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다시 오심의 한 가지 징조-재물을 쌓아 둠
물질
주님의 보석 2011-10-21 , 조회 (450)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주님의 다시 오심의 한 가지 징조-재물을 쌓아 둠
 
야고보서 5장은 ‘오호라’(원문 참조)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이 단어는 탄식의 표현으로서 신약에서 매우 드물게 사용된다. 사도 야고보는 여기에서 서술할 때 한숨을 쉬며 탄식하였다. 그가 탄식할 뿐 글로 쓸 수 없었던 것은, 그다음 단락에 서술된 일들이 완전히 잘못되었고, 그러한 일들은 발생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탄식하면서 “부자 여러분! 여러분에게 닥쳐올 비참한 일을 두고 울며 부르짖으십시오” 라고 말한다. 우는 것은 작은 소리로 흐느끼는 것이며 통곡하는 것은 큰소리로 몹시 슬프게 곡을 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부한 자들은 다 울어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작게 울어야 하고 크게 울어야 하는가? 왜냐하면 ‘그들에게 임할 고생’이 있기 때문이다. 즉, 장래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께서 정하신 고난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뻐하지 말고 슬퍼해야 한다.
요즘 각지에서 발생한 일들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볼 때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주님께서 오시기 전에 하나의 분명한 징조는 그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전에 없이 재산을 쌓아두리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처럼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재산을 소유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 세상 사람들은 재산을 쌓아 두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오십 년 전이나 백 년 전의 사람들이 돈의 많고 적음을 말한 것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돈의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과 그 의미가 다르다. 역대로 시대마다 부자가 있었지만 오늘날과 같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과거에 사람들은 부자를 호칭할 때, 다만 ‘백만장자’라고 했지만,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초당 천삼백 달러의 수입이 있고, 이십 분도 안 되어서 백만장자가 된다. 과거의 부자를 오늘날과 비교해 볼 때, 그것은 부자라고 말할 수도 없다.
또한 과거 이천 년의 세계 역사를 볼 때, 오늘날과 같이 재물이 한곳에 모아진 때가 없었다. 오늘날과 같이 자신의 재물이 한곳에 모아진 것은 역사에도 없는 일이다. 역사상 오늘날의 부자들과 같이 그렇게 많은 돈을 소유한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는 유래 없이 재물이 한곳에 모아지고, 부자들도 특별히 많은 것이 주님의 다시 오심의 징조 중 하나임을 보아야 한다. 재물이 한곳에 모아진 것은 말세의 징조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로마 제국이 부흥하고 강성하거나 천주교가 크게 발전하거나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을 짓는 것 등의 일이 있을 뿐 아니라, 재물을 모으는 것 또한 주님의 다시 오심의 또 다른 징조이다.
 
지나치게 많이 쌓아 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임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에서 입을 것이 있고 먹을 것이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말했다(8절).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을 뿐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너무나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은행에 많은 돈을 저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는 탄식하면서 부한 자들의 옷이 좀먹었으며, 금과 은은 녹슬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의복이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옷이 좀먹을 정도로 너무 많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사람들에게 입을 것이 있는 것으로 족하게 여기라고 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옷이 있을 뿐 아니라 쓸데없을 정도로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옷이 쓸데없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냥 쌓아 두어서 벌레가 먹은 것이다. 오늘 세상 사람들은 모두 물건을 쌓아 두는 데 필사적이다. 옷만 하더라도 이십 년간 입을 옷을 쌓아 두고 있고, 그것들 중에는 쓸데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이뿐 아니라 금과 은도 너무 많이 쌓아 두어서 녹이 슬었다.
그러므로 여기서 야고보는 당신의 옷이 좀먹고 금과 은이 녹슨 것이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요, 당신이 심판받는 근거임을 지적한다. 장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임을 기억하라. 어떤 사람은 자기의 쌓아 두는 행위에 대해 변호하겠지만 당신이 어떻게 말하든 간에 하나님의 손은 옷에 난 좀 구멍과 금과 은이 녹슨 것을 가리키면서 당신에게 “왜 너는 그렇게 쓸데없이 많이 쌓아 두었느냐? 라고 물으실 것이다. 금과 은이 녹슨 것은 당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줄 뿐 아니라 또한 불같이 당신의 살을 먹을 것이다. 아마 이것은 불못의 불을 가리킬 것이다. 이 불은 뜨거울 정도로 당신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고, 당신을 바짝 말리며 괴로움 당하게 할 것이다.
사람이 많은 것을 쌓아 둘수록, 더 문제가 발생하고 더 자유롭지 않으며, 죄도 많아진다. 오늘 공산화된 지역에서는 이미 야고보서 5장에 서술된 것이 사실임을 발견할 수 있다.
 
연락하며 정욕에 빠지고
자기를 살찌게 하여
하나님의 심판받기를 예비함
5절에서 야고보는 부한 자들이 물질과 금과 은을 쌓아 두는 것에 대하여 그들을 책망했다. 내가 진실로 말하거니와, 이 세상에 지금 이 시대처럼 그렇게 많은 부자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또한 어느 시대에도 노동자의 여분의 가치가 이렇게 많고 부자가 많은 적이 없었다. 또한 그들의 많은 부는 노동자의 임금을 남겨 놓음으로써 많아진 것이다. 이뿐 아니라, 이 부한 자들의 누림 또한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중세기 때에 귀족들이 상당한 누림을 갖고 있었다. 중국에서 지난 한두 왕조에서 오직 한두 왕가만이 이러한 누림을 가졌었다. 역사에서 우리는 이렇게 많은 부자가 있는 것을 보지 못했고, 또한 그들이 이렇게 많은 것들과 좋은 것들을 누린 시대를 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물질적인 것을 누릴 뿐 아니라 육체를 방종 가운데 두는 일도 상당히 많다. 여러분이 눈을 반만 뜨고 보더라도 이러한 일들을 볼 수 있다. 부자들이 많고, 부자들의 재물도 많으며, 노동자들의 품삯이 착취당하는 것도 많다. 이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다.
야고보는 5절 하반절에서 “도살의 날에 여러분의 마음을 살찌게 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뜻은 마치 가축을 기르는 사람이 가축을 잡기 전에 반드시 그것을 살찌게 하는 것과 같다. 한번은 어느 자매가 시골에서 닭 세 마리를 가지고 와서 푸저우에 있는 한 형제에게 먹으라고 준 적이 있었다. 그 형제는 닭이 아직 충분히 살찌지 않았다고 느껴 그것을 즉시 잡지 않고 며칠간 더 길러 좀 더 살찌운 다음에 그것을 잡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것의 의미이다. 오늘 재물을 쌓아두고 즐기는 것을 탐하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살찌게 하는 것이다. 이전에 없었던 그들의 연락과 방종은 그들을 살찌게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살찌도록 키워졌을 때 하나님은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하나님은 도살하러 오실 것인데 그날이 바로 그들이 멸망당할 날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가야 할 길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하기를 자원함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정세의 변화에 있지 않고, 재물로 점유당한 데에서 구원받고 벗어나는 것에 있다. 야고보서는 1장부터 5장 끝까지, 결코 그리스도인이 부자가 될 수 있거나 부한 자가 될 수 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야고보서는 교회 안의 가난한 자가 믿음에서 부요하다고 말하고(2:5). 5장에 와서는 재물이 부한 자들이 어떠한 일을 당할 것인가를 말한다. 세상 조류는 사람들이 다 재물과 물질을 쌓아 두는 데로 기울어지고 있다. 그러나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에게 오래 ‘참으라’(5:7)고 말한다. 이것은 당신이 가난한 상황을 바꾸려 하지 말고 세상의 영을 좇지 말하는 뜻이다. 세상의 영을 가진 모든 사람은 재물을 주의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가난한 상황을 바꾸거나 변개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것임을 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늘 성령은 다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라고 여러분을 부르고 계신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은 기회를 붙잡아 주님의 성령의 은혜로운 부름을 따라서 모든 것을 버리고 전체가 나와서 주님을 섬기기 바란다.
이번에 내가 푸저우에서 상하이로 돌아갈 때 얼마나 많은 형제자매들이 내 앞에서 울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는지 모른다. 만일 제가 당신의 말을 일찍 들었더라면 형제자매들뿐 아니라 교회도 무언가를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괴로워하는 것은 물건을 잃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물건을 잃어버림으로 형제자매들과 교회로 하여금 그것을 조금도 누리지 못하게 하고, 가난한 사람도 그것을 얻지 못하게 하고 복음도 그것을 얻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각지에서 편지로 이와 똑같은 상황을 알려 준 형제들도 있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부름을 받고 기회를 붙잡지 않는다면, 어느 날 우리 모두는 주님도, 교회도, 가난한 사람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인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야고보서 5장은 말세의 징조로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반드시 발생할 일이기 때문에, 여기서 야고보는 우리에게 계산을 잘 하라고 한다. 우리는 일찍 이러한 것을 잘 계산해 두어야 한다. 신약 성경은 마태복음부터 계시록까지 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친구로 삼고 부자를 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언젠가 가난한 사람에게 믿음이 있다고 말하고,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며, 가난한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은 부자가 될 준비를 하지 말아야 하고 또한 부자가 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야고보가 말한, 재물은 불같이 사람을 사르며 사람의 살을 먹는다고 한 것을 이미 보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물을 얼싸안으므로 불태워져서는 안 되며 또한 그것이 우리 살을 먹도록 해서도 안 된다. 그러므로 한 면으로는 헌신을 말하고, 다른 한 면으로는 도피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손에 재물이 있다면, 형제자매들과 가난한 사람을 위해 그것을 내보내고 드릴 수 있기 바란다. 나는 여러분 모두
나는 강요받아 가난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가난하게 되는 길을 가기 원합니다. 하루하루 나는 단순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들과 함께 가난해지기를 원합니다. 모세가 행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 중에 왕궁에 거하는 자가 없으므로 나도 거기에 거하지 않기를 원합니다.라는 사상을 갖기 바란다. 여러분이 이렇게 할 때, 교회는 간증이 있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징조를 봄으로 헌신의 부름을 좇아감
 
우리는 재물이 아직 쓸 수 있고, 아직 우리 손에 있을 때를 틈타 그것을 주님께 사용해야 한다. 야고보는 이 단락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노사 분규의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주의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내가 큰소리로 외치거니와 주님의 오심이 가까웠다! 우리가 혹 다른 징조는 보지 못할지라도, 여기서 말하는 징조는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길이 참으며, 징조가 나타나는 이때를 틈타서 재물을 우리 손에서 급히 내보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주님께서 두 번째로 오실 때, 우리 중에 그분의 두 번째 오심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없기 바란다. 처음 오셨을 때 미치지 못한 것으로 족하고, 첫 번째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족하다. 두 번째 오심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고, 두 번째 기회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워치만 니,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제 18장)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