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안에 역사해 들어오신 그리스도를 소유해야 한다.
아침
주님의 보석 2011-10-23 , 조회 (27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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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안에 역사해 들어오신 그리스도를 소유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계시되었고(갈 1:15-16) 그의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시며(갈 2:20) 그의 안에 그리스도께서 형상을 이루셨으며(갈 4:19) 그에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빌 1:21)라고 말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살았다. 다소의 사울이었을 때 그는 유대교라는 다메섹을 통과하며 많은 것을 얻었다. 그 당시에 그가 얻은 모든 것은 엘리에셀이었다. 주님은 바울에게 그 모든 것들-쓰레기와 배설물과 개가 먹는 밥-을 잊어버리고 덮어버리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이 가진 것들 중 어떤 것도 그리스도를 낳을 수 없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 역사해 넣으신 것만이 그리스도를 낳을 수 있었다. 주님은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너의 종교적인 배경에서 네가 얻은 것은 결코 그리스도를 낳을 수 없다. 오직 내가 네 안에 역사해 넣어주는 것만이 그리스도를 낳을 수 있다. 내가 네 안에 역사해 넣어주는 것은 내 은혜이다.』 결국 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나에게 주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고전 15:10).
여기에서 나는 은혜와 축복의 차이점에 대해 말하고 싶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은혜는 사실상 축복이다. 축복이란 무엇인가? 축복은 번창이요 이익이요 상여금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라는 단어의 형용사형을 사용하여, 『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은혜로우신지!』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그러나 이것은 은혜의 참된 의미와는 심히 거리가 멀다. 민수기 6장 25절에 있는 「은혜로운」의 히브리어 단어는 「낮은 사람을 다정하게 대하기 위해 자기의 몸을 굽히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왕이 거지에게 무엇을 주기 위해 다정하게 몸을 굽힐 수 있다. 이것이 은혜로움의 의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은혜는 오직 하나님 자신이다. 성경에서 은혜는 다만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누림이 되신 하나님 자신이다. 요한복음 1장 17절은,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것이지만, 은혜와 실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 육체가 되시어은혜와 실재가 충만하였다.』고 말하며 요한복음 1장 16절은, 『우리가 다 그분의 충만에서 받았으니, 은혜 위에 은혜였다.』고 말한다.
축복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은혜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직장과 건강과 우리의 육신의 생명까지도 잃었을 것이다.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 온전히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생존하는 것뿐이라면 헛되고 헛되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다만 여기에서 생존을 위해 돈을 벌고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헛되고 헛되다. 모든 자동차와 집과 학위와 직장이 헛되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이 있습니다. 아들들은 의사이고 딸들은 교수입니다. 이 어떠한 축복인지!』 만일 당신의 생존이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것들은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헛되고 헛된 것들 안에 살기 위한 축복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오 년 전에 나는 겨우 매년 오천 달러를 벌었는데 작년에 나는 이만 오천 달러를 벌었습니다. 이 어떠한 축복입니까!』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하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헛되고 헛된 것들 안에 살기 위한 축복이다.
최근 어느 날 아침에 주님은 나를 일찍 일어나게 하셔서 한 가지를 보여 주셨다. 그것은 신약의 책들 중 어느 책도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또는 『축복이 여러분의 영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라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서신이,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라는 말로 끝난다(갈 6:18, 엡 6:24, 빌 4:23, 골 4:18).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물질적인 것들이 번창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은 말씀이 축복으로 가득한 육체가 되었다거나 축복이 그리스도와 함께 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책도,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구약에는 주로 축복이 있지만 신약에서는 물질적인 축복이 즉시 영적인 축복으로 대치된다. 에베소서 1장 3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영적인 축복으로 축복하셨다고 말하며, 에베소서의 마지막 구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성경 전체의 마지막 구절 또한 은혜를 말한다. 계시록 22장 21절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요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축복이 너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다. 그 구절은 다만, 『주 예수님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당신은 민수기 6장 24절부터 26절에서,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준 축복을 기억하는가? 그것은 이와 같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반대로 고린도후서 13장 14절에 있는 바울의 축복은 또 다른 범주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반복하거니와 축복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것이고, 은혜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171-1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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