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여!-A
아침
주님의 보석 2011-10-22 , 조회 (22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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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여!-A
주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 누구에게 가장 먼저 나타나셨는가? 막달라 마리아이다. 주님은 베드로가 연약함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그분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이 급하셨지만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내시는 것이 더 급하셨다. 엠마오로 향한 두 제자가 길을 잘못 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신을 급히 나타내셔야 했지만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내셨다. 주님은 그분이 사랑하시는 요한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이 급하셨지만 막달라 마리아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이 더 급하셨다. 주님은 주의 부활을 믿지 않는 도마에게 급히 나타내셔야 했지만 자신을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내셨다. 주님은 다른 제자들에게도 자신을 나타내셔야 했지만 그들에게 먼저 나타내시지 않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내셨다. 주님은 왜 베드로나 요한이나 도마나 다른 제자들과 모든 사람을 제쳐 놓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나타내 보이셨는가?
막달라 마리아는 제일 나중에 십자가 곁을 떠났고 가장 먼저 무덤으로 온 사람이었다. 주님에 의해 구원받아 귀신이 나간 사람은 마리아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른 아침에 무덤에서 주님을 찾는 사람은 마리아뿐이었다. 그녀는 많은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그녀의 머리가 좋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우리에게 없을 수도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주님에 대한 사모함이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침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보십시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침례 요한이 주님을 처음 보았을 때 했던 말이다.
36절에서 요한은 주 예수님을 또 보고 “보십시오,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요한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가 이 말을 잊었겠는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구원받은 사람의 체험이다. 처음으로 주님을 볼 때는 그분과 나를 생각한다. 그분이 내 죄를 지고 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한다. 그러나 두 번째로 주님을 볼 때는 자신을 잊어버리고 주님만이 남는다. 처음에는 그분께서 주신 은혜로 인해 감사하고 두 번째에는 그분 자신으로 인해 그분을 가까이한다. 우리가 침례 받은 것은 주님과 연합되는 것이고, 떡을 떼는 것은 주님 자신을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의 첫 단계는 주님을 믿는 이가 되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주님의 연인이 되는 것이다. 첫째 단계는 주님께서 하신 일을 믿는 것이고, 둘째 단계는 주님의 인격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주님의 하신 일의 귀중함만을 알 뿐 주님 자신의 귀중함을 모르고, 은혜를 받은 것만 알 뿐 주님의 사랑스러움을 알지 못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구원을 중히 여길 뿐 아니라 구주를 중히 여긴 데 있다.
오! 주님에 의해 귀신이 나간 사람은 많았으나 주님을 찾은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뿐이었다. 물론 주님을 찾은 다른 여인들도 있었으나 가장 먼저 무덤에 간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무덤에 갔다. 그녀는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고 주님을 찾으러 갔다. 어떤 형제는 “주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마리아의 눈에는 세상이 온통 텅비어 있는 것 같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직 한 분이 마리아의 마음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이 세상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끌 수가 없었다. 마리아의 마음은 완전히 주님께 점유되었고 침노당했다. 오! 마리아는 마음을 주님께 빼앗겼다.
무덤에 와서 마리아는 무엇을 보았는가? 그녀는 어떻게 했는가? 그녀는 “내 사랑하는 주님께서 돌아가셨다. 오늘 나는 그분의 시체라도 볼 수만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분의 시체가 없어졌다. 그녀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서 알려 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사람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하겠어요.”라고 말했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요한)가 나가서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려갔지만 그 다른 제자가 더 빨리 달려 먼저 무덤에 이르렀다. 그가 몸을 구푸려 세마포 놓인 곳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도 뒤이어 도착했다. 그는 무덤에 들어가 세마포가 놓여 있는 것과 머리를 쌌던 수건이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는 것을 보았다.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었다. 이 두 제자는 모든 상황을 보고 어떻게 했는가? 성경은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라고 되어 있다. 세상에서 그들에게는 아직 가장 좋은 것인 집이 있었고 돌아갈 집이 있었다. 그들은 주님이 무덤에 계시지 않은 것을 보고 무엇인가를 느끼지 못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주님 외에도 그들에게는 갈 곳이 있었다.
마리아는 어떻게 했는가? “그러나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원문 참조). 그녀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었고 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라는 말이 얼마나 깊은지 모른다. 마리아의 마음은 이러했다. “당신들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으나 주님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당신들은 주님이 없어진 것을 상관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누가 그분을 옮겨 갔는가? 내가 어떻게 갈 수 있는가?” 그녀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신성한 로맨스 27-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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