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부의 마음
아침
주님의 보석 2011-10-23 , 조회 (50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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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과 자녀를 대표하는 데 있어서 늘 여인을 사용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를 여인, 즉 과부와 아내와 처녀로 비유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과부인 동시에 아내이자 처녀이다. 이 세상에서 과부와 아내와 처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 18장은 그리스도인이 과부의 위치에 있다고 말하고, 로마서 7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아내의 위치에 처해 있다고 말하고, 고린도후서 11장에서는 처녀의 위치에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의 세상에 대한 태도는 과부이고,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는 데 있어서는 아내이다. 그리스도의 역사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처녀이다.
1. 과부
내 마음을 감동시키는 한 가지 일은, 우리가 오늘 이 세상에서 가져야 할 마음은 과부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이 사랑스럽지 않거나, 성경에서 명령했기 때문이거나,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정욕이 모두 지나가기 때문이 아니다. 세상은 사랑스러운 것이다. 세상에 있는 물건이나 사람들은 모두 사랑스럽다. 66권으로 된 성경 전체에서 해 아래서 행한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한 곳은 오직 전도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이 헛되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주님이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 의해 못 박히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은 과부의 마음이다.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은 당신에게 사랑스러운 곳으로 변할 것이다.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야말로 당신의 즐거운 곳이다. 그분이 이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은 과부의 마음이고 이 세상은 내게 있어서 텅 빈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에게 붙들리지 않는 것은 세상이 사랑스럽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잘 입고 잘 먹는 것은 편하고 즐거운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사랑하는 어떤 사람에게 붙들렸을 때에는 모든 것이 가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분이 이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치 없게 되어 버린다. 그분이 이곳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나의 세상은 괴로운 것이다. 만일 어느 여인이 사랑하는 남편이 죽었는데도 여전히 잘 먹고 잘 입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 여인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면 측근에 있는 사람들은 그 여인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고 비평할 것이다. 이것은 잘 입고 잘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분이 여기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그 여인의 마음은 이 모든 것들을 개의치 않는 것이다. 입는 것이나 먹는 것들 자체에 흥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것들에 대한 흥미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이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내가 고독을 느끼는 것은 그분이 여기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무리를 떠나 혼자 있을 때 내 마음이 불타오르는 것은 그분의 계심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해변가에서 배회하며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고독하고 외롭지 않는 것은 그분이 나를 위안하시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당신을 붙잡을지 모르지만, 만일 당신이 주님으로 충만된다면 그 모든 것이 가치 없게 느껴질 것이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셨고 그분이 남겨 둔 것은 십자가와 빈 무덤뿐이다. 나의 주님이 이미 죽으셨기 때문에 나는 과부이다. 이 세상이 나쁘거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분이 여기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형제자매여, 이 세상에서 우리의 위치는 참으로 과부의 위치이다. 우리의 주님이 이 땅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내게 사랑스럽지 않게 된 것이다. 주님이 그의 마음에 만족이 될 필요가 없다는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주님은 그 도시에 사는 한 과부가 늘 그에게 가서, ‘나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주십시오.’라고 하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과부이다.
계시록 18장은 타락된 교회를 바벨론으로 비유했다. 그녀는 마음속에서 이르기를 “나는 여왕으로서 앉아 있다. 나는 과부가 아니니, 결코 슬픔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오직 타락한 자만이 자신을 과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타락할 때에는 과부의 특징을 잃게 된다. 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려면 과부의 위치에 서 있어야 하며, 이 세상에 대해 날마다 과부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한번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자주 금식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마 9:14)라고 물었다.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 슬퍼할 수 있습니까?(마 9:15)고 하셨다. 오! 그분은 이미 이곳에 계시지 않는다. 지금은 우리가 마땅히 금식할 때이다. 당신은 세상에 대해 금식하고 있는가? 이 땅에 그분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이 땅은 나의 집이 아니요, 이 땅에는 나의 즐거움이 없다. 오늘 여기에 놓여 있는 떡과 잔은 그분이 이 땅에 계시지 않음을 알려 준다. 떡은 그분이 죽임을 당하셨음을 말해 주고 잔은 그분이 피 흘리셨음을 말해 준다. 그분이 여기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도 여기에 있지 않다. 무엇이 당신의 마음속에서 그분을 대치할 수 있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세상을 버리는 것은 세상이 사랑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분이 여기에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 보물이 있는 곳에는 내 마음도 있기 때문이다. 내 보물이 이곳에 있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도 이곳에 있지 않는 것이다.(열두 광주리 가득히 11권 64-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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