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내맡김 천주교의 타락과 진리의 상실
중세기는 로마 천주교가 가장 흥왕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때에 교회 안에서 전해진 말씀은 점차 변질되어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전해진 것과 큰 차이가 있게 되었다. 사복음서에서,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은 사람이 죄악에서 벗어나는 것을 주의하셨을 뿐 아니라 더욱 더 사람이 재물에서 벗어나는 것을 중요시하셨다(마 6:19-
24, 19:16-26).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전파한 것을 언급하는데, 그것은 한 면으로 사람들을 재물에서 나오게 하며, 또 한 면으로는 죄악에서 나오게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기초는 이 두 방면 위에 놓였다. 계속 죄 가운데서 사는 죄인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듯이, 만일 사람이 계속적으로 재물 안에 산다면, 그도 역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사람이 주님을 섬기려면 먼저 소극적인 면에서 죄악과 재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4세기에 들어서서 교회 안에 세상을 가지고 들어옴으로, 그 결과 교회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고 오히려 부요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 가운데서 점차적으로 초기 주 예수님과 사도들이 전파한 말씀들이 변질되었다.
초기의 교회는 모두 사도들의 가르침을 준행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죄악과 재물에서 떠나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인
이 죄를 용납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답지 않을 뿐 아니라 재물과 세상을 용납하는 것도 그리스도인답지 않았다. 그러나 사도들이 지나간 후로
교회는 점차적으로 재물에 관해 느슨해져서,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죄 짓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것은 가르쳤지만, 믿는 이들이 재물을 소유하는 것을 용납했다. 타락은 끝이 없기 때문에, 그 후로 더욱 하락하여 중세기에 이르렀다. 6세기부터 교회는 천주교로 변질되어 재물을 용납할 뿐 아니라 죄악까지도 용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부요해지기 위해 재물을 쌓아 놓았지만, 영적인 일에서는 형편없이 가난하게 되었다. 그 후에 천주교에는 심지어 연옥의 가
르침이 들어와 돈만 있으면 죄를 속량하는 면죄부를 살 수 있게 되었다. 후에 로마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지으려 할 때, 헌금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대대적으로 면죄부를 팔았다. 그리하여 간음을 한 사람은 4장만 구입하면 속죄 받을 수 있고, 살인한 자는 12장을 구입하면 되고, 거짓말한 자는 2장만 구입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규정을 내렸다. 그러자 사회는 흑암에 쌓이고, 혼란스럽게 되고, 비정상적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
그러나 사람이 가장 어두울 때, 하나님은 여전히 그분의 회복 역사를 시작하셨다.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는 마르틴 루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은 루터 한 사람에게만 회복이 있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와 같은 시기에 그와 똑같은 것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교회가 타락하고 나서 900년 후에, 개신교가 다시 새롭게 그리스도인은 죄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루터 때부터 오늘날까지 지난 몇 백 년 동안, 개신교는 하나님의 진리를 하나씩 회복하였다. 교회가 먼저 본 것은 그리스도인은 죄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역사 가운데 무디(Moody), 스펄전(Spurgeon), 피니 (Finny)등과 같은 부흥의 영적 거인들은 모두 죄에서 떠나는 것을
중요시했고 이것을 전파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만일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면, 반드시 성실해야 하고 거짓말이나 더러움이나 음란 등의 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알려 주었다. 그러나 교회는 시종 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즉 모든 것을 팔고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르라는 말씀을 전할 담력을 갖지 못했다. 나는 교회 가운데 참되게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께 감사드린다. 이 땅에서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끊어진 적이 없었다. 먼저는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St. Francesco of Assisi)이다. 본래 그는 부잣집 아들이었는데, 며칠 내에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스스로 가난하기를 자원하는 생활을 실행했다. 그 후에 하나님은 모라비아에서 친첸도르프 (Count Zinzendorf)를 일으키셨다. 그는 귀족이었지만, 주님을 위해 자기의 재산으로 성도를 접대함으로써 모라비아의 형제들(Brethren of M
olavia)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후에 또 에바(Eva) 자매가 있었는데, 독일 사람인 그녀도 자원하여 가난하게 되는 길을 갔다. 지난 세기에 이르러 형제회가 주님에 의해 일으켜졌는데, 그들에게서 진리가 아주 많이 회복되었다. 이것은 그들 가운데 다
비(Darby)와 켈리(Kelly)등, 수십 명의 형제들이 가난하기를 자원하여 모든 것을 팔고 주님을 따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님은 그들 가운데서 길을 가지셨던 것이다. 1922년 내가 갓 구원받았을 때, 나 역시 이 진리를 보고 모든 것을 버리고서 주님을 따르는 것을 훈련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의 주님의 회복
교회 역사 전체에서 말한다면, 이제 우리의 때가 온 것이다. 중국에서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일어나 이 길에 들어섰다. 현재 모든 것을 버린 그리스도인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과거에 교회는 사람이 모든 것을 버려야만 주님을 따를 수 있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으며, 모든 것을 버리지 않고서는 그리스도
인이 될 수 없다는 이 진리를 전할 담력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1943년 옌타이에서 성령께서 강한 역사를 시작하심으로 많은 형제자매들이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고 주님을 위해 계속해서 모든 것을 바쳤다. 후에 상하이에서도 이것을 이어갔고, 푸저우에서도 이것을 이어갔다. 오늘 홍콩에서도 이것을 이어가기 바란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성경의 진리를 따라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고, 주님을 섬기려면 철저해야 한다. 철저하지 않으면 유용하지 못하다. 가장 가련한 사람은 바로 이것도 얻지 못하고 저것도 얻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에게는 세상의 기쁨도 없고(요 15:19), 영 안에서의 주님에 대한 기쁨도 없다. 세상의 기쁨을 조금 얻고, 그리스도인의 기쁨도 조금 얻으려는 사람은 철저하지 않고 성장이 없다.
자신을 내맡김의 의미-모든 것을 팔고 재물의 세력에서 벗어남
자신을 내맡김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모든 것을 파는 것과 동일하다. 모든 것을 파는 것은 곧 재물의 묶임에서 벗어나 재물의 세력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복음서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사람이 죄에 매일 뿐 아니라 더욱 재물에 매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은 우리에게 죄가 하나님과 대립된다고 말하지 않고 재물이 하나님과 대립된다고 말한다. 성경은 또한 죄를 사람의 신이라고 말하지 않고 재물을 사람의 신이라고 말한다. 마태복음 6장에서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재물은 대립되고, 우리는 동시에 두 하나님을 섬길 수 없으며, 하나님을 섬기든지 재물을 섬기든지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24절). 재물보다 심하게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은 없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재물은 많은 사람들
을 얻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죄를 섬기지는 않겠지만, 모두가 재물을 섬기고 있다. 오늘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과 재물 둘 다 섬긴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죄를 떠나야 할 뿐 아니라 더욱 재물의 힘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신이 자신을 내맡긴다는 것은 바로 오늘 이후로 당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모든 것을 주님께서 쓰시도록 드린다는 것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당신은 재물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늘 이곳에 있는 교회 안에 두 무리가 있다. 한 무리는 재물을 만지는 사람이고, 다른 무리는 아직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다. 여러분은 모두가 재물의 세력에서 벗어나기 원하는가? 그 길은 바로 모든 소유를 팔고 주머니 속에 있는 재물을 내놓는 것이다. 오늘 복음의 필요가 있고, 가난한 사람과 많은 형제자매들에게 필요가 있다. 이것은 모두 우리 자신을 내놓아야 함을 말해 준다. 자신을 내맡긴다는 뜻은 바로 재물의 등뼈를 끊어 버리고 오늘 이후로 다시는 재물의 세력 아래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교통이 아마도 여러분 학생들에게는 쉽다고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재물을 만져 본 형제자매들은 재물의 일에서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재물의 위력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여러분에게 이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당신의 모든 소유 중에 불의한 방법으로 얻은 것은 한 가지도 없을 것이다. 당신은 죄를 범하거나 남을 속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재물을 보류해 두면, 당신은 재물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혹 당신은 이 말이 너무 무겁고 강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이렇게 철저해야 한다. 주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막 10:29).
우리는 한 차례 철저하게 모든 것을 파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것을 판 후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으로 우리에게는 점차적으로 수입
이 있게 될 것이다. 그때 재물이 다시 돌아와 우리 몸에서 세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중 어떤 사람은 몇 년 간격으로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팔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죄를 두려워하듯이 재물을 두려워해야 한다. 주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번에 우리를 죄의 형벌에서 구원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순간순간 그리스도 예수를 화목제로 취해야 한다(요일 1:7-
2:2).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한 번 모든 것을 팔았다고 해서 재물의 문제가 영원히 해결되었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한 번 모든 것을 판 후에,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계속적으로 재물을 내보내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 앞에서 길이 있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한 번 모든 것을 버린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철저한 청산과 끝냄과 처리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모든 것을 파는 데 중점이 있지 않고 철저하게 하는 데 중점이 있다. 철저함은 청산을 요구하고, 분명한 끝냄과 처리를 요구한다. 죄와 관련된 것은 팔 수 없으며, 그것들은 불태우고 깨뜨려야 한다. 사도행전 19장에서는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사
역으로 강한 간증이 세워지자 본래 마술을 행했던 많은 사람들이 책을 가지고 와서 쌓아 놓고 불태웠다. 그 책값을 계산하니 은 5만이 되었다(19절). 만일 유다가 거기에 있었다면 그들에게 화를 내면서, “어찌 이것을 허비하는가? 이 책들을 20퍼센트 싸게 판다 해도 은 4만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을 것 아닌가”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께서 불로 태우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책들은 죄와 관련되고 그 안에 죄가 있으며 부당한 것들이기 때문에 불태워야 하는 것이다.
상하이의 한 형제는 좋지 않은 내용을 담은 서적들을 파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인민화(중국의 화폐)로 7000원어치를 팔 수 있었고, 그것으로 생활했었다. 그의 책 전체의 가격은 인민화로 80만원쯤 되었다. 지난 몇 년간 그는 직업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교회에서 개인 자료를 기록할 때, 그는 항상 직업란을 쓰지 않았다. 만일 누가 그에게 직업을 물어보면, 그는 항상 얼버무리고 지나갔다. 어느 날 주님의 역사로 그는 속에서부터 이것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고, 반드시 이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는 형제들에게 와서, 모든 것을 내놓기를 원하니 형제자매들이 대신 불태워 달라고 요구했다. 장위즈(張愚之)형제는 이것을 듣고 아주 기뻐하면서 그를 대신해 불태워 주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듣고 이 일을 저지했다. 아브라함이 친히 이삭을 죽이려고 했듯이 그 형제가 손수 불살라야 한다고 말했다.(당신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자신의 정결함을 보존해야 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불태우지 말아야 하고, 사서 그것을 태우지도 말아야 한다.)
아직 재물을 만져보지 못한,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청년 형제자매들, 여러분은 지금부터 자신의 정결함을 지켜야 한다. 여러분은 다만 그런 세계의 밖에 서서 여러분의 정결함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도록 구해야하며, 여러분이 재물에 대하여 눈이 멀기를 구하고, 보기를 원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은 재물을 향해 가고 있다. 나는 여러분이 정결한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여, 지금부터 늙을 때까지 재물의 세력 아래 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결코 우리가 부자가 된 후에야 재물에서 벗어나라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주님은 재물에 대해 ‘불의한 재물’(눅 16:9)이라고 하셨다. 이는 그 본질이 불의하고, 하나님과 대립되며,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죄에서 벗어나듯이 재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워치만 니,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제 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