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해석하는 원칙
진리와 생명
하나님사람 2011-10-22 , 조회 (301) , 추천 (1)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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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해석하는 원칙
 
모든 것은 그 자체의 원리 원칙을 갖고 있다.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더 귀할수록 통제하는 원리와 원칙은 더 엄격하다.
성경은 우주 가운데 지극히 위대한 것이다.
성경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을 연구하거나 이해하기 전에 합당한 해석이 필요하다.
이 해석은 분명한 법칙과 원리에 따라야만 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아무렇게나 해석해서는 안 된다.
모든 법칙은 일종의 보호 역할을 한다.
기차는 철로가 있어야 한다.
만약 맹목적으로 조심성 없이 별堧?연구하고 해석한다면 그 결과는 매우 위험하다.
역사가 우리에게 이것을 보여 주고 있다.

Ⅰ 가능한 한 글자 그대로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었기 때문에 사람의 언어를 초월하여
영적인 해석으로만 열릴 것이라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말씀의 글 뜻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
글자 그대로의 해석이 아무리 어렵거나 부적절하게 보일지라도
글 뜻 그대로의 의미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이사야서에서 주 예수님이 처녀에게서 태어날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과
스가랴서에서 주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언은
당시에 영적으로 해석되어져야 할 것 같이 보였지만,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성경의 어떤 항목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야 하는지
아니면 영적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주의깊게 고려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계시록에 나오는 메뚜기를 오늘날의 비행기로 해석하고,
하늘에서 내리는 우박을 폭탄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너무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괴상하고도 비합리적인 본보기는 제칠일 안식교의 「시대의 표적」이라는 책이다.

Ⅱ 똑같은 문장과 구절과 문단 내에서
글자 그대로의 해석과 영적인 해석을 혼용하지 못함
 
성경의 한 문장이나 한 구절, 한 문단을
앞부분은 영적으로, 뒷부분은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또는 그것과 유사한 다른 방법으로 해석해서도 안된다.
요한복음 3장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어떤 해석가는
물을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고 성령은 문자 그대로 성령이라고 한다. 
이런 식의 해석은 원칙에서 어긋난다.
마태복음 3장에서 요한은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3:11,12) 라고 말했다.
여기의 불을 어떤 사람은 영적으로 환난과 시험으로 또는 불처럼 태우는 성령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앞의 물을 실제적으로 해석한다면 불 또한 글자 그대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것은 성경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이다.

Ⅲ 전체적인 진리를 제시하는 데 있어서 한 부분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함
 
성경을 읽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또 기록되었으되'(마4:7)라는 말씀을 주의해야 한다.
이것은 성경의 한 부분의 말씀만 고려해서는 안되고,
성경의 두세 부분 또는 더 많은 부분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탄은 성경을 단독적인 방법으로 따르도록 유혹한다.
「또」라는 말씀은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는 양면을 고려해야 하고 할 수 있으면 모든 면을 다 고려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균형 잡힌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Ⅳ 매구절은 모든 진리를 포함하고 있음
 
한면으로는, 단 한 구절이 진리 전체를 포함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진리를 이해하려면
한 구절에만 의존할 수 없고 다른 많은 구절들도 고려해야 한다. 
또 다른 면으로는 어떤 진리를 결정할 때 모든 구절을 고려해야 한다.
성경의 각각의 구절은 모든 진리를 포함한다.
성경의 어떠한 구절도 이것을 설명하는 데는 전성경이 필요하다.
만약 창세기 1장 1절을 이해하려면 전성경을 이해해야 한다.
한면으로는 창세기 1장 1절은 전성경을 포함할 수 없지만
또 다른 면으로는 창세기 1장 1절은 성경의 모든 진리를 포함한다.

Ⅴ 성경의 어떤 부분도 희생하지 않음
 
한두 구절 때문에 어떤 한 가지 해석을 할 수 없다면, 그 해석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모든 부분을 중시해야 한다.
어떤 진리의 해석과 반대되는 구절은 어떤 것도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해석을 포기하고 하나님께서 더 많은 계시를 주시도록 기다려야 한다.

Ⅵ 모든 병행된 표현이 똑같음
 
성경에는 서로 병행된 표현들이 많이 있다.
이 모든 병행 구절들은 서로 똑같고 다르지 않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5장에서 주님은 아홉 가지 축복을 말씀하셨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
이것이 첫번째 표현이 두 번째 것과 어울리는 표현이다.
이 경우 각각의 축복에 먼저는 축복의 조건이 있고 그 다음 축복 그 자체가 있다.
모든 구절들이 똑같다.
만약 한 구절의 첫 번 째 부분이 어떤 조건을 말하면
모든 병행 구절의 첫 번 째 부분도 또한 조건을 말한다.
한 구절의 두 번 째 부분이 축복을 말하면
모든 표현이 두 번 째 부분도 또한 축복을 말한다.

Ⅶ 배경에 제한받지도 않고 배경을 무시하지도 않음
 
예를 들면 주님의 산상수훈에는 많은 말들이 유대교의 배경을 갖고 있다.
만약 이 구절의 본래 의미를 이해하려면 그 시대의 배경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또 한 면으로 배경에 제한되어서도 안된다.
만약 당신이 이런 배경에 제한된다면 큰 문제를 야기시키게 될 것이다.

Ⅷ 시대의 차이에 주의를 기울임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에 따라 나뉜다.
말씀을 이해하려면 매시대의 차이를 구별해야 한다.
율법시대에 주어진 말씀을 은혜시대에 적용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안식교도들의 실수이다.
비록 모든 것이 성경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일지라도
구약시대의 말씀을 취하여 현시대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성경을 설명하고 해석할 때 「이것이 성경 말씀이 아니냐
이것이 성경 말씀이라면 이것을 지켜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시대를 구분해야 한다.

Ⅸ 말씀의 대상을 구분하는 데 주의를 기울임
 
성경을 해석할 때 말씀의 대상이 되는 사람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말씀은 유대인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방인이나 교회와는 관계가 없고
어떤 말씀은 이방인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이나 교회와는 관계가 없으며 
어떤 말씀은 교회에 주신 것이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과는 관계가 없다.

Ⅹ 구약에서 예표로 분명하게 언급되지 않은 사람, 사건, 사물을
예표로 다루지 않고 예증으로 다룸
 
구약에는 많은 사람, 사건, 사물들이 예표로 사용되었지만
이것이 예표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신약에서 명확한 증거를 찾아야만 한다.
신약에서 그 사물, 사건, 사람을 예표로서 언급한 곳이 없으면
성급하게 이것이 예표라고 추측해서는 안 된다.
기껏해야 이러한 사람, 사건, 사물을 예증으로 빌려와서
신약에 있는 진리를 설명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것이 예표(Type)라고 말할 때
이것은 단순히 예증(illustration)이라고 말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위트니스 리 책 요약. 한국복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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