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는 사랑c
아침
주님의 보석 2011-10-22 , 조회 (20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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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사랑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주님 앞에서 항상 새로운 십자가로 하여금 그들의 마음 눈 가운데서 항상 새롭게 그들을 매혹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로 하여금 기이하면서도 사실 기이할 것이 없는 한 가지 사실은 바로 첫째가는 사랑을 버린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에베소 사람들에게 여전히 많은 활동과 열심과 부지런함과 고난받음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나무에 충분한 열매가 있지만, 이미 전과 같이 주님의 입맛에 맞는 것이 아니다─결코 햇볕에서 익은 것이 아니다! 자태와 아름다움과 색채는 여전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결코 전에 그리스도를 구하던 사모함만 못하다! 외적인 수고는 비록 여전하지만, 목적은 이미 전과 같지 않다! 성도들의 위험은 바로 외적으로는 전에 주님을 사랑하던 습관을 바꾸지 않은 채, 내면에서는 이미 처음에 주님을 사랑하던 마음을 잃은 것이다. 차라리 첫째가는 사랑을 버린 후에는 첫째가는 일도 그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러하다면 자신의 실패를 보고 놀랄 것이며, 타락한 것을 알고서 회개하고 회복될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바로 성도들이 주님의 빛 가운데 있지 않고 볼 수 있는 빛을 얻지 못하고서도 도리어 모든 일들이 전처럼 잘 되고 있다고 여기고 영적인 생명 안에서 분명 주님과 간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마음의 심히 깊은 곳에서 이미 주님과의 그 뜨거운 사랑의 교통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한 가지는 바로 우리의 일에서 항상 주님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렇게 일하고 수고하며 인내한다. 비록 많은 일들이 다 주님께 속한 것이지만,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할 때 마음은 도대체 누구를 위하는가?
어쩌면 우리는 마음대로 일을 하면서도 주님은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고 자문하기를 원하신다. 안타깝다! 우리는 일을 할 때, 결코 주님의 사랑의 감동에 의해 하지 않는다! 다만 습관으로 인한 것일 따름이다! 다만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일 따름이다!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주님은 결코 우리의 일이 많고 크고 드러난 것으로 인하여 우리를 칭찬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의 불꽃같은 눈은 결코 이것을 보시는 것이 아니다. 그분이 물으시는 것은 바로 그분의 사랑으로 인하여 한 것이 얼마만큼 있느냐는 것이다. 오직 주님의 사랑의 격려를 받은 일이라야 금과 은과 보석이다. 그 밖의 일은 얼마나 중대하고 많았는지, 얼마나 열심이었고 부지런했는지를 막론하고 모두가 나무와 풀과 짚이다. 태우는 것 외에는 결코 다른 용도가 없다. 우리의 모든 일을 다 심판대 앞에서 하는 것처럼 하기 바란다. 주님이 우리의 공력을 심판하시고 날마다 빛을 발하여 우리의 동기를 비춰 주시기 원한다. 이미 주님의 사랑을 맛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위험하다. 성도들이 주님에 대한 첫째가는 사랑이 충만할 때 한 모든 행동은 다 주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러한 동기 외에는 결코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뜻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마치 주님을 만질 수 있는 듯하다. 주님을 위해 눈을 빼내는 것은 고사하고 심장을 빼낸다 할지라도 기꺼이 원한다. 시간과 환경이 바뀔 때, 세상의 아름다운 유혹과 마음속에서 좋아하는 것의 충동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예전의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이 식어져 가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우리는 어제 한 것을 오늘도 여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속마음은 이미 어제와 오늘을 비교할 수 없다. 우리가 비록 많은 일들을 계속할 수 있지만, 우리 안에는 이미 주님의 사랑의 격려와 재촉함이 없다. 많은 사람이 체험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리스도가 그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요 그들 자신도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모호하고 둘 사이에 발을 쳐 놓고 보는 듯하다. 이때 주님의 사랑은 이미 전과 같이 신선하지 않고 감동력이 풍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다만 생각 안에서 주님의 이전의 사랑을 기억할 따름이며, 주님의 사랑은 이미 지금(현재)의 매력이 되지 않는다. 물론 우리의 뜻은 우리가 날마다 감정적으로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첫째가는 사랑을 버리지 않는 것은 그분의 사랑을 항상 새로운 것으로 삼는 것이다. 한번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사랑을 맛보는 것은 비록 그분을 기쁘시게 할 수는 있지만, 그분으로 만족하시게 할 수는 없다. 신혼부부가 처음에 사랑하는 것처럼 주님은 우리가 날마다 그렇게 그분을 사랑하기 원하신다. 많은 일과 수고와 인내는 모두 그분으로 하여금 만족케 할 수 없다. 완전한 일과 수고와 인내가 만약 그분의 사랑 안에서 되어진 것이 아니라면, 역시 그분께 열납될 수 없다. 계시록 2장 5절은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기억하고 회개하여 첫째가는 행위를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에게 갈 것이며, 네가 회개하지 않는 한 너의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옮길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결코 이와 같이 그들을 거절하고 그 황폐함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워치만 니 전집 1집 4권 - 기독도보 (2) 142-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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