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을 돌봄
목양 부담
주님의 보석 2011-10-22 , 조회 (32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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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을 돌봄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돌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손을 내미는 것이다. 이렇게 손을 내미는 것에는 복음 전파 즉 불신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포함된다. 그것은 또한 심방과 어린 형제들과의 교통을 포함한다. 다른 사람들을 돌보러 가기 전에 우리는 먼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도움을 받을 때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이 두 방면, 즉 도움을 받고, 강화되고, 지지받고, 보호받고, 안내받기 위하여 형제자매들과 연결되는 면과 다른 사람을 돌보는 면을 주의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봉사, 기능, 활동이다.
 
균형을 이루고 지나치지 않아야 함
 
우리는 이 두 종류의 사람들, 즉 불신자들과 신자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도달하기 위하여 일을 해야 한다. 거의 모든 문제들에 있어서 오늘날 기독교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나쳐 어떤 사람들은 이쪽 극단으로 어떤 사람들은 저쪽 극단으로 갔다. 심지어 복음을 전하고 손을 내미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양극단에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은 활동을 하는 극단에 치우쳤다. 다른 사람들은 주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행동하고 싶어하지 않는 소위 자칭 영적인 사람들이다. 이런 식으로 주님의 인도가 없으면 기다리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인간적이고 혼적이고 천연적인 것이다. 그것은 주님께 속한 것이 아니다. 나는 과거에 여러 번 이러한 것을 보았듯이 오늘날에도 이것을 본다. 이 소위 자칭 영적인 사람들은 수 년 동안 기다리지만 결코 주님으로부터 인도를 받지 못한다. 그들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 주님을 기다리는 것 같다. 그들은 『주님의 인도가 없으면 나는 움직이지 않겠다』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수 년 동안 기다려왔으나 여전히 인도하심이 없다. 이것은 극단적인 것이다. 우리는 균형이 잡혀야 하며 이 극단이나 저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균형을 잡는 방법은 먼저 주님과 교통을 갖고, 그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 제가 그 몸 안에 놓여지고 건축된 후에는 교통하는 지체와 기능을 발휘하는 지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의 의무와 책임은 불신자들과 믿는 이들을 돌보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연결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접촉함
 
우리가 구원받지 않은 친척이 있다면, 그를 구원받게 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형제자매들과 연결되어 있다면 연결되어 있는 모든 분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하루 혹은 이틀 밤에 우리는 우리의 친척과 이 모든 사랑스러운 형제들을 집으로 초청할 수 있다. 아마 12명이 거기에 참석하여 매우 확신 있게 간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 우리의 친척을 확신시킬 수 있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이웃을 확신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대북의 형제들은 전파했다. 그들은 공공장소에서 전도하는 것을 신뢰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대중적으로 많이 전도했지만 그것만 신뢰하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을 저녁식사하자고 집으로 초대하는 방식으로 전도하는 것은 대중적으로 전하는 것보다 더 실제적이다. 그들이 올 때 12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들이 저항할 수 있는가? 이것이 연결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는 혼자서 복음을 전하거나 우리의 친척들을 상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몸 전체와 연결된 지체들이다. 때로 주님의 만찬 후에 대북에서는 어떤 형제가 일어나 자기에게 구원받아야 할 이웃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이 사람이 불교 신자일지 모르므로 온 교회가 그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온 교회가 기도를 했으므로 그 불교신자를 상대하는 것은 쉬웠다. 어떻게 이렇게 했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알 필요는 없다. 나는 단지 우리가 실행해야 할 몇 가지 암시를 주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다음에 봉사하고 일하고 전도한다면 결과가 있을 것이다.(집회와 복음전파에서 섬기는 길 45-49쪽)
 
그물을 던지고 그물을 수선함
 
교회에는 첫 번째 면의 사역 즉, 그물을 던지고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을 인도한 후에는 그들은 보존되고 보호받아야 한다. 그래서 수선이 필요하다. 사역을 시작할 때 주님이 이 두 종류의 제자들에게 따라오라고 부르신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는 그물을 던지고 그물을 깁는 제자로서 주님을 따르고 섬겨야 한다. 즉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고 그들을 항상 지켜야 한다. 한 면에서 우리는 그물을 던지는 어부로서 불신자들을 상대해야 하며, 또 한 면에서는 「염소 새끼」(아1:8)인 어린 신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주여, 추구하는 자들을 모아주소서』라고 기도한다. 우리는 추구하는 자들일 뿐 아니라 추구하는 자들을 찾는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얼마나 많은 불신자들을 주님께 인도했는지, 얼마나 많은 「염소 새끼」어린 신자들을 데리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점검하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날 것이다. 한 무리의 믿는 이들이 계속 집회를 가지나, 일이 년 후에도 그 수가 여전히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무엇인가가 잘못된 것이며 변명의 여지가 없다. 미국은 대만과 다르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후에 두 가지 종류의 봉사 즉, 불신자들을 관심하는 것과 어린 신자들을 돌보는 것을 수행하기 위하여 주님을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하면 교회 안의 모든 어린 자들에게는 자기들을 돌보는 형제자매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교회생활을 돕게 될 것이고 많은 문제들이 이 돌봄으로 해결될 것이다. 나는 당신이 이 문제들을 주님께 가져가도록 간청한다. 이것은 단지 가르침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것들을 실행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배워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강건해지고 능력과 권위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불신자들을 돌보기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면 로스앤젤레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이곳에는 약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물고기가 가득한 바다이다. 어떻게 그렇게 큰 바다에서 물고기를 하나도 접촉할 수 없는가? 우리는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적어도 우리의 영적 「염소 새끼」인 한 두 명의 어린 자들을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식으로 이 「염소 새끼」는 우리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그들을 돌볼수록, 우리는 더 양분을 얻게 될 것이고 더 자라게 될 것이다.
나는 우리가 주님의 긍휼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불신자들을 주님께 인도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하고, 어린 그리스도인들을 돌보기 위하여 그들을 접촉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주님을 바라본다. 이러한 문제가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실행되지 않지만, 여러분은 그것들을 실행하기를 간청한다. 그러면 주님이 당신을 존중하고 성령이 당신과 함께 하는 것을 볼 것이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풍성과 성령의 능력을 구할 위치와 입장과 지위를 얻게 될 것이다.(집회와 복음전파에서 섬기는 길 5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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