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하나님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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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보석 2011-10-24 , 조회 (28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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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하나님의 로맨스
 
배필을 얻으실 목적으로 사람을 창조하심
 
역대로 하나님은 사람과 로맨스를 가지셨다. 하나님은 배필을 얻으실 목적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사람을 창조하신 그분의 의도는 주로 종을 취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순수하게 색안경을 쓰지 않고 읽는다면,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배필을 얻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전사가 아니라 사랑하는 자이시다. 사랑하는 자이신 그분은 그분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이는 그분이 사람을, 그분을 사랑하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원 가운데 하나님은 혼자이셨다. 우리는 심지어 그분이 외로우셨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랑에 대한 그분의 바램은 천사들에 의해서 채워질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분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분은 사람이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이렇게 해서, 그분의 배필로 창조된 인류와 하나님 사이에 서로 사랑의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그분의 배우자로 택하심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분의 배우자로 택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예레미야 31장 3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분은 그들과 「데이트」하셨고, 후에는 그들에게 구혼까지 하셨다. 에스겔서 16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보셨을 때 사랑했다. 8절은 이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스러운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우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로 내게 속하게 하였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하심으로써 약혼하셨다.
 
예레미야 2장 2절에서도 이 언약을 말씀한다. 이 언약은, 『네 소녀 때의 우의와 네 약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원문 참조). 이 구절은 그 언약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데리고 나온 후에 광야에서 행하여졌음을 알려준다. 출애굽기 1장부터 19장까지는 이스라엘의 유년기였다. 주께서는 이스라엘의 유년기의 우의와 약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셨다. 나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실지로 하나님을 사랑했는가 궁금했다. 이 구절에서 주님은 사랑하는 이에게 구혼하는 데 실패했을 때 스스로 용기를 가지기 위해 자신을 격려하는 청년 같았다. 그러한 청년은 사랑하는 이가 단지 그를 쳐다보기만 해도 틀림없이 용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의 처음 열 아홉 장의 어디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약혼 때의 사랑을 볼 수 있는가? 어디에서 그와 같은 배우자의 사랑을 볼 수 있는가?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예레미야 2장 2절에서 주님은 이스라엘의 약혼 때의 사랑과 유년기의 우의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내가 보기에는 이스라엘이 주님께 그렇게 친근하거나 정중하거나 공손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예레미야에서 그분은 이스라엘의 유년 때의 우의를 기억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그 표현들은 예레미야 2장 2절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셨는가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눈이 멀으셨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분은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한 백성, 즉 이스라엘 자손을 그분의 배우자로 택하셨다.
 
신부를 위한 신랑으로 오심
 
주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분은 신부를 위한 신랑으로 오셨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침례자 요한의 선포를 알고 있다. 『보십시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요 1:29). 그러나 요한이 또한 주 예수를 신랑으로 언급했다는 것은 그렇게 많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요한복음 3장 29절에서 그는, 『신부를 얻는 사람은 신랑이지만』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씀은 부활에 관한 장(요 3:3-9)에 포함되어 있다. 부활의 목적은 신랑을 위한 신부를 만들고 예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신부를 취할 자이시니, 그분은 신랑이시라.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셨을 때,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와 구원자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랑이 되기 위해 오셨다.
 
마태복음 9장 15절에서 주 예수님은 그분 자신을 신랑으로 언급하셨다. 금식에 관하여 물었던 눈먼 종교인들에게 주께서는,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 슬퍼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들이 올 것인데, 그때에는 금식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요한의 제자들에 의해 제기된 질문에 관하여 주께서는 그분 자신을 신부를 취하기 위해 오신 신랑으로 나타내셨다. 종교인들의 눈은 그리스도께서 신랑으로 오셨다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우리의 눈이 신랑으로 오신 주를 보기 위해 열려져야 한다.(출애굽기 라이프 스타디 221-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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