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통하여 사람들을 돌보기를 배움
복음 부담
주님의 보석 2011-10-22 , 조회 (47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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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통하여 사람들을 돌보기를 배움
 
우리가 참으로 자라서 성장한다면 우리는 적어도 네 가지를 실행할 필요가 있다. 먼저, 불신자들을 돌보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영적이든지, 어떤 영적인 성취를 가졌든지, 심지어 사도 바울처럼 체험이 많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복음을 전함으로 사람들을 돌볼 필요가 있다. 워치만 니 형제님은 1년 반 동안에 147명의 이름을 얻었다. 그는 그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실행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주위의 친척, 이웃, 친구, 학급 친구, 직장 동료, 기타 여러 사람들, 가까이에 사는 사람들, 멀리 있는 사람들 모두를 생각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어떤 사람이 멀리 있을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를 위한 부담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주님과 교통해야 한다. 그러면 그분은 우리를 인도하여 어떤 사람을 돌보게 하실 것이다. 이것은 장기간의 일이다.
우리는 너무 빨리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리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을 위해 매일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주님과 참되게 교통하는 것을 요구한다. 기도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먼저 처리를 받아야 한다. 우리와 주님을 가로막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기도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순수한 양심을 가지고 기도할 수 없을 것이고,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을 것이라는 담대함과 확신과 믿음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리받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돌보기 위해 주님께 진지하다면, 우리는 계속적으로 주님의 처리를 받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자라도록 도울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처리를 더 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더 자랄 것이고, 우리가 더 자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더 풍성한 생명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기를 실행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율법적이거나 형식적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 그러나 어떤 곳의 성도들은, 특별히 젊은이들은 적어도 다섯 명을 위하여 기도하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나는 이것을 규칙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젊었을 때 이렇게 기도하였다. 나는 그때 근무하는 사무실에 가기 위해 30분을 걸어야 했다. 나는 걸을 때마다 항상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지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있을 때는 몇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주님께서 내 고향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셨을 때는 나 혼자였다. 어느 날 저녁 내 친구가 어떤 문제 때문에 나에게 이야기하러 왔었다. 그 이전에 우리는 모두 중국 독립 교회의 성도였다. 나보다 10살이 많은 그는 그곳 교회의 장로들 중 한 명이었다. 그때가 일 년 중 아주 더운 6월이었기 때문에 나는 해변가로 가서 교통하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바닷가에 앉았을 때 그는 나에게 침례와 주님의 상과 같은 여러 가지 것을 질문했다. 두세 시간 후에 나는 집에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는 머물기를 원했다. 그는 나에게 자신에게 침례 줄 것을 부탁했다. 그것이 그곳의 일의 시작이었다. 나는 다만 평신도이고 젊은 사람이고 목사도 전도사도 장로도 집사도 아니었지만 그에게 침례를 주었다. 그는 나에게 “이 선생, 오늘밤부터 나는 중국 독립 교회를 떠나겠습니다. 우리 둘이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읽읍시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였다. 그 후 삼 일이 지나서 나는 내 직장 동료 중 한 사람에게 그 사람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는 내가 왜 그 사람에 대하여 물어보는지 알고 싶어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비밀을 말해 주겠습니다. 그저께 나는 바다에서 그에게 침례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즉시 그는 “일이 끝난 오후에 나에게도 침례를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이 사람은 나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구원받아 침례 받기를 원하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몇 분 후에 그 사람이 와서, 우리는 그에게 확인하였다. 그는 “나는 침례를 받기 원합니다. 나에게 침례를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그날 두 명이 침례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네 명이 되었다. 그것이 목요일이었고, 다음 주일까지 우리는 11명이 되었다. 우리는 초기의 제자들과 같이 주님의 상을 갖기 위해 11명의 형제들이 함께 모이게 되었다. 그 후에 주님은 더 많은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
여기에서 원칙은 우리가 생활에서 참된 간증을 보인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람들을 보내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을 돌보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놓고 기도해야 하고 이러한 종류의 복음 전파를 우리의 생활의 일부분이 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여기서 살고 있다. 이것은 다만 우리의 일이나 활동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생활의 일부이다. 나는 우리가 어떤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조만간 그들이 참으로 구원받는 것을 간증할 수 있다. 이것은 시간이 걸린다. 이러한 부담을 갖기를 배우라.
과거 25년 동안 나는 수많은 영적인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극단으로 치우쳤다. 그들은 영적일수록 이러한 종류의 복음 전파를 더 간과했다. 이것은 백 퍼센트 잘못된 것이다. 영성과 복음 전파는 균형 잡힐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영적일수록 복음을 전하는 부담을 더 가져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실행해야 할 첫 번째 것이다.
생활에서 간증을 가짐
둘째, 우리는 기도와 복음 전파에 더하여 생활에서 간증을 가져야 한다. 생활의 간증이 없다면 우리의 복음 전파와 기도는 유력하지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이 10년 이상 동안 그의 직장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해 왔다. 그는 매일 복음을 전했지만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 이것은 그에게 생활의 간증이 없기 때문이었다. 한 면에서 그는 복음지를 전해 주고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또 한 면에서 그는 사람들과 다투고 쉽게 화를 냈다. 그것이 그의 복음 전파를 방해하고 망친 것이다. 우리에게는 생활에서의 간증이 필요하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하며 부활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간증을 갖게 될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열매를 맺는 쉬운 길은 없다는 것을 새겨 주고 싶다. 한 알의 밀이 열매를 맺으려면 땅에 떨어져야 하고 죽어야 하며 부활해야 한다. 그럴 때 생명이 나온다. 거의 모든 사람이, 특별히 이 나라의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알고 있다. 우리는 가벼운 방식이나 쉬운 방식으로 사람을 얻을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는 친척들과 직장 동료들과 학교 친구들을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주 예수를 간증해야 하며 그들에게 생활의 참된 간증을 보여 주어야 한다.
생활의 간증이 참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종류의 간증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학생으로서 우리는 매일 간증을 세워야 한다. 그러면 몇 주, 몇 달이 지날 때 사람을 주님께로 이끌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이것이 가장 유력한 방식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이 주님께로 인도될 뿐 아니라 지켜질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단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다른 이들 안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실행해야 한다. 균형 잡히기 위해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생활을 가져야 한다. (생명의 방식으로 복음을 전파함 195-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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