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종교를 버리고 하늘에 속한 이상의 편에 섬
목양 부담
주님의 보석 2011-10-22 , 조회 (38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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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종교를 버리고 하늘에 속한 이상의 편에 섬
 
베드로가 버린 첫째 항목은 유대교였다. 하늘에 속한 이상은 자기 조상의 종교와 상반되었다. 베드로의 태도는 자기 조상의 종교 편에 서지 않고 하늘에 속한 이상 편에 선 것이다. 사도행전의 처음 몇 장에서 우리는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유대교도들에게 박해를 받고 곤란을 겪지만 계속 하늘의 이상 편에 서 있는 것을 본다. 다락방에서의 그들의 헌신의 첫째 항목은 그들의 조상의 전통적인 종교를 버린 것이었다.
 
자기 고향을 버림
 
베드로는 다락방에 있기 위해서 자기 고향도 포기했다. 베드로는 갈릴리 출신이었지만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의 다락방으로 왔다.
 
이웃과 친구의 관계를 청산함
 
베드로는 갈릴리인으로서 분명히 자기 고향의 이웃과 친구들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다락방에 있으려면 이러한 관계들을 포기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것은 가벼운 것이 아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관계들을 참되게 희생했다.
 
친척을 버림
 
또 베드로는 자기 친척들을 포기했다. 나는 베드로가 자기 부모를 그 다락방에 모시고 왔는지 궁금하다. 이것에 대한 암시는 없다. 사실 베드로의 부모가 예루살렘에 있었다고 추측할 수도 있다.
 
목숨을 무릅씀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목숨을 무릅쓰고 다락방에 있었다. 그때 예루살렘은 다락방에 있었던 베드로와 그 외의 사람들에게 위험한 곳이었지만, 그들은 거기에 있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무릅썼다. 그들은 다락방에 있기 위해 유대교와 자신들의 고향과 이웃과 친구와 친척들을 포기하고 심지어 그들의 목숨까지 기꺼이 희생하려 했다.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헌신의 종류
 
우리는 이 다락방의 헌신을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이 헌신에 관해 많이 말하겠지만 그 헌신은 다락방의 헌신이 아니라 해변의 헌신일지 모른다. 당신은 정말 해변에서 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무엇인가를 버렸다. 하지만 아직 다락방에 이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헌신을 하고 있는가? 해변에서의 헌신인가 아니면 다락방에서의 헌신인가? 사도행전 1장의 다락방에서의 시간은 전환의 시간이었다. 그것은 시대를 전환하는 때, 곧 경륜을 전환하는 때였다. 그때 있었던 전환이 하늘과 땅에 영향을 주었다. 다락방에서의 헌신의 산출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 헌신은 교회를 산출했다. 교회는 그 헌신에서 나왔다. 다락방에서의 그 열흘 동안, 모든 것이 실제적인 방식으로 대가를 치르고서, 즉 그들의 조상의 종교의 대가, 자기 고향의 대가, 이웃과 친구들의 관계의 대가, 친척과 가족의 대가, 목숨의 대가를 치르고서 드려졌다. 그들이 관심했던 유일한 것은 하늘에 속한 이상이었다. 그들은 그 이상으로 ‘술 취해’있었다. 그들은 이 이상과‘결혼’했으며, 그들의 온 존재는 이 이상에 붙잡혔고, 이 이상으로 인해 미쳐 버렸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필요로 하는 헌신의 종류이다.
 
하늘에 속한 이상을 위해 대가를 지불함
 
당신은 우리가 지금까지 말해 온 하늘에 속한 이상을 보았는가? 그리스도와 교회와 몸과 자아와 세상의 이상을 보았는가? 나는 당신이 무엇인가를 보았다고 믿는다. 심판대에서 주님 앞에 서서 이 이상들을 보지 못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가? 분명히 당신은 그리스도와 교회와 몸과 자아와 세상에 관한 무엇인가를 보았다. 당신은 이것에 대해 변명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상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기꺼이 다락방에 있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그들은 하늘에 속한 이상을 위해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인가를 보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는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과 그 이상을 따르기 위해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 대가와 희생의 문제에 관해 계시록 3장 18절의 주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 보자. “나는 너에게 권면한다. 불로 제련한 금을 나에게서 사서 풍성하게 되도록 하고, 흰옷을 사서 입음으로 너의 벌거벗은 수치가 보이지 않도록 하며, 안약을 사서 너의 눈에 발라서 보도록 하여라.”주님은 이 구절에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권하시거나, 믿음으로 영접하고 취하라고 요청하시지 않고,‘사라’고 권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라고 권하신 세 가지 중에서 세 번째 것―볼 수 있기 위해 눈에 바르는 안약―만 관심하자. 아마도 어떤 의미에서 당신은 하늘에 속한 이상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기꺼이 대가를 치르려고 할 때, 즉 안약을 기꺼이 사려고 할 때 비로소 참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가를 지불하려는 마음이다. 일단 다락방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기꺼이 다락방에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메시지를 듣는다 하더라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부흥을 가져오는 헌신(재판) 7-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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