를 받고 물 속에 잠겨졌으나 물 속에서 올라온 사람은 여덟뿐이었다.
바꾸어 말해서 그들에게 있어서 물은 사망의 물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 물은 구원의 물이다.
그들은 물에 잠겨질 때에 다 물 속에 머물게 되었지만 우리는 물을 통과하고 그 안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이 한 마디에는 또한 적극적인 사상이 약간 들어 있다.
홍수가 임함으로 모든 사람이 다 잠겨 죽었다.
그러나 물은 방주 안에 있는 여덟 사람만은 붙잡지 못했으며 그들은 물 속에서 나왔다.
이 여덟 사람은 구원을 얻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 멸망하였다.
오늘 온 세상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
오늘 내가 침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통과하여 그 안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의 이 나옴은 내가 나온 사람인 것을 표명한다. 이것을 가리켜 침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