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단계의 길(마가복음 6장 45절-4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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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보석 2011-10-23 , 조회 (55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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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단계의 길(마가복음 6장 45절-48절)
예수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태우시고 건너편 벳새다로 먼저 가게 하셨으며, 그동안에 무리를 돌려보내셨다. …그분은 홀로 육지에 계셨다. 바람이 거슬러 불어 제자들이 노를 젓느라고 괴로워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밤 네 번째 파수 시간쯤에 바다 위를 걸으셔서 제자들에게로 오시어 그들 옆을 지나가시려 하셨다.
이 구절은 우리 주님에게 정한 길이 있음을 말해 준다. 여기에서의 ‘재촉’은 고린도후서 5장 14절의 ‘강권’과 같은 단어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배에 오르라고 강권하셨다. 주님은 그들을 위해 죽으셨고 이제 그들에게 길을 가라고 재촉하신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갈 길을 정하셨고 또한 그들에게 그 길을 가라고 명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일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이 그에게 정한 길을 찾아서 충성을 다하여 그 길을 가는 것이다. 오늘날 믿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그를 위해 정한 길을 찾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길을 찾았지만 그 길을 가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그들의 생활에 많은 영적 사망이 있고 제한이 있다.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도 많은 충돌을 일으키고 다툼이 있게 된다. 이것은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 좋지 않은 현상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그분이 나를 위해 정한 길을 알 수 있도록 지시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평온한 가운데 기다리면서, 기도와 드림과 순종하는 자세로 자신을 하나님의 손길에 맡기고, 오직 하나님의 지시만을 찾고 그분에게 순종하고 다만 그분의 뜻만을 따라야 한다. 그 다음에는 대가를 지불하여 한 마음으로 그 길을 가야 한다.
중국에서 사역을 한 모알은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는 비결은 마지막 30분을 지속한 데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승리한 시험은 얼마나 되는가? 물론 지금의 어두움은 심하지만 그렇게 길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 21장 12절은 어떻게 말하는가? “파수꾼이 가로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지금은 밤이지만 아침이 가까웠다. 바로 지금 이러한 때에 마지막 30분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우리의 눈은 단지 어두운 밤만을, 어려움만을 보지 말아야 한다. 오늘 당신이 이 길을 가지 않고 손을 뗀다면 너무도 가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얼마 안 가서 건너편으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펜 루이스(Penn Lewis)는 “많은 믿는 이들이 많은 억눌림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 싸움은 날이 거듭될수록 심해지고 사탄의 유일한 공격 목표는 우리인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당신이 지금 마지막 30분을 계속 지속하는가에 달려 있다. 다니엘서 7장 25절에서 ‘그가…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괴롭게 한다는 말을 바꾸어 말하면 ‘마멸(磨滅)시킨다’는 뜻이다. 성도를 마멸하는 공작은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가 믿는 이를 마멸하는 사탄을 아는 것은 소리 지르는 사자 같은 사탄을 아는 것보다 어렵다.” 고령(高嶺)에 있을 때 나는 세숫대야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 있는 돌을 보았다. 그 구멍은 매일 매일 작은 돌이 부딪침으로 생긴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이렇게 대한다. 사탄은 당신을 단번에 죽이지 않고 날마다 당신을 마멸시킨다. 이렇게 하여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입게 한다. 성도들이여! 우리가 괴로움을 당하지만 한 시간 동안 계속 지속할 수 없는가? 주님과 함께 마지막 30분을 지속할 수 없는가? 우리가 주님과 한 시간이라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인가? 오! 지금은 우리가 서야 할 때이다. 이 길에서 한번도 역풍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가련한 사람이다! 이 세상이 고통스럽고 악하며 사람을 핍박하는 것임을 느끼지 못한 사람은 아직 이 길을 출발하지 않은 사람이다. 오직 당신이 이 길을 충성스럽게 갈 때만이 어려움과 바람의 거스름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때에는 또한 “너무 고통스럽다. 잠시 손을 떼고 쉬자.”는 속삭임이 있다. 그러나 이미 먼 길을 온 당신이 지금 쉬는 것은 너무도 가치 없는 것이다.
“바람이 거슬러 불어 제자들이 노 젓느라고 괴로워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시고,”주님은 우리가 변하는가 변치 않는가, 전진하는가 후퇴하는가를 보신다. 주님의 눈길은 나를 보고 계시고 당신을 보고 계신다. 주님은 우리가 걷고 있는 모든 단계를 주의하신다. 주님은 우리가 당한 시험과 일이 얼마나 많고 어려운지를 알고 계신다.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밤 사경 이상의 어려움을 주시지 않는다. 밤이 매우 깊을 때 그분이 오셨다. 그분은 이미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승천하여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동시에 우리의 어려움을 보시고 밤이 깊을 때 그분이 오신다.
48절을 보라. 주님이 “제자들에게로 오시어 그들 옆을 지나가시려 하셨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를 읽을 때 이상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주님이 제자들에게 가려고 하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건너편 벳새다로 가라고 명하셨으므로 그분은 산에서 내려오셔서 벳새다로 가시는 것이다. 주님이 다른 곳에서 제자들을 기다리시겠는가? 주님은 그분이 제자들에게 명한 길을 따라 그들을 찾아오신 것이다. 만약 제자들이 다른 곳으로 방향을 돌렸다면 주님이 오실 때 그들은 만날 수 없다. 주님은 결코 제자들이 잘못 가는 길에서 기다리시지 않는다. 이것은 매우 엄숙한 일이다. 나는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 생각할 때, 만약 주님이 나에게 상해(上海)에 있으라고 하셨는데 내가 남경(南京)에 가 있다면 그분이 오실 때 나는 들림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들림받는 것은 주님이 정하신 길에서 들림받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여기 상해에 있지 않는다면 들림받을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우리 모든 사람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열두 광주리 가득히 11권 5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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