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람의 산출
복음 부담
주님의 보석 2011-10-22 , 조회 (33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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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람의 산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를 우리의 대치로 취하는 것은 옛 창조로부터 나와 새 창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륜은 먼저 옛 창조를 산출하고 다음에는 옛 창조로부터 새 창조를 낳는 것이다.
하나님의 새 창조는 새 사람이 주가 된다. 옛 창조로부터의 새 사람의 산출은 출생의 과정과 관련이 있다. 마가복음 13장 8절에 있는 「산고」라는 표현은 새 사람의 출생과 관계된 산고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과 그분의 다시 오심 사이의 기간은 새 사람의 분만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새 사람이 분만되는 기간의 끝 무렵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승천하신 이래 19세기 남짓한 역사를 되돌아볼 때, 수세기에 걸쳐서 많은 사람들이 새사람의 분만을 위한 출산의 고통을 체험해 왔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과 세상의 모든 문화와 문명들은 이러한 고통들의 일부였다. 심지어 지나간 전쟁까지도 출산의 고통의 일부였다. 이러한 출산의 고통은 오직 한 가지를 위하는데, 이는 곧 새 사람의 산출이다. 출산의 고통을 안고 있는 오늘날 세계 정세는 새 사람의 산출을 위한다. 내가 세계 정세를 주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복음 전파와 핍박의 고난
당신은 지난 천 구백여 년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1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각 세기는 복음 전파와 고난을 통한 새 사람의 분만을 증거한다.
우리는 왜 새 사람이, 핍박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복음 전파에 의해 출생되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타락한 때로부터 옛 창조는 하나님의 대적 사탄의 강탈하는 손 아래 있어 왔다. 하나님은 이제 그분의 옛 창조로부터 새 사람을 산출하는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러나 대적은 이같은 일들을 허락하길 원하지 않으므로 모든 것들과 모든 문제들을 동원하여 새 사람의 산출을 방해하기 위해 하나님의 경륜을 거스른다. 이러한 이유로 핍박이 있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일어선 때로부터 핍박은 계속 일어났다. 핍박은 먼저 그들의 종교를 갖고 있는 유대인들로부터 왔으며, 정치 안에 있는 로마 지도자들을 포함하는 이방인들로부터 왔다. 역대로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에 대한 핍박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천 구백여 년 동안 두 가지 일이 계속되어 왔는데 이는 복음전파와 핍박이었다. 이러한 일들이 끝나지 않는 것은 주님의 주권이다. 역대로 주님의 신실한 자들은 어떤 대가, 심지어는 그들의 목숨도 불사하고 복음을 전파했다. 한편 옛 사람과 그 사회와 문화로 된 옛 창조를 점령하고 있는 사탄은 대대적인 핍박을 감행했다.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사탄의 반대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그 결과는 사탄이나 세상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궁극적인 결과는 새 사람의 완전한 분만이다. 새 사람의 출생을 위한 긴 과정 후에 주 예수는 성도들이 휴거될 때에 새 사람을 영접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이것은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휴거가 있을 것이며 이 휴거가 새 사람의 분만을 마무리할 것임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보고 마가복음 13장을 다시 읽는다면 우리는 말씀으로부터 신선한 빛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장에서 주님은 그분을 친밀하게 따르는 자들을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이러한 이해 안으로 이끌고 계셨다.
하나님의 경륜의 중점
하나님의 경륜의 중점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새 사람을 산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옛 창조를 끝냈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 창조를 발아시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으로 이끌려지는 것은 옛 창조의 끝남 안으로와 새 창조의 발아 안으로 이끌려지는 것이다. 이 발아 안에서 우리는 살아 있으며 놀랍고 기이한 그리스도의 인격, 즉 하나님-사람이신 만유를 포함한 우주적인 대치를 누린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주적인 대치로 누릴 때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실 것이다. 이는 그분이 그분 자신으로 모든 것을 대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새 사람 안에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골 3:10-11)고 말한다. 새 사람 안에는 인종 차별이 없다. 새 사람 안에는 문화나 사회적인 계급이 없다. 대신에 그리스도 곧 우주적인 대치가 만유이시며 만유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는 옛 창조 전체를 대치할 것이며 그분은 새 창조 전체가 될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일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안으로 이끌려질 필요가 있다. 그분의 부활 안에서 우리는 만유를 포함한 과정을 거친 내주하는 생명 주는 영이신 그분을 누린다. 이 우주적인 대치이신 그 인격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갖추신 분이다. 오늘날 이 놀라운 인격은 복합적인 영으로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분의 표현을 위한 새 사람을 소유할 수 있도록 우리의 누림이 되신다.
나는 우리 모두가 마가복음 13장 8절에 있는 「출산의 고통」이라는 말과 관계 있는 이상을 보기 위해 빛을 받게 되기 바란다. 이러한 출산의 고통은 새 사람의 산출을 위해 요구된다. 복음과 복음 전파를 통해 발생하는 이 분만은 항상 핍박과 병행한다.
복음을 전파하러 가는 곳마다 우리는 핍박의 고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가르쳤는데 어떠한 고난도 받지 않고 항상 열렬한 환영만을 받았다면 당신의 행동들이 참으로 주님께 속한 것인지 물을 필요가 있다. 만일 당신의 전파나 가르침이 주님께 속한 것이라면 당신은 핍박에 직면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새 사람의 분만이 항상 출산의 고통들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늘날도 출산의 고통들이 있는 이 출산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마가복음 라이프 스타디 81-85쪽)
많은 복음 전파자들
우리는 마가복음 1장에 오직 한 분의 복음 전파자가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이 복음서의 끝에 이를 때 많은 복음 전파자들이 있다. 오늘날 복음 전파자들이 얼마나 되는가를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마가복음 1장에 있는 전파는 주로 유대인들에 대한 것이었으나 16
장 끝에 있는 전파는 모든 피조물들 최소한 이 땅에 있는 서로 다른 모든 민족들에 대한 것이었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미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결코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 열심을 낸 적이 없다면, 이것은 당신이 주 예수 안에서 결코 미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내가 구원받던 날 나는 주님께 부르심을 받았다. 나는 주 예수를 전파하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당시 나의 이해는 나의 고국의 마을에서 그분을 전파하리라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이 나라에서 각 대륙으로부터 온 자들에게 주님을 전파하고 있다.
오 우리는 놀라운 주 예수에 관해 모든 사람에게 말하자!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만유를 포함한 죽음과 기묘한 부활에 관해 말하자! 우리는 잠잠하지 말자. 복음을 전파하고 진리를 제시하고 생명을 사역하자.(마가복음 라이프 스타디 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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