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3 희년
진리100선
생명강가 2012-01-10 , 조회 (39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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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무엇이 사람의 기업인지를 보기로 하자. 땅이 사람의 기업이라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예표일 뿐이다. 시편 16편 5절은,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라고 말한다.
결코 땅이 당신의 기업이 아니요, 바로 하나님이 당신의 기업이시다. 땅은 예표요, 하나의 상징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의 기업이 되시는가?
창세기 1장과 로마서 9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이 하나님의 그릇임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릇 자체는 빈 것이며, 그릇은 용기(容器)이므로, 응당 내용이 있어야 한다.
그릇의 내용이 바로 그릇의 기업이다. 만일 컵 안에 우유가 없다면, 그것은 빈 컵이요, 궁한 컵일 뿐이다.
만약 내가 지금 목마르고 배고파서 어떤 것을 조금 먹고 마시고 싶다면,
나는 내가 마셔서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는 우유 한 잔이나, 적어도 맹물 한 잔이 있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나 다만 빈 컵만 있다면, 나의 갈증은 해소될 수 없다. 빈 것은 궁한 것이요, 궁한 것은 빈 것이다.
만약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없다면, 빈 것이요, 궁한 것이다.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그릇이므로,
하나님이 없다면 빈 것이요, 공허한 것이다.


찬송가 701장 1절(한국복음서원 刊) 후렴에서는
“헛되고, 헛되네, 헛되고, 헛되네, 바람 그림자 잡는 것 같아.”라고 말한다.
마지막 절 후렴은 “주 없인 공허해. 모두 공허해. 주님 안에만 공허함 없네.”라고 말한다.


주님이 없으면 사람은 공허하다. 사람의 참된 기업은 토지나 집이 아니요,
처(妻)나 자식도 아니다. 사람의 기업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분의 그릇으로 지으신 것은 그분 자신을 담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약 당신이 이 그릇 안에 하나님을 내용으로 담지 않는다면, 당신은 공허하고 또 궁한 자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신 후 아담에게 다른 것을 알려주시지 않고 바로 아담을 생명나무 앞에 놓아
그로 생명나무를 받아들이게 하셨다. 무엇이 생명나무인가? 생명나무는 하나님이시다.
시편 36편 9절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라고 말한다.
또한 주님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바로 한 그루의 생명나무요, 생명강이시다.
그분을 믿는 자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갖게 되며 배부름을 얻는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기업이시다.


이러할 뿐 아니라, 시편 16편 5절에서는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업이실 뿐 아니라, 더욱이 우리 잔의 소득이시다.
기업은 막연한 표현 방법이지만, 잔의 소득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표현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업이실 뿐 아니라 더욱 우리 잔의 소득으로서 우리에게 누림을 주신다.


잔의 소득은 바로 누릴 수 있는 어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업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누림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소득을 지키신다.
하나님이 생명나무를 아담 앞에 놓으셨지만 아담이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그는 하나님에 대한 누림의 그 분깃을 잃어버렸다.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타락한 때부터, 결과적으로 온 세상 사람들로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했다.
따라서 에베소서 2장 12절은 오늘날 사람들이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누가복음 15장의 그 탕자는 바로 온 인류를 묘사한 것이다.
왕이든 총통이든 청소부이든 구걸하는 자이든 모두 탕자로서 아무 것도 없는
무일푼으로 돼지와 함께 생활했다.
사람이 타락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타락한 것이요, 기업으로부터 타락한 것이다.
사람은 그의 기업과 누림이 되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렸다. 이것이 첫 단계이다.


사람이 타락한 후 둘째 단계는 죄에게 몸을 판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7장 14절에서 “나는… 죄아래 팔렸도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타락한 죄인으로서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없다. 이러할 뿐 아니라,
우리는 죄에게 몸을 팔아 죄의 노예가 되었다(6:9). 죄가 우리를 지배한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죄의 지배 아래 있다.
어떤 사람은 이성이 조금 높아서 사회와 친족과 친구를 위해 이성의 통제를 받아
밖의 몸으로는 그래도 함부로 행하지 못한다. 그러나 생각 안에서는 그들도 역시 제멋대로이다.
누가 마음으로 죄에게 팔리지 않았는가? 우리는 모두 자신을 죄에게 판 자들이다.


하나님은 바울을 불러 그에게,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 26:18)고 말씀하셨다.
그 기업은 바로 우리의 산업이 되시고, 또한 우리의 풍부한 소출의 지업(地業)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생육할 땅이 필요하고, 또한 몸이 안식할 집도 필요하다.
시편 16편은,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90편 1절은, “주여, 주는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라고 한다.
찬송가 441장(한국복음서원 刊)은 이 두 시편을 근거로 하여 쓴 것으로서,
대략적으로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분깃이시고, 우리의 모든 것이시며,
우리의 안식할 처소이심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업이시고, 우리의 거처이시다. 과연 주 예수님은 오셔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5장에서도 주님은, “너희는 … 내 안에 거하라”(4절)고 말씀하신다.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기업도 버렸으며, 또한 참된 거처도 없다.
타락한 인류는 참된 거처가 없이 모두 표류하고 유랑하며, 돌아갈 집이 없다.
겉으로 볼 때 그들은 큰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그들 안에는 안식이 없고 거처가 없다.
사람이 표류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참된 거처이시고, 하나님이 사람의 참된 기업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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