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전하는 사명
복음 부담
주님의 보석 2011-10-22 , 조회 (55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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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하는 사명
구원받은 사람마다 신약을 읽으면 주 예수님께서 남긴 한 가지 유명(遺命)이 바로 믿는 이는 온 천하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 것이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서 20절과 마가복음16장 15절에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이 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주 중대한 일이다.
신약의 기록에서 사도들은 모두 주님의 명령을 따르며 복음의 영으로 충만하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서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먼저 유대인에게 그리고 헬라인에게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9장에서 우리는 그가 복음을 전하는 태도에 대해서 본다. “내가 복음을 전파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나에게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파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자진해서 이 일을 한다면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진해서 하지 않는다 해도, 나에게는 이미 청지기 직분이 맡겨졌습니다.”(16-17절). 바울은 사명을 받아들였으며 심지어 복음을 위해 고린도후서 12장 15절에서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은 나의 소유물을 더더욱 기쁘게 소비하고, 나 자신까지도 다 소비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과 같이 전 존재를 드렸다. 바울은 복음의 영이 충만하여 기꺼이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허비하고 심지어 자신까지도 내어 주었다. 바울 한 사람만 이와 같은 것이 아니라, 신약에 있는 빌립보 교회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서 바울과 교통을 가졌고(빌 1:5), 바울과 같은 혼을 가졌다.
복음의 영
언제든지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의 영은 침체되고 죽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교회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 교회 역시 침체되고 죽어 있다. 이와 반대로 우리가 일어나서 복음을 전할 때 우리의 영은 즉시 불타오른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교회의 영은 즉시 왕성해진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불을 붙이는 것이며 속에 눌린 것을 내뿜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영 안의 불을 끄고 영의 목을 조르는 것이다. 복음의 영이란 주님을 믿는 사람들 안에 불타오르는 어떤 것이다. 이것은 그들 안에 넣어진 것이 복음의 영이고 그들 밖에 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복음에 대한 태도이다. 참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영이 있으며, 문제는 이 복음의 영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불타오르게 하느냐이다. 복음의 영 자체는 타고 있는 불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데 구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람이 말할 줄도 모르고 말씀을 전할 줄도 모른다면,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영적인 일은 공교롭게도 반대이며 사람을 구원받게 하는 것은 결코 우리가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그 복음의 영이다. 복음의 영을 주의하지 않고 구변을 중시하고 설교를 중시하면 도리어 사람을 실망시키고 구원받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복음의 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불타오르는 그것이다.
복음의 영의 대적
사람의 보좌
복음의 영의 가장 큰 대적은 ‘사람의 보좌’이다. 복음을 전하며 능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사람의 보좌’에서 내려온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신분 안에서 나온 사람이다. 복음의 영이 불타오르는 사람치고 자신의 보좌에서 내려오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복음의 영이 나오게 하려면 가장 중요한 조건은 사람의 보좌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사람의 총명
‘총명’한 사람은 복음을 전할 수 없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어리석은’ 사람이다. 무디는 일생 복음을 전했고 백만 명 이상의 사람을 구원받도록 인도하였다. 그는 원래 신발 가게에서 일을 하던 사람인데, 어느 날 복음의 영으로 불타 비를 조금도 가릴 수 없는 우산을 받쳐 들고 비 오는 거리에 서서 행인이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길가는 사람은 그의 우산이 비를 가릴 수 없는 것을 보면서 비웃었다. 그는 도리어 그들에게 “내 우산이 비를 가리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당신네 우산이야말로 가리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비가 내릴 때, 당신네 우산이 막을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하자 즉시 많은 사람이 구원받았다. 이것이 복음의 영이다. 전에 상하이에서 자오퉁(交通)대학에 다니는 한 학생은 다른 사람의 이상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하얀 조끼를 입고 큰길이나 전차에서 복음을 전했다. 이렇게 해서 복음의 불은 즉시 타기 시작했고 많은 형제자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복음의 불은 상하이에서 난징으로 또 항저우로 불타올랐다. 결국 복음의 불은 중국의 다른 대도시까지 퍼졌다. 일 년 동안 양자강 남북에서 구원받은 영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영이다. 복음의 영이 나갈 때, 비로소 복음을 전하는 말에 힘이 있다. 복음의 영이 나갈 때, 비로소 복음의 말씀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교리가 아니라 복음의 영이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기 바란다. (복음의 능력 그리스도 270-274쪽)
 
복음의 영이 있는 사람의 특징
1. 부끄러움을 두려워하지 않음
만일 우리에게 복음의 영이 있으면 첫 번째의 특징은 얼굴이 두꺼워지는 것이며 또한 부끄러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안의 영이 강하게 될 뿐 아니라 외적으로 얼굴도 두꺼워져 감각이 없고 부끄러움을 두려워하는 느낌도 없어진다. 예를 들어, 당신의 집에 불이 났다면 당신이 큰길로 뛰어나가 큰소리를 지를 때 결코 두려움이나 감각 같은 것이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당신에게 복음의 영이 있다면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여 그의 영혼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때, 당신은 어떻게 입을 다물고 있으며 큰소리를 지르는 것을 수치로 여기겠는가?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이 여길 수 없으며 사람이 듣기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전해야만 한다. 교회 역사는 우리에게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다 얼굴이 두꺼운 사람으로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바보 같은 사람들임을 보여 준다. 얌전한 형제자매들은 대부분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복음의 영이 강하고 얼굴이 두꺼운 사람은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여 구원할 수 있다.
2. 신분을 돌아보지 않음
복음의 영이 강한 사람은 다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며,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보좌에서 내려올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늘 은행의 경영자, 대학교수, 사모, 대학생, 처녀 등의 신분을 보좌로 여기고 보좌에서 내려와 복음을 전하러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의 복음의 영이 일단 강해지면, 즉시 당신 자신이 어떤 신분과 지위를 가졌는지를 잊어버리며, 당신의 보좌를 잊어버리고, 사람을 이끌어 구원시키는 것만을 관심하게 되며, 주를 위하여 미치게 된다. 당신이 이렇게 할 때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면 당신이 낳고 구원시킨 사람도 당신과 똑같이 된다. 당신이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사람이라면 당신이 구원시킨 사람도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사람이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이 충분히 구비되지 않고 체면과 신분을 제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복음의 영은 강해질 수 없다. 우리에게 복음의 영이 있으려면, 먼저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가야하며, 하나님 앞에서 많은 기도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께 장애를 제거해 주사 우리로 복음과 영혼을 위하여 자신의 체면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신분과 지위를 상관하지 않도록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워치만 니 전집 3집 62권 -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209-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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