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길의 보편적인 제사장 직분
목양 부담
주님의 보석 2011-10-22 , 조회 (280)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새 길의 보편적인 제사장 직분
 
문 두드리기를 통해 복음을 전하여 영적인 자녀들을 낳는 것은 각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자녀가 태어나면 각 사람이 양육하는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양육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가르침도 있어야 한다. 가르침 이후에는 여전히 온전케 함이 있어야 하고, 온전케 한 후에는 여전히 신언이 있어야 한다. 이 네 단계가 전부 사람들에게 큰 요구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일 이 네 단계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오늘날 주님의 회복 안에서 그분의 몸의 지체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점은, 여러분이 오늘날 어떤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가이다. 여러분은 이기는 이가 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패배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새 길은 성경이 정한 길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모든 것은 그분의 몸의 본성과 몸의 원칙에 부합한다. 만일 여러분이 한 주에 두 명을 돌보기가 어렵다면 최소한 이 주에 한 명은 돌볼 수 있다. 언제든지 조금이라도 돌보는 것이 전혀 돌보지 않는 것보다는 좋다. 각 사람이 기능을 발휘하는 교회는 새로운 이들을 낳을 뿐 아니라 그들을 유지하고 지탱하고 남아있게 할 것이다. 새로운 이들을 돌볼 때 그들을 영적으로 부양하며 기도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건강과 직업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사람들을 온전케 하는 길이다. 결국 각 사람이 좋은 교육을 받은 집안의 자녀들이 될 것이다. 이러한 교회 안에서 자라난 이들은 각 사람이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새로운 이들을 돌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가정 집회를 가지며 새로운 이들을 돌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신약 경륜을 성취하기 위하여
 
나는 모든 형제자매들이 이러한 말씀이 모두 성경의 진리에 따른 것임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성경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불러 모아 우리에게 오게 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그들에게 가는 것을 말한다. 주님은 우리를 멀리 아프리카로 보내지 않으셨다. 이모를 방문하여 문을 두드린다면 우리에게 문이 열릴 것이다. 아울러 우리가 문을 두드려야 할 삼촌들도 있다. 가까운 친척들 다음에는 먼 친척들이 있다. 이들 외에도 학교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이 있다. 여러분이 구원받게 한 이모에게도 이모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류의 복음 전파에는 끝이 없다.
만일 여러분이 진취적으로 복음에 대한 부담을 취한다면, 이 시대에서 구원의 즐거움과 축복을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날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따를 것이다. 그들은 당신을 통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때가 되면 당신은 참으로 기쁨이 넘칠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오늘날 누구에게도 복음을 전하지 않고 심지어 그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한 사람도 구원받게 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때가 되면 다시 복음을 전할 기회도 없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주님은 만일 우리가 술친구와 악한 종들과 더불어 먹고 마신다면, 그분께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각에 오셔서 우리를 엄하게 처벌하시고 위선자들이 받는 벌을 내리실 것임을 경고하셨다(49-51절).
하나님은 그분의 신약 경륜 안에서 몸을 얻기를 갈망하신다. 이 몸에는 반드시 새로운 이들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교회에 더해지는 새로운 이들이 점점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그럴 때 집회들은 더 높아지고 더 풍성해질 것이다. 이것의 성취를 위해 각 지체들은 반드시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각 사람이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 사람들이 침례를 받은 후에는 각 사람이 양육해야 한다. 가정 집회에 다니느라 여러분의 다리가 지치게 될까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들 각 사람이 나가서 새로운 이들을 견고케 해야 하고 그들을 소그룹 집회로 인도해야 한다. 그런 후에 그들을 주일 아침 집회로 이끌어 그들로 돌봄과 온전케 함을 받게 해야 한다. 반 년이 지나면 여러분의 돌봄 아래 있는 이들은 여러분이 하는 것과 동일한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소그룹을 나눌 수 있고 동일한 순환을 반복할 수 있다. 다시 나가서 문을 두드리고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며, 더 많은 가정 집회와 소그룹 집회를 세운다. 이와 같이 지속적으로 이 길을 감으로써 교회는 증가와 확산을 갖게 될 것이다.
새 길은 단지 방법이 아니다. 새 길은 본성의 문제이다. 새 길의 본성은 사람을 하나님 안으로 이끌어 사람과 연합되게 하여 사람을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반드시 새로운 이들을 얻어야 하고 그들을 먹이고 신언하도록 인도하여야 한다. 외적으로 말한다면 이 모든 것들은 방법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새 길의 본성과 일치해야 한다.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것이든, 다른 이들을 양육하는 것이든, 가정 집회와 소그룹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든, 집회에서 신언하는 것이든, 모든 것은 몸의 움직임이다.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산출되며 하나님의 신약 경륜이 성취될 것이다. (신약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 33-36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