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과부를 평가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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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보석 2011-10-22 , 조회 (33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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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과부를 평가하심
마가복음 12장 41-44절 『예수님께서 헌금 함 맞은편에 앉으시어, 무리가 어떻게 돈을 헌금 함에 넣는가를 지켜보고 계셨다. 여러 부자들은 돈을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부르셔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 함에 돈을 넣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풍족한 중에서 넣었지만, 이 과부는 궁핍한 중에서도 자기가 가진 모든 것,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습니다.”』
 
주 예수께서 서기관들에 관해 경고를 하신 후 그분은 가난한 과부의 충성스러움을 평가하셨다. 노예-구주는 그분의 인성 안에서 사시는 하나님이셨다. 그러한 분으로서 주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물을 그분께 드림에 있어서 어떻게 그들의 충성스러움을 표현하는가를 관심 있게 보셨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께 대한 과부의 충성스러움을 높이 평가하셨다. 노예-구주의 관찰은 사람들의 관찰보다 더욱 예리하다. 주 예수께서 한 가난한 과부가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 것을 보셨을 때,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 함에 돈을 넣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넣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풍족한 중에서 넣었지만, 이 과부는 궁핍한 중에서도 자기가 가진 모든 것,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습니다.” 그들의 풍부함을 드리는 이들은 주님의 마음을 만지지 못했다. 그러나 작은 동전 두 닢을 드린 과부는 주님을 만졌다. 주님은 이같이 헌금하는 그녀를 칭찬하셨다.
헛된 것과 실제의 대비
주님께서 모든 반대자들을 굴복시킨 후에 서기관들에 대하여 경고하시고 가난한 과부의 충성스러움을 칭찬하신 것은 매우 의미 있다. 먼저 주님은 제자들에게 공허하고 헛된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과부의 내적 실제를 높이심으로 제자들을 격려하셨다. 주님은 제자들이 외적으로 사람의 방법에 따른 것이 아닌 내적으로 사람의 내적 실제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의 상황을 들여다보기 원하셨다. 주님에게는 이러한 조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과부를 귀하게 여길 수 있었다.
 
마가복음11장 27절부터 12장 37절에서 우리는 사람의 문화와 관련된 네 가지 종류의 질문을 보며, 곧이어 질문 중의 질문인 그리스도에 관한 질문을 본다. 앞의 네 범주의 질문은 종교와 정치와 신앙과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과 관련되어 있다. 유일한 질문은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다. 이 다섯 가지 형태의 질문은 두 가지 사건으로 이어진다.
 
첫 번째는 서기관들의 헛된 가르침의 공허함과 관련되며, 두 번째는 믿는 이들의 내적 존재의 실제와 관련된다. 서기관은 공허하게 말하는, 주님의 백성들 가운데 있는 어떤 자이며, 이 과부는 내적 실제를 갖고 있는 믿는 이를 상징한다. 이 사건들을 상고할 때 우리는 서기관이 되는 대신에 가난한 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본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공허하게 말하는 헛된 서기관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나는 가난한 과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있는 실제로부터 흘러나오기를 원합니다.』우리는 자신이 서기관이 될 것인지 아니면 과부가 될 것인지를 상고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공허한 서기관이 될 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충만한 과부가 될 것인가? 우리가 주께 감사하는 것은, 그분의 회복 안에는 과부와 같이 내적 실제로 충만한 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과부가 없이는 회복이 지속될 길이 없을 것이다. 주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 가운데 참된 과부들, 즉 내적 실제를 갖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주님께서 반대자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답하시고 그분 자신에 관한 질문을 하신 후 계속하여 서기관들과 과부에 관해 말씀하셨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작은 집회, 즉 서기관들과 과부에 관해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집회를 가지셨다. 서기관들에게는 공허함과 헛됨이 있으며 과부에게는 내적 실제가 있다. 우리는 실제를 귀히 여기고 공허함을 주의하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어떤 이들은 뛰어나게 말을 잘하며 웅변적이고 지식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은 공허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이는 말을 잘못하며 웅변이나 지식이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대한 내적 실제가 있다. 이것이 12장에 있는 두 사건, 즉 서기관들에 관한 경고와 가난한 과부에 대한 평가가 의미하는 바이다.
 
하늘에 속한 빛 아래서 마가복음 12장을 읽을 때 우리는 이 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볼 수 있다. 특별히 우리는 서기관들에 대한 주님의 경고와 가난한 과부에 대한 주님의 칭찬의 의미를 본다. 한편 우리는 어떤 사람의 가르침이 지식적이며 웅변적일 수 있으나 공허하고 헛될 수가 있음을 본다. 다른 한편 어떤 이는 가난하나 실제로 충만할 수가 있다. 우리는 모든 방면에서 가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안에 우리가 부르는 주님의 실제가 있으며 우리가 섬기는 바로 그 하나님에 대한 실제가 있다. 우리에게는 웅변술이나 지식이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가지-내적 실제-가 있다.
돈의 문제보다 더 믿는 이들의 내적 실제를 입증하는 것은 없다. 돈이 믿는 이들의 내적 실제를 입증하는 이유는 인간 생활에서 돈이나 물질적인 소유보다 더 실제적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의 돈과 물질은 당신에게 하나님께 대한 실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한다. 우리 모두가 헛된 것, 특히 말과 웅변과 지식과 교리와 가르침에 있어서 헛된 것을 주의하기 바란다. 동시에 우리 모두가 주님이 보시기에 참된 것을 높이 평가하고 귀히 여기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주께서 서기관들에 관해 경고하시며 가난한 과부에 대해 평가하실 때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주님을 친밀하게 따르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10장과 11장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보았다. 나는 오순절 날 이후 이 모든 일들이 그들의 삶 안에서 하늘에 속한 이상으로 그들에게 되돌아왔으리라고 믿는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우리 존재 안으로 새겨지는, 마가복음으로부터 오는 연이은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가 우리를 지배하는 생명 주는 영에 자신을 열어 놓을 때 이 모든 이상들은 실제적이고 생생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마가복음 라이프 스타디 2 - 양장 신국판 51-5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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