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쓰임받음과 대가를 지불함
목양 부담
주님의 보석 2011-10-22 , 조회 (55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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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쓰임받음과 대가를 지불함
하나님은 우주 가운데 그분의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역대로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 이루신 모든 역사는 그분의 계획을 따라 하신 것이다. 또한 그분의 계획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역사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계획을 완성하기 위하여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의 구속함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다 얻고자 하신다. 형제자매들이여, 오늘날 하나님께서 당신을 쓰시는 것을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당신을 쓰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예정하신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주님에게 쓰임받는 사람은 모두 그의 계획의 범위 안에 갇힌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에게서 완성되기 때문에 그분이 사람을 쓰시는 한도(限度)도 극히 광대하다.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 어느 나라의 국민이라면 그 사람은 곧 그 나라의 쓰임을 받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 안의 사람이라면 다 하나님의 나라의 쓰임을 받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
은혜 받고 구원받은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 쓰임받는 위치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각 사람에 대한 용도를 확증하기 위해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구속될 뿐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사람을 쓰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만으로는 하나님의 그 사람에 대한 용도를 그 사람의 느낌에 확증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부르심을 더하신 것이다. 그 의도는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용도를 확증하기 위함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주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구속하셨지만 우리를 쓰시는 데 대해서는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부르심을 분명히 받았을 때 비로소 주님이 우리를 쓰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쓰신다는 것을 확증한다. 이제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는가 부르시지 않았는가에 있다. 어떤 사람은 묻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의 권고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는 것을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것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날부터 지금까지 주님께 쓰임받는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있는가, 없는가? 우리 속에 주님이 우리를 쓰실 것이라는 미약한 음성이나 작은 느낌이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스스로 자문해 보면 된다. 우리에게 한 번이라도 이러한 느낌을 가졌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의 우리에 대한 부르심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을 위해 쓰임받기를 원하는 그 마음은 다 주님의 지극히 큰 역사임을 기억하라. 이 역사는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역사보다 더욱 큰 것이다. 주님의 창조의 역사는 그분이 우리 속에 주를 위해 쓰임받기 원하는 마음을 주시는 역사보다 훨씬 못 한 것이다. 주님이 사람 속에서 이렇게 역사하시는 것은 모두 주님의 크신 권고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것은 주님이 사람에게 임하시고 사람을 방문하신 것이다. 본래 우리는 주님을 거절한 사람이었다. 그러한 우리에게 어찌 주님을 위해 쓰임받으려는 마음이 있었겠는가? 오늘날 우리 속에 주를 위해 쓰임받으려는 생각이 있다는 것은 주님의 권고와 은혜가 우리에게 임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육천 년 이래 하나님은 수없이 사람들에게 임하셨고 사람들을 권고하셨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이러한 느낌은 그리 충분히 계발(啓發)되지 못했다. 하나님은 늘 사람에게 임하시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주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반드시 하늘로부터 번개같은 소리가 나거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본 큰 빛을 보아야만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실로 우리 속의 그 미약하고 작은 음성과 느낌도 원칙으로 볼 때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받은 부르심과는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아침에 미약한 태양 빛을 보고 낮에 강렬한 태양을 볼 때 태양 빛의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태양은 여전히 똑같은 태양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는 데에도 특별한 상황이 있을 때가 있다. 그러나 보통 때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에게 임하고 사람들을 권고하신다. 하나님의 권고가 사람에게 임한 것이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쓰임받는 것의 확증이자 시작이다.
대가를 지불함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함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주님의 권고는 사람이 주님을 위해 쓰임받는 것의 시작이다. 여기에서의 책임은 백퍼센트 주님 쪽에 있다. 주님께서 권고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도 별 도리가 없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의 권고 외에 사람 쪽에서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구약의 모세나, 다윗이나, 신약의 바울, 베드로 등은 다 주님의 권고를 받고 대가를 지불한 사람들이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은 그에게 즉시 능력과 계시와 은사를 주시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성으로 들어가면 한 작은 형제인 아나니아가 그의 할 일을 알려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이 후에 주님을 위해 크게 쓰임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꺼이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주님 쪽에서는 계속 권고가 있었고 바울 쪽에서는 계속 대가를 지불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해 쓰임받는 것은 주님의 권고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주님께 쓰임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는 우리가 대가를 지불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달려 있다. (열두 광주리 가득히 9권 166-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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