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미워하듯 재물을 미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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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보석 2011-10-21 , 조회 (362)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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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미워하듯 재물을 미워함
 
재물에서 벗어나는 것은 단지 내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수중에 재물이 없어도 마음속으로는 그것을 생각한다. 사실상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보다 더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주 예수님은 영 안에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마 5:3)고 하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영 안에서 가난하지 않고 영 안에서 재물을 얻으려고 한다. 오늘 당신이 얻지 못했기 때문에 사모하는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아직 재물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에서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과 재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근심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찔렀다고 말한다(9-10절). 이 말은 부자가 되려는 사람도 재물의 세력 아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오늘 나는 여러분 모두가 참으로 재물의 세력에서 온전히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 한 걸음씩 전진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죄를 미워하듯 이 재물을 미워해야 한다. 죄를 미워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그릇되고 타락한 그리스도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당신이 죄악을 미워하듯이 재물을 미워할 수 없다면, 당신은 이미 타락했다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의 태도는 사도 베드로와 같아야 한다. 은과 금은 나에게 없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을 주겠으니,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십시오.(행 3:6). 당시 교회에는 은금은 없었지만 주 예수의 이름이 있었다. 오늘 우리는 처음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날의 세대를 바라보라. 갈수록 우리로 재물을 많이 쌓아 두지 못하게 한다. 그리스도인의 가난은 자원하여 가난하게 되는 것이다. 삭개오같이 구원을 받음으로 가난하게 되는 것이다(눅 19:1-9). 많은 사람이 가난하게 되는 이유는 환경이나 조상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박해를 받음으로써 가난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원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청산해 줄 것이 있으므로 가난하게 된 것이다. 지난번 내가 상하이에 갔을 때, 밖은 가난하나 마음속은 조금도 가난하지 않은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많은 형제자매들이 예전에는 부요했는데 지금은 주님을 위해 가난하게 되었어도 여전히 기뻐하는 것을 보았다. 장래 지옥의 가장 큰 고통은 만족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지옥에서는 사람의 정욕도 만족을 얻지 못한다. 그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지옥에도 여전히 죄가 있고 많은 죄가 있다(계 21:8). 그러나 사람들이 범죄하고 정욕을 만족시킬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세상적인 부를 얻고자 하지만 얻지 못한다. 이것은 이생의 고통만이 아니다. 내세에서도 사람들의 영혼은 재물을 사랑함으로 지옥 불을 거치면서 가장 고통스러운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얼마나 가치 없는 일인가!
 
내맡긴 재물의 용도
복음을 위하여
 
내맡긴 재물은 먼저 복음 전파에 사용된다. 마태복음 19장에서 젊은 관원의 일이 있은 후에, 베드로는 주님께 우리가 이미 복음을 위해 모든 소유를 버렸는데 장래 무슨 상을 얻게 되느냐고 물었다(마 19:27, 막 10:28). 주님은 그에게 이렇게 답변하셨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논밭을 버린 사람은 지금 이 시대에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논밭을 백 배나 받지만 박해도 함께 받으며, 오는 시대에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입니다..(막 10:29-30). 주님은 베드로에게 백 배나 받을 것이라고 대답하셨지만, 그는 모든 것을 버려야 했다. 여기서 말한 모든 것은 반드시 당신의 모든 것이어야 한다. 당신의 집과 전토 등을 포함한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무엇 때문에 버려야 하는가? 주님은 그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내맡긴 것의 첫 번째 용도는 바로 복음을 위한 것이다.
 
가난한 자를 위하여
 
두 번째로, 내맡긴 것의 용도는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주님은 우리 가운데 늘 가난한 자들이 있다(요 12;8)고 하셨다. 마태복음 19장에서 젊은 관원은 주님께, 어떻게 천국을 상속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주님은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라고 하셨다. 주님은 그에게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을 우하여 재산을 내놓고 그분을 따르라고 하셨다(마 19:21).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St. Francesco of Assisi)는 이 진리를 보고 모든 것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가난하기를 자원하는 생활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친첸도르프 (Count Zinzendorf)는 본래 백작이었고 아주 부유한 사람이었지만, 자기의 모든 재산을 내놓아 믿는 이들을 접대했다. 여하튼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성경의 기본 원칙이요, 요구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항상 가난한 자를 돌아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목적은 가난한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주로 당신으로 재물의 세력에서 벗어나 가난하게 되게 하려는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부해지기 위해 재물을 저축하지 말고 오직 믿음에서 부요해지며 또한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약 2:5, 고후 6:10).
 
형제자매들을 위하여
 
셋째로,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내맡긴 것이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공동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준다(행 2:44). 교회 안에 내 주위에는 많은 형제자매의 가정이 있다. 모든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부족함이 없게 하려면, 나의 여분의 것을 그들에게 주어야 한다. 교회에는 반드시 믿음의 가정이 필요하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음
 
당신은 입으로 당신의 마음을 주님께 드린다고 말하지만, 당신의 재물은 은행에 저축되어 있다. 당신의 마음은 조금 늦게 와도 상관없다. 먼저 은행에 있는 당신의 재물을 가지고 나와 드려야 한다. 오직 주님만이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만이 마음을 볼 수 있으시다(계 2:23). 그러므로 주님은 사람의 보물이 있는 곳에 그의 마음도 있다고 하셨다(마 6:21). 당신의 마음을 위에 것에 두기란 매우 쉽다. 그 길은 바로 먼저 당신의 돈을 하늘로 보내는 것이다. 당신의 재물을 땅의 은행에 두고서 당신의 마음이 하늘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의 재물이 땅에 있다면, 그의 마음은 땅에 것을 생각하게 된다. 주님은 결코 죄의 뿌리를 제거하는 일을 하지 않으신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우리의 재물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다만 만일 당신의 마음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재물을 하나님과 함께 두어야하고 재물을 하나님 편에 던져야만 당신의 마음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하셨다. 주님은 마음을 그분께 드리라고 하지 않고 다만 재물을 그분께 드리라고 하셨다. 재물을 먼저 하늘에 두어야 마음도 따라 하늘로 갈 수 있다. 지금 당신이 자신을 내맡긴다고 말한다면, 당신의 마음을 재물과 함께 하나님 앞에 가져가야 한다. 내가 다시 큰소리로 말하거니와, 주님은 우리에게 재물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이 재물을 따라가기 때문에 재물을 하늘에 두라고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의 마음이 재물을 따를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마음도 재물에 있다.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재물을 따라간다.
결단코 그리스도인은 돈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 사람만이 돈을 사랑한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일은 없다. 그리스도인도 돈을 사랑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도 세상 사람과 똑같이 다 재물을 따라간다. 유일하게 다른 점은,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하늘에 둔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만 재물을 하늘에 보내면 자연스럽게 당신의 마음도 하늘에 있게 된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돈을 사랑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재물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세상 사람은 재물을 어떤 한 곳에 두는데,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다른 곳인 하늘에 둔다. 이것이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이 다른 점이다.
우리에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느낄 수 있
는가? 재물을 드리면 된다. 그리고 당신의 여분의 재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 아플 정도로 드릴 때, 당신은 즉시 당신의 마음도 함께 나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때 당신에게 기쁨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쉬워지며, 하나님을 사
랑하는 마음도 흘러 나가게 될 것이다. 나는 다시 주님의 말씀을 반복하겠다. 그대의 보물이 있는 그곳에, 그대의 마음도 있습니다.(마 6:21). 이것에 이어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마 6:24). 주님께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했다면 섬길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섬기려면 당신의 재물이 나가야 한다. 나는 이 땅에서 무엇을 얻기 원치 않고 오직 하나님만 얻기 원한다(여기서 내가 정중히 말하건대, 하나님을 으로 살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재물을 땅에 쌓아 두면서 마음을 하늘에 둘 수 없다. 자기를 속이지 말라.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과 물건을 내맡기는 것이다. 마음은 쉽게 잃어버리나 물질적인 것은 잃어버리지 않는다. 내가 다시 강조하여 말하거니와, 다만 마음을 내맡긴다고 말하면서 물질을 내맡기지 않는 사람은 아무 소용이 없다. 만일 내 마음이 주님 앞에 나가기를 원한다면, 나의 물질도 주님 앞으로 가져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은 쉽게 변하고 동분서주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물질이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다. 만일 나의 보물이 하나님 편에 있지 않다면, 나의 마음은 안정되지 못하고 한순간은 하나님 앞에 있다가 한순간은 세상에 있게 된다. 주님은 어느 누구도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을 내맡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당신은 어느 정도 내맡기는 것이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이냐고 물을 것이다. 교회가 안배하도록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내놓고, 당신이 가장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이 바로 당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고통을 느낄 정도로 드릴 때가 바로 그에게 가장 기쁨이 충만할 때이다. 물론 사람은 기쁠 때 웃지만, 어떤 때는 기뻐서 울기도 한다. 울 정도로 웃을 수 있는 것이 가장 기쁠 때이다. 그 이유는 거기에 특별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의 길을 가야 함
 
내가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에 반드시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옷을 벗어 땅에 깔아 드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수 없다. 이것은 그들이 나뭇가지나 옷으로 길을 만든다는 말이 아니다.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입성하실 수 있도록 먼저 가지를 꺾어야 하고 많은 옷들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은 왕의 신분으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지나가시도록 나뭇가지를 들고 옷을 벗어 깔아 드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복음이 나가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자신을 드림으로 길이 되어야 한다. 다만 가지를 드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옷을 벗어 깔아 드리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반드시 우리 자신이 길이 되어야 한다. 가령, 우리가 무엇을 보류하여 내놓지 않은 것이 있거나 우리들이 거꾸러지지 않는다면, 주님께 길이 없게 된다. 주님께서 우리의 몸을 통과하신 후에야 비로소 복음이 길을 얻게 된다. 우리는 복음이 차나 말이나 나귀같이 우리를 길로 삼아 신속히 달려가 더 많은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복음을 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일에 있어서 여러분은 강하고 용감해야 한다. 만일 여러분이 강하고 누가 다스리는가를 상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중국 전역에 복음을 쉽게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서 길을 얻으시고 복음의 길이 열린다면 우리는 쉽게 중국 전역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다. 주님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의모든 것을 계산하지 말고 드려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허비하고 남기지 말아야 한다. 주님을 위한다면 어떤 것도 자신에게 남기지 말아야 한다.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드리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조금도 보류하지 말고 세상을 위한 것이 없어야 한다.
 
이 세상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는 주님께 우리가 세상을 만지지 않도록 구해야 하며 우리에게 길이 있도록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도록 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강한 그리스도인과 통쾌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헌신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다 근심하며 떠나간다. 당신의 헌신이 완전할수록 기쁨이 더한다. 헌신하지 않는다면 당신 안에 있는 생명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워치만 니,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제8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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