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이패드의 왕좌가 위협받고 있다. 금융시장분석업체 캔어코드 지뉴이티가 12월8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애플 아이패드의 전세계 시장 점유율은 2011년 4분기 들어 50%대까지 낮아질 전망이다. 불과 3개월 만에 20%나 급락한다는 뜻이다. 지금 태블릿 PC 시장에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나.
서비스>하드웨어
아이패드를 위협할 태블릿 PC는 아마존 ‘킨들 파이어’다. 킨들 파이어는 미국 아마존이 지난 11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안드로이드 태블릿 PC다. 화면 크기는 7인치급이고, 운영체제로는 구형 안드로이드를 탑재했다.
캔어코드 지뉴이티는 보고서를 통해 아마존 킨들 파이어가 2011년 4분기 들어 전세계 태블릿 PC 시장에서 15.3%의 점유율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킨들 파이어의 판매량 증가에 따라 아이패드의 점유율은 2011년 4분기 53.2%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그동안 태블릿 PC 시장에서 이같이 빠르게 퍼진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제품이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킨들 파이어의 파급력을 알 수 있다.
킨들 파이어엔 모바일 기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메라가 없다. 화면 크기는 7인치고, 해상도는 1024×600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소위 ‘성능 빵빵한’ 모바일 프로세서가 탑재된 것도 아니다. 심지어 구글 호환성 인증도 받지 않았다. 안드로이드마켓이나 구글 지도 등 구글의 기본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다. 아무리 뜯어봐도 킨들 파이어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10인치급 안드로이드 태블릿 PC와 비교해 보잘 것 없는 사양을 갖췄다. 킨들 파이어의 숨은 저력은 어디서 나올까.
바로 아마존이라는 배후다. 킨들 파이어는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안드로이드 모바일 기기 제조업체의 기능과 하드웨어 스펙 경쟁을 비웃는다. 기능과 스펙이 아닌 서비스를 중심에 두는 모바일 기기라는 뜻이다. 기존 제조업체가 앱 마켓이나 운영체제 기능을 부각해 하드웨어 판매로 수익을 올리는 방식이었다면, 아마존은 킨들 파이어를 통해 하드웨어가 아닌 서비스에서 돈을 버는 것이 목표다.
이 같은 전략 덕분에 아마존은 킨들 파이어를 199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출시할 수 있었다. 기존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제품군이 599달러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가격 경쟁력이 높다고 평가받는 애플 아이패드조차 가장 싼 제품이 499달러에 이른다.
덕분에 킨들 파이어는 완전한 소비형 태블릿 PC의 외형을 갖췄다. 아마존을 통해 전자책을 구입하거나 아마존 쇼핑몰을 이용할 수 있다. 아마존이 직접 서비스하는 아마존 앱스토어도 킨들 파이어의 강력한 무기다. 영화나 TV 프로그램도 모두 아마존을 통해 이용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아이패드 시리즈와 안드로이드 태블릿 PC가 생산성 영역에 절반쯤 발을 걸치고 하드웨어 판매로 매출을 올린 것과 전혀 다른 경쟁 방식이다.
삼성, 결정적 한 방 없다
킨들 파이어의 시장 확대에 따른 아이패드의 점유율 하락도 눈에 띄지만, 정작 속이 타는 쪽은 기존 안드로이드 태블릿 PC다. 사용자를 매혹할 만한 장점이 없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11년 들어 ‘갤럭시탭10.’1과 ‘갤럭시탭8.9′ 등 성능에 초점을 맞춘 태블릿 PC 제품군을 쏟아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시장조사기관 HIS가 2011년 3분기 발표한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 갤럭시탭10.1은 2011년 3분기 전세계에서 125만대를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IHS는 갤럭시탭10.1이 4분기에는 137만대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1년 상반기 판매량 추정치 100만대를 합치면 삼성전자가 올해 판매한 갤럭시탭10.1은 350만대 수준이다. 킨들 파이어가 출시 직후 300만대 가량 팔린 것과 비교된다.
갤럭시탭10.1은 사용자를 끌어들일 서비스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아이패드처럼 독창적인 콘텐츠를 제공해 시장을 선점한 것도 아니고, 아마존처럼 강력한 서비스도 갖고 있지 않다. 이 같은 문제는 안드로이드4.0(아이스크림 샌드위치)으로 운영체제를 판올림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운영체제 기능이나 하드웨어 성능과는 관련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갤럭시탭10.1이나 갤럭시탭8.9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LG전자나 모토로라 모빌리티, HTC 등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제조업체가 아마존과 같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진영이 하드웨어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더 공허하게 들린다.
구글 입만 쳐다보는 제조업체
아마존을 제외한 안드로이드 태블릿 PC 제조업체가 이 같은 서비스를 직접 내놓을 수 없다면, 결국 해법은 구글의 움직임에 달렸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태블릿 PC를 좀 더 소비지향적인 플랫폼으로 둔갑시켜야 한다. 구글의 유튜브와 클라우드 음악 서비스인 구글뮤직이 좋은 대안이다.
국내 TV 프로그램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구글은 방송사와 제휴해 유튜브를 통해 일부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을 확대해 앞으로 콘텐츠 대여 시장을 노려봄 직하다. 방송사의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어 킬러 콘텐츠를 구글이 제공하는 식이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도 같은 방식으로 지원할 수 있다. 구글뮤직은 음악 서비스 쪽으로도 비슷한 전략을 구상할 수 있는 좋은 플랫폼이다.
애플과 아마존이 빼든 핵심 경쟁력은 서비스다. 우리나라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운영체제 산업도 큰 경쟁력을 낳을 수 없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 사례가 지천에 널렸음에도 헛다리만 짚는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