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하나님 앞에서의 가치
목양 부담
주님의 보석 2011-10-22 , 조회 (47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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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하나님 앞에서의 가치
출애굽기는 구원을 말하고 레위기는 헌신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헌신이란 우리가 얼마나 헌신하는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드린 것을 하나님이 얼마로 보시는가를 말한다. 구원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반 세겔의 값으로 보신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많을 수 없다. 빈부노소(貧富老少)가 같은 값이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함이므로 하나님의 아들 외에 무엇을 더하거나 감하여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심은 그 가치가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구원으로 인한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의 가치는 모두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성도를 다른 성도들보다 더 가치 있게 보실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모든 성도가 모두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영적으로 쓸모 있고 그의 드림이 다른 사람보다 더 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가치있게 보신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째는 영적 쓸모이고, 둘째는 성실한 마음에서의 드림이다. 하나님은 오직 우리의 영적 쓸모와 성실한 마음의 드림을 인하여 우리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보신다. 만일 우리에게 영적 쓸모만 있고 드림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가치 외에 다른 가치가 없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기꺼이 헌신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헌신한다면 그가 한 달이나 오 세 된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있는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성도로서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가치가 없는 것이다! 생명의 속전으로는 은 반 세겔이면 구원받기에 족하고 보증이 된다. 그러나 헌신에 있어서는 당신이 일 개월밖에 안 되었을지라도 하나님께 드리는 만큼 당신에게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사람을 네 시기(時期)로 나누었다.
일 개월에서 오 세까지의 유년기와, 오 세에서 이십 세까지의 소년기와, 이십 세에서 육십 세까지의 장년기와, 육십 세 이상인 노년기가 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육신의 실제 연령을 가리키는 것이고,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영적 생명의 강약(强弱)과 고저(高低)를 말한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 그러나 드림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구원받은 모든 사람에게는 마땅히 참된 가치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일 개월에서 오 세까지인 사람을 오 세겔로 정하셨다. 갓 구원받은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하나님 앞에 가치될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가치는 드림에서 온다. 드림이 없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보시지 않는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있어서 성령의 유일한 역사는 그 사람을 헌신하도록 인도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살도록 하는 것이다. 오 세부터 이십 세까지는 열심과 영적 체험을 가지고 있는 소년 성도를 비유할 수 있고 장년 시기는 건강하고 원숙한, 체험을 가진 성도들이다. 그러나 육십 세 이상의 사람들에게 정한 값은 왜 도리어 감소되었는가? 갈렙은 늙었을 때에도 힘이 장년 때와 똑같았다(수 14:11). 시편 92편 14절은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노년기에도 영적 생명이 좋을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육신은 늙어도 영적 생명은 늙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노년 때에 퇴보한다! 지금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가치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지 말라. 우리의 영적 상태는 퇴보할 가능성이 있음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이십 세부터 육십 세까지의 값을 다른 시기의 값보다 더 많이 정하셨다. 또한 그들은 문단에서 제일 먼저 언급되었다.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이십 세 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싸울 수 있는 전사(戰士)들이기 때문이다(민 1:3). 민수기 1장에서 열두 지파를 계수할 때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자가 얼마인가를 주목했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자녀에게도 이와 같이 값을 정하신다. 하나님 앞에서 기꺼이 자신을 드리는 사람은 모두 가치가 있다. 아무리 연약한 자라 할지라도 한 푼의 가치도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어나,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죄악을 제하며 하나님의 권리를 위해 사탄과 싸우는 사람은 더 가치 있는 믿는 이이다. 하나님의 눈길은 전사(戰士)를 주목하고 계신다. 남자와 여자의 값은 왜 차이가 있는가? 이것은 육신적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이스라엘 백성은 육신적인 면을 가리켰다). 이 값은 영적 생명의 강함과 약함을 가리키는 것이다(벧전 3:7). 구원받은 지 일 년밖에 안 된 사람도 오 년 된 사람보다 진보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에게 영적 연령 차가 있고 퇴보될 가능성도 있으며, 진보될 가능성도 있음을 알았다. 지금 우리 자신은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 “서원자가 가난하여 너의 정가를 감당치 못하겠으면 그를 제사장의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형세대로 값을 정할지니라”(8절).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우리의 영적 연령에 따라 지불해야 할 값이 있다는 것이다. 성령의 비춤으로 우리는 자신에게 지불해야 할 것이 없는지, 지불해야 할 것을 지불하지 못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대제사장 앞에 나아가 우리가 지불할 수 없음을 시인하고 우리의 값을 다시 정하기를 구해야 한다. 이때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도리밖에 없다. 성소의 세겔대로라는 말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값이 곧 당신의 가치라는 뜻이다. 이것이 가장 정확한 것이다. 사람의 저울은 그리 정확하지 못하다. 성소의 세겔대로 한 것이 가장 정확하다. 하나님이 정하신 값에는 조금도 오차가 없다. 우리의 반 세겔은 주께서 이미 지불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물어보아야 한다. “하나님, 당신의 손에서 나의 값은 얼마입니까?” (열두 광주리 가득히 6-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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