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처녀
아침
주님의 보석 2011-10-23 , 조회 (328)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2. 아내
성경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과부라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로마서 7장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아내와 같다고 했다. 과부와 아내의 차이를 아는가? 과부란 남편이 없고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을 말하고, 아내란 남편이 있고 의지할 데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가정에서 경제적인 책임을 누가 지고 있는가? 그 책임은 아내에게 있지 않고 남편에게 있다. 만약 남편이 아내가 번 돈으로 가정을 꾸려 간다면 그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과부는 이 땅에서 의지할 것을 잃은 자요,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모든 공급을 받을 수 있는 자이다. 여러분은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아내와 남편의 관계임을 아는가? 우리의 모든 필요를 그분에게서 공급받아야 한다. 당신은 어떻게 하면 이번 달의 필요를 채울 수 있는가를 마음속에서 계산할 것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의 성질이 나쁘고, 교만하고,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봉사할 때 힘이 없고, 기도하기 싫고, 성경을 읽는 맛을 잃었다 하더라도 당신의 이 모든 문제를 그리스도에게서 해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가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여인이 출가한 후에는 즉시 그의 남편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서 누가 장 형제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가? 장 형제의 친 형제도 사용할 수 없고, 그의 자녀도 사용할 수도 없고, 심지어 그의 부모까지라도 장 형제의 이름을 쓸 수 없다. 오직 그의 아내만이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질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의 이름으로’라는 말씀의 귀함을 보지 못했다. ‘나의 이름으로’라는 이 한 구절 속에 얼마나 많은 축복이 들어있는지 모른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얻을 것이요!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냄! 내 이름으로 병든 자에게 기름을 바름! 내 이름으로 죄를 사하고 내 이름으로 전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누가 능히 주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을 하였으므로 귀신이 그 말로 인하여 도망갔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 침례를 줄 때 전례를 따라 “주님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침례를 줍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장 형제의 이름으로 은행에 가서 돈을 인출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나는 다만 내 이름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자!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에게 속했기 때문이다. 그분의 모든 것은 모두 우리의 것이다. 그분은 그리스도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사람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행할 권세가 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 그날 그분과 연합되었다. 그러므로 그분의 이름이 내 이름이 되었고, 나는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미 그분의 부활 안으로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얻지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남편이 그의 아내를 아끼고 보살피고 공급하고 부축하는 것같이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하신다. 그리스도의 풍성을 누리는 데 있어서는 우리 자신이 과부가 아니라 아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3. 처녀
성경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데 있어서 우리가 처녀임을 말해 준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기 위하여 정결하게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질투로 여러분에게 질투합니다.”라고 말한다. 여러분은 질투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아는가? 여기에서 바울이 말한 뜻은, 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른 사람이 그들의 마음을 얻는 것을 질투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주님의 것이다. 누가 당신을 붙잡아 가거나 빼앗아 가는 것은 합당치 않다. 예를 들어 내 친구 중에 하나가 어떤 사람과 정혼했다 하자. 내 친구가 여기 있지 않을 때 그의 약혼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내 친구를 위하여 그녀에 대해 분노가 생길 것이다. 나는 내 친구를 위하여 그 약혼녀의 마음을 빼앗아 간 사람을 질투할 것이다. 바울은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같이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만진 바 되지 않고 아무런 티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하고 깨끗한 사랑에서 떠나지 않았는가를 살펴보기 바란다. 만일 성도의 생각하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신의 즐거움이라면 주님은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한 가지 일은 주님께 “주여,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저의 의복과 마음을 깨끗하게 지켜 주시고 나의 생각과 모든 것이 깨끗하도록 지켜 주소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 어느 누구도 나를 만질 수 없다! 아가서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아 4:12). 여기에서 무엇 때문에 계속 ‘잠근’이나 ‘덮은’이나 ‘봉한’이라는 말을 사용했는가? 나의 동산에는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고 오직 사랑하는 자에게만 열려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내게서 물을 얻을 수 없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목마름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 내게서 물을 얻을 수 없다. 나의 우물과 나의 샘은 모두 그분을 위하여 남겨 둔 것이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이러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나는 주님을 위한 자이므로 그 누구도 나를 만질 수 없다. 바울은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내 몸에 예수님의 낙인이 짝혀 있기 때문입니다.”(갈 6:17)라고 말했다. 오! 내 몸에 십자가의 낙인이 있으니 누구도 나를 괴롭게 할 수 없다. (열두 광주리 가득히 11권 68-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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