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징계는 모두가 목적이 있는 것으로 우리를 한 위치에 이르게 한다.
아침
주님의 보석 2011-10-22 , 조회 (26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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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회가 에베소 시대에 어떻게 주 예수님을 향한 첫째가는 사랑을 잃었는지를 이미 보았다. 이제 서머나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이 타락을 심판하시고 그들의 실패를 중책하시는가를 볼 수 있다. 타락하고서 회개하지 않으면 채찍질과 책망 외에 결코 다른 방법이 없다. 하나님의 채찍질 아래 있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포기되고 버려지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채찍질하심은 결코 “잠시 자기의 뜻대로 행하심”이 아니다. “모든 영의 아버지께는… 우리가 그분의 거룩함에 동참하는 데 유익하도록 징계하십니다”(히 12:10). 하나님의 징계는 모두가 목적이 있는 것으로 우리를 한 위치에 이르게 한다. 교회는 이미 첫째가는 사랑을 떠났다. 이것은 대단히 큰 상실이다. 그분의 채찍질하심의 의미는 원래 그분의 백성들을 돌이켜 그분께로 돌아오게 하여 예전에 상실했던 신선함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많은 때 사랑의 음성이 할 수 없는 일을 책망하는 채찍질은 할 수 있다. 생수의 근원을 떠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판 웅덩이가 터져서 물을 저축지 못하게 되지 않는다면 고개를 떨구고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렘 2:13). 많은 탕자들이 아직 기근과 돼지 치는 것을 당하기 전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기 어렵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를 보자마자 하나님을 떠나 도망쳐 버린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하심 후에 도리어 그를 채찍질한 매에 입을 맞추려 한다. 발전하는 순탄한 날들에는 항상 뜨거운 사랑을 잃을 가능성이 있게 마련이다. 많은 성도들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대부분 고난 가운데서 왕성해진 것이다. 첫째가는 사랑을 버린 교회가 만약 깊은 물과 뜨거운 불을 거치지 않는다면, 아마 그들은 진리의 신선함을 지키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 일곱 교회가 서로 연결되어 세상에서 대대로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교회가 처음의 위치를 잃은 것을 보시고 사탄(왜냐하면 그는 항상 기회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이 핍박하는 것을 허락하시어 교회로 하여금 고난 가운데서 새롭게 그분이 교회의 피난처 되심을 배우게 하신다. 우리는 에베소 성도들이 어떻게 첫째가는 사랑을 버리고 세상으로 기울어졌는지를 이미 보았다. 아! 세상은 항상 성도들의 올무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간증과 열심과 영적 생명이 이 무덤(세상) 안에 매몰되었는지!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치료 하실지를 아신다. 타락한 성도들은 세상을 즐거움으로 삼고, 세상과 짝하며, 세상의 사람과 일과 사물이 족히 그들의 마음을 만족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상을 바꾸심으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세상이 결코 안주할 곳이 아님을 알게 하신다. 성도들이 세상을 떠나기 원치 않으면, 하나님은 부득불 성도들이 사모하는 세상을 괴로운 곳으로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세상은 결국 그들의 낙원이 아님을 알게 하실 수밖에 없다. 세상이 지금 그들을 핍박하는데 그들이 어찌 세상과 짝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사모하던 세상이 지금은 거꾸로 그들을 반대하는데, 그들이 어찌 다시 세상 사람, 세상 일, 세상 사물에 연연해 할 수 있겠는가? 타락한 교회는 핍박하는 세상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 속한 믿는 이는 고난의 환경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환난의 의미이다. 지금 세상을 사모하는 믿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 비록 형식에서는 혹 다를지 모르지만, 마음속으로는 세상에 연연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므로 하나님은 부득불 그들을 대환난에 넘겨주실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원래 뜻은 그분의 아들의 십자가를 통하여, 성도들이 그 위에 세상을 못 박고, 위엣 것을 추구하고 생각하며, 땅에 있는 일을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도들은 도리어 세상의 아름다움과 영광에 이끌려 십자가의 합법적인 요구를 돌아보지 않고 세상과 합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가장 마지막 때에 부득불 그들로 하여금 대환난을 거치게 하고, 그들이 사랑하는 것들의 손을 빌어 그들을 핍박하여 그들로 사람의 마음과 사람의 얼굴에 얼마나 거짓된 것이 많으며 오직 구주만이 우리의 참된 친구요 보호자이심을 알게 하신다. 왜냐하면 이 환난은‘창세로부터 지금까지’없었던 것이고‘후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마 24:21). 그러므로 이 환난은 대단히 중대한 것이다. 예전의 주님의 사랑이 그들을 매혹시켜 그들로 하여금 세상을 버리게 할 수 없다. 이제 세상은 이미 고통스럽게 변하여 그들이 안에서 그만두려 해도 할 수 없다.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들은 이제야 그들이 예전에 사모하던 것을 미워한다. 그들은 지금 비로소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요일 5:19). 그러므로 세상은 결코 그들의 안식처가 아니다. 그들은 지금에야 비로소 “이 세상도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거합니다”(요일 2:17). 사랑하는 이여, 세상의 어떤 사람이나 일이나 사물을 사모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날 당신은 당신이 사모하는 것들이 당신이 발버둥쳐도 벗어나지 못하게 묶는 것임을 보게 될 것이다. 교회의 실패는 원수가 역사하는 근거이다. 교회의 타락은 바로 교회가 문을 열어 사탄에게 공격할 권세를 주는 것이다. 교회가 첫째가는 사랑을 버리자마자 하나님은 마귀를 제어하셨던 손을 놓게 되고 교회는 사탄의 핍박을 받게 된다. 대적의 공격은 늘 양면적이며, 그는 안팎에서 협공한다. 그러나 결과는 같지 않다. 그의 외면적인 공격은 늘 실패로 돌아간다. (워치만 니 전집 1집 4권 - 기독도보 (2) 178-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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