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전세계를 휩쓴 스마트폰, 태블릿 PC 열풍이 소비 성향을 비롯해 생활 패턴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그만큼 요즘 IT 기기는 우리의 일상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 동안 영화에서나 볼 법한 신기술을 이제는 누구라도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신기술 중 하나가 바로 ‘증강현실’이다.
인기 만화인 ‘드래곤볼(토리야마 아키라 작)’에는 안경처럼 눈에 착용하고 상대를 바라보면 그의 전투력 정보와 상대 거리, 위치 등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스카우터’라는 기기가 등장한다. 이것이 증강현실 기술의 대표적인 사용 예다. 현실의 사물에 대해 가상의 관련 정보를 덧붙여 보여주는 것. 이처럼 불과 십 수년 전에는 상상에 머물렀던 미래 기술이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과 증강현실을 혼동하고 있다. 가상현실은 자신(객체)과 배경·환경 모두 현실이 아닌 가상의 이미지를 사용하는데 반해,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은 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겹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술이다. 증강현실은 또한 혼합현실(Mixed Reality, MR)이라고도 하는데, 비행기 제조사인 ‘보잉’ 사에서 1990년경 비행기 조립 과정에 가상의 이미지를 첨가하면서 ‘증강현실’이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됐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은 서로 비슷한 듯 하지만 그 주체가 허상이냐 실상이냐에 따라 명확히 구분된다. 컴퓨터 게임으로 예를 들면, 가상현실 격투 게임은 ‘나를 대신하는 캐릭터’가 ‘가상의 공간’에서 ‘가상의 적’과 대결하지만, 증강현실 격투 게임은 ‘현실의 내’가 ‘현실의 공간’에서 가상의 적과 대결을 벌이는 형태가 된다. 때문에 증강현실이 가상현실에 비해 현실감이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다.
이 밖에 가상현실은 일반적으로 영화나 영상 분야 등 특수 환경에서만 사용되지만, 증강현실은 현재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활용될 만큼 대중화된 상태다. 예를 들어, 인터넷을 통한 지도 검색, 위치 검색 등도 넓은 의미에서는 증강현실에 포함된다. 다만 컴퓨터는 이동 중 사용이 곤란하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의 휴대용 기기를 대상으로 한 증강현실 기술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증강현실은 내부적으로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영상 기술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원리와 순서로 작동한다. 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게 있는데, 지리/위치 정보를 송수신하는 GPS 장치 및 중력(기울기) 센서, 이 정보에 따른 상세 정보가 저장된 위치정보시스템(인터넷 연결 필요), 그 상세 정보를 수신하여 현실 배경에 표시하는 증강현실 어플리케이션, 마지막으로 이를 디스플레이로 출력할 IT 기기(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이다.
우선 사용자가(증강현실 어플리케이션 실행 후) 스마트폰 등의 내장 카메라(캠)로 특정 거리나 건물을 비추면 GPS 수신기를 통해 현재 위치의 위도/경도 정보, 기울기/중력 정보 등이 스마트폰에 임시 기록된다.
그런 다음 이 GPS 정보를 인터넷을 통해 특정 위치정보 시스템에 전송한다. 해당 위치 반경의 지역이나 건물의 상세 정보를 모두 스마트폰에 저장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용자로부터 위치/기울기 등의 GPS 정보를 수신한 위치정보시스템은 해당 지역 또는 사물의 상세 정보를 자신의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한 후 그 결과를 다시 스마트폰으로 전송한다. 여기에는 물론 특정 건물의 상호, 전화번호 등이 들어 있다.
이 데이터를 수신한 스마트폰은 증강현실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현 지도 정보와 매칭시킨 후 실시간 화면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위의 데이터 송수신 단계는 지속적으로 유지, 수행되므로 스마트폰을 들고 거리를 지나면 해당 지역 및 주변에 대한 상세 정보가 순차적으로 화면에 나타나게 된다.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증가현실 기능을 활용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보고 있는 책의 자세한 정보가 궁금하다면 스마트폰 내 증강현실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한 다음, 카메라 화면으로 책 표지를 비추거나 셔터로 찍으면 된다. 그러면 해당 어플리케이션이 이 화면 정보를 읽어 들여 인터넷 데이터베이스 등에서 책 제목과 저자, 출판사, 서평 평점, 가격 등을 화면에 보여준다. 따라서 당연히 3G/4G 이동통신 또는 와이파이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상태여야 한다. 희귀서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책 정보를 볼 수 있다.
위와 같이 책 정보를 알았고 구매하기로 마음 먹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인근 서점을 찾아 직접 훑어 보고 구매하려 한다. 이때는 증강현실을 이용한 지도 검색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된다. 스마트폰 또는 태블릿 PC의 GPS 정보를 수신하여 현재 자신의 위치를 파악한 후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서점을 찾아 주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근 서점까지 가는 방법도 증강현실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세히 안내 받을 수 있다. 자동차 이동 경로나 대중교통 탑승·환승 정보는 물론, 도보 이동 시 가상 내비게이션 기능도 제공까지 제공된다. 즉 스마트폰 카메라를 길거리를 비추면 증강현실 어플리케이션이 가는 방향을 가상의 화살표 등으로 표시해 준다.
이제 인근 서점에서 책을 구매했으니 조용한 카페에 들러 천천히 읽고 싶다. 주변에 괜찮은 카페가 있는지도 증강현실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 카메라로 거리를 비추면 건물 및 상호 정보가 화면 위에 자동으로 표시된다. 역시 원하는 카페까지 걸어가는 경로를 화살표 등으로 표시하니 따라가면 된다.
위의 사례는 스마트폰 사용자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언제 어디서든 즉시 체험할 수 있는 증강현실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다. 이 같은 실생활뿐 아니라 증강현실 기술이 적용되는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특히 요즘에는 광고·홍보 분야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자사의 제품에 가상의 이미지를 씌워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TV 방송 분야에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기상 캐스터 뒤로 보이는 가상 기상도, 정보 그래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후 가상 디스플레이 기술, 3D 입체 영상 기술 등이 더욱 발전하면 증강현실이 적용될 수 있는 사례는 대단히 넓어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2011년 기준 우리나라 스마트폰 사용자가 드디어 2,000만 명을 넘어섰다. 이에 따라 증강현실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군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일 것으로 예측된다. 외국의 시장조사업체인 주니퍼 리서치(Juniper Research)는 ‘증강현실 시장이 2014년까지 7억 달러 이상의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이런 규모로 성장한다면 머지 않아 스마트폰의 한계를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증강현실 기술이 탄생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세계적인 학술 컨퍼런스인 ‘TED’에서 공개된 ‘식스센스(Six-sense)’라는 기기가 근미래 증강현실의 청사진을 정확하게 보여주었다는 평가로 화제가 됐다. 이 기기는 스마트폰 정도의 크기에 빔프로젝터 기능이 있어 공간에 영상을 투사하거나, 주변의 사진 또는 영상을 받아 들여 그에 해당하는 상세 정보를 보여준다. 이후 양손가락으로 이 화면을 제어할 수 있어 허공에서 마치 터치스크린을 조작하는 듯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고도의 증강현실 기술이다. 말마따나 영화에서 보던 기술이 점차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증강현실 기술로 인한 맹점도 배제할 수 없다. 일상 생활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하는 건 확실하지만, 가상 세계에 완전히 매혹되어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컴퓨터 온라인 게임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이외에 현재까지의 증강현실 기술은 다분히 광고형·홍보형 콘텐츠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에 향후에도 단발적인 관심끌기 위주로만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또한 증강현실 기술이 사용자에게 적용될 경우 개인 정보가 무분별하게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두에서 예로 든, ‘드래곤볼’의 스카우터처럼 상대방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개인 정보가 쉽게 노출된다면 그로 이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제나 그렇듯 신기술을 개발·개선함과 동시에 그에 따른 잠재적인 부작용 등도 다각도로 예측, 분석하여 사용자에게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글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