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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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보석 2011-10-23 , 조회 (62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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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녹의 일생
나는 에녹이 회개한 시기나 65세 전에 어떻게 살았는 가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러나 그가 65세가 되었을 때 므두셀라를 낳은 후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한 것은 알 수 있다. 에녹의 65세 전의 생활은 알 수 없지만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그에게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향수(享壽)한 365세 중 후반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 그러므로 그의 아들의 이름은 아주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므두셀라’라는 이름은 “그가 죽은 후에 그 일이 발생하리라”는 뜻을 의미하고 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어떤 이름을 지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분명히 하나님께 여쭈었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장차 있을 대환난에 대해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에녹은 경외하는 마음을 품고 일깨움을 얻은 것이 분명하다. 노아는 의(義)의 도를 전했고, 에녹이 하나님의 심판을 전파한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노아가 구원의 길을 전한 것은 하나님이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신 데에서 계시되었고, 에녹이 하나님의 심판을 전한 것은 그의 아들의 이름에서 계시되고 있다. 우리는 오직 우리 속에서 효력을 발한 말씀만을 전파할 수 있다. 노아는 믿음으로 방주를 예비하였고, 에녹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유익을 얻었다. 만약 우리가 죄인과 육체가 심판받을 것이고 이 세상도 심판받을 것임을 안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베드로는 말했다. “그날에 하늘들은 큰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원소들은 뜨거운 열에 풀어지며, 땅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은 타 버릴 것입니다.”(벧후 3:10) 우리는 이러한 종말을 맞을 세상을 여전히 사랑할 것인가? 어떤 은행이 곧 파산될 것을 알고도 그 은행에 예금하는 사람을 보았는가? 그 은행이 파산될 것을 아는 사람은 누구도 그 은행에 예금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종말이 불에 태워질 것을 알게 된 이상 다시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에녹은 ‘므두셀라’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깨어 있었다. 결국 그는 들림을 받았다.
에녹의 환경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그의 환경이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좋아서였는가? 그렇지 않다. 먼저 에녹의 가정환경을 보자. 창세기 5장 22절은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네 전도인들은 밤낮으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지만 가정 살림이 많은 우리들은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까?” 맨 처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의 상황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에녹은 …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라고 말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온종일 시끄러운 기계 소리만 들을 수 있는 공장 안에서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에녹은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 에녹은 가정적인 부담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가 받은 생명은 좋은 환경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이 생명은 어떠한 환경에서나 나타날 수 있다. 좋은 환경만이 아닌 어떤 환경에서나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귀찮은 집안 일(가사)이나 자녀의 부담은 결코 주님과의 동행을 막을 수 없다. 내 말은, 믿는 이에게는 가정의 짐이 무겁지 않고 가사의 책임이 적다는 뜻이 아니라 믿는 이는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처럼 이러한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그러한 환경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 에녹이 그러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듯이 우리도 할 수 있다.
에녹이 처한 가정의 상황이 이러했을 뿐 아니라 그가 처한 그 시대의 환경도 아주 어두웠다. 에녹 당시에, 아담도 아직 살아 있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에게서 낳은 그 지파가 모두 살아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어떠한가?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19). 라멕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부일처(一夫一妻)의 규칙을 첫째로 깨뜨린 사람이다. 그때 이후로 일부다처(一夫多妻)의 풍습이 일어났다. ‘아다’라는 이름은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다. 그 여자들은 전적으로 치장을 주의했다. 이때 옛 풍습은 깨뜨려지고 부녀들은 사치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20). 이 사람은 처음으로 육축을 방목(放牧)하여 이익을 도모한 사람이다.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21). 그때에 사람들은 이미 음악과 오락에 관심을 두었다.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22). 동철로 만든 각양 날카로운 기계는 바로 무기이다. 그때 이미 전쟁이 시작됐다. 그러나 에녹은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했다. 정욕을 방종하고, 돈 벌 기회를 만들고, 음악을 즐기며, 무기를 만드는 것, 이것이 오늘날의 상황이 아닌가? 하나님은 에녹이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과 300년간 동행한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영국의 펨버(G. H. Pember)는 주님 안에서 매우 깊은 사람 중의 한 분이다. 그는 수십여 년 전에 이러한 예언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 세상 사람들은 음악에 더욱 관심을 가질 것이고, 더욱 높은 지식을 주목하고, 무기를 만드는 데 더욱 관심을 둘 것이며, 부녀들은 여권(女權)을 신장하는 데 전보다 더 관심을 가질 것이다.” 오늘날 상황은 어떤가? 우리는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모두 알고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열두광주리가득히9권 181-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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