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의 등급을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탑재된 CPU(중앙처리장치)의 성능으로 이를 나누곤 한다. 그만큼 CPU는 PC의 핵심부품이며, 전체 PC의 가격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가장 큰 경우가 많다. 때문에 고성능 CPU를 탑재한 PC일수록 본체 가격 또한 크게 올라가기 마련이다. 다만, PC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면서 시장에서는 성능이 다소 낮더라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보급형 PC의 수요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CPU 업계에서는 보급형 PC를 위한 저렴한 CPU의 라인업 확대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한때는 고급형으로 팔리던 구형 CPU의 가격을 낮춰 보급형 PC에 탑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는 제품의 브랜드 이미지 관리 면에서 좋지 않고, 구형과 신형 제품의 생산 공정 라인을 동시에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따라서 CPU 제조사들은 고급형과 보급형 제품을 같은 공정으로 생산하면서, 고급형 제품에서 몇 가지 기능을 생략, 혹은 축소해 생산성을 높이고 가격도 낮춘 별도 브랜드의 보급형 제품을 출시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인텔(Intel)사의 ‘셀러론(Celeron)’ CPU가 대표적인 경우다.
1981년에 IBM에서 PC를 최초로 출시한 이후, CPU 시장은 줄곧 인텔에서 이끌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인텔의 독주 체제는 1990년대 들어 PC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약간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펜티엄(Pentium)’으로 대표되는 인텔의 CPU는 높은 성능을 인정받긴 했지만, 가격이 비싸다는 지적 역시 함께 받곤 했다. 그리고 보급형 PC 시장의 급격한 확대와 더불어 이전까지 존재감이 미미하던 AMD, 사이릭스(Cyrix)와 같은 후발주자들의 제품이 조금씩 판매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펜티엄 II의 보급형 제품으로 출시된 최초의 셀러론
이러한 이유로 인텔은 보급형 CPU의 개발에 착수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1998년에 처음 나온 ‘셀러론(코드명 코빙턴)’이다. 셀러론은 같은 시기에 팔리던 인텔의 고급형 CPU인 ‘펜티엄 II’와 같은 클럭(clock: 동작속도)을 가지면서도 가격은 절반 이하였다. 당시에는 클럭 수치가 곧 CPU의 성능을 대변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펜티엄 II와 동급 클럭의 인텔 CPU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꼈고 PC 제조사들 역시 이를 마케팅 요소로 삼아 다수의 셀러론 탑재 PC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셀러론이 같은 클럭의 펜티엄 II와 동급의 성능을 내는 것은 아니었다. 셀러론은 펜티엄 II와 같은 공정으로 생산되긴 하지만, CPU의 성능에 큰 영향을 끼치는 2차 캐시(cache) 메모리가 생략되어 있었다. 캐시 메모리의 용량이 크면 클수록 한 번에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데, 2차 캐시가 완전히 생략된 셀러론은 펜티엄 II(512KB의 2차 캐시 탑재)에 비해 눈에 띄게 처리 능력이 저하되었다.
셀러론(코빙턴)의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에 실망한 소비자들이 늘어나자 인텔은 4개월 후에 128KB의 2차 캐시를 추가한 신형 셀러론(코드명 멘도시노)을 출시했다. 신형 셀러론은 이전에 팔리던 같은 클럭의 구형 셀러론과 구분하기 위해 클럭 수치 뒤에 ‘A’를 붙이기도 했는데(예: 셀러론 300A) 이 때문에 128KB의 2차 캐시가 추가된 셀러론은 ‘셀러론A’라 불리기도 했다. 128KB의 2차 캐시가 추가된 셀러론은 초기 셀러론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으면서 일부 전문적인 작업을 제외한 일반적인 작업(인터넷 서핑, 사무 작업 등)에서는 펜티엄 II 못지 않은 성능을 냈고, 이로 인해 큰 인기를 얻으며 판매량 역시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2차 캐시의 용량 차이 외에도 셀러론이 상위 제품과 차이가 나는 또 한가지 요소는 FSB(Front Side Bus) 수치다. FSB는 간단히 말하자면 PC 내부에서 주요 장치간에 데이터를 전달하는 통로를 일컫는 것으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전반적인 처리 속도가 향상된다. 초기에는 셀러론과 펜티엄 II 모두 66MHz의 FSB로 작동했다. 하지만 1998년 중반 이후부터 펜티엄 II의 FSB는 100MHz로 향상되었으나 셀러론은 여전히 66MHz로 작동하는 제품만 출시되어 등급의 차별을 두었다.
펜티엄 III 시대의 셀러론, 본격적으로 시장에 안착하다
1999년에 인텔은 펜티엄 II의 후속 모델인 ‘펜티엄 III’를 출시했다. 펜티엄 III는 전력 구조를 개선해 보다 적은 전력을 소모하게 되었고 SSE(Streaming SIMD Extension) 명령어가 추가되어 멀티미디어 성능이 향상되었다. 그리고 이 때를 즈음해 출시된 셀러론(코드명 코퍼마인) 역시 펜티엄 III 기반으로 변경되며 유사한 기능을 가지게 되었으나 2차 캐시 용량(128KB) 및 FSB 수치(66MHz)가 펜티엄 III보다 낮은 점은 이전의 셀러론과 동일했다. 1999년 후반부터 펜티엄 III의 FSB는 133MHz로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셀러론의 FSB는 66MHz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1년을 즈음해 셀러론의 FSB 역시 100MHz로 한 단계 높아졌고, 2002년에는 2차 캐시의 용량이 256KB로 향상된 신형 셀러론(코드명 투알라틴)도 출시되었다. 1GHz(1000MHz) 이상의 클럭으로 작동하는 셀러론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 인데, 1GHz 이상의 클럭과 100MHz의 FSB, 그리고 256KB의 2차 캐시를 가진 셀러론은 가격대비 성능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 받으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높은 클럭을 추구한 펜티엄 4, 펜티엄 D 시대의 셀러론
2000년부터 인텔은 아키텍처(architecture: 제조 및 내부 처리 구조)를 완전히 일신한 펜티엄 4를 출시했다. 펜티엄 4는 CPU의 클럭을 손쉽게 높일 수 있는 ‘넷버스트(Netburst) 아키텍처’를 도입했으며 이는 셀러론 역시 그대로 이어받았다. 최초의 넷버스트 기반 셀러론(코드명 윌라멧, 2003년부터는 노스우드)은 2002년 초부터 출시를 시작했으며, 초기 모델의 클럭은 1.5GHz였다. 2차 캐시의 용량은 128KB(펜티엄 4는 256KB ~ 1MB)로 적은 편이었지만 FSB는 넷버스트 아키텍처의 특성을 살려 400MHz(펜티엄 4는 400 ~ 800MHz)로 크게 향상되었다.
그리고 2005년, 인텔은 펜티엄 4와 같은 넷버스트 아키텍처를 사용하면서 코어(core: 핵심 처리 회로)의 수를 2개로 늘린 듀얼코어(Dual Core) CPU인 ‘펜티엄 D’를 출시했다. 그리고 이 때를 즈음해 셀러론 역시 셀러론 D(코드명 프레스캇)로 변경되었다. 셀러론 D는 펜티엄 D보다 반년 정도 앞선 2004년 중반에 처음 출시되었는데, 브랜드명과는 달리 듀얼코어 CPU는 아니었다. 하지만 2차 캐시가 256KB로 커지고 FSB가 533MHz로 올라가는 등 성능 자체는 향상되었다. 그리고 2006년부터는 2차 캐시를 512KB까지 키운 후기형 셀러론 D(코드명 시더밀)도 출시된다.
코어2 시대의 개막과 함께 맞이하게 된 셀러론의 쇠퇴기
넷버스트 아키텍처의 인텔 CPU는 높은 클럭을 얻은 대신 전력소모율이 높고 발열도 심해서 소비자들의 적지 않은 지적을 받았다. 그래서 인텔은 이러한 기존의 넷버스트 아키텍처에 비해 낮은 클럭에서도 높은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코어(Core) 아키텍처’ 기반의 듀얼코어 CPU인 ‘코어2 듀오’를 2006년에, 2008년에는 코어2 듀오보다 2배 많은 4개의 코어를 내장한 ‘코어2 쿼드’ CPU를 출시한다.
이후 코어2 시리즈는 실질적으로는 펜티엄 시리즈를 대신해 인텔의 고급형 CPU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기존 펜티엄의 높은 인지도를 무시할 수 없었는지 인텔은 코어2 듀오의 일부 기능을 축소시킨 보급형 듀얼코어 CPU를 ‘펜티엄’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셀러론 역시 브랜드를 폐지하지 않고 비슷한 시기에 코어 아키텍처를 도입한 단일코어의 셀러론(코드명 콘로-L, 512KB 2차 캐시, 800MHz FSB)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다만, 상위제품인 펜티엄이 보급형으로 내려간 만큼, 이보다 하위 등급 제품인 셀러론의 위상은 더 내려갔고, 싼 가격만을 강조하는 초저가 PC 전용의 CPU로 자리잡게 되어 상대적으로 입지가 크게 줄어든다. 2008년에 듀얼코어 셀러론(코드명 앨런데일)이 처음으로 등장했고, 2009년에는 1MB의 2차 캐시까지 탑재한 신모델(코드명 울프데일)이 출시되었지만, 여전히 업계에서 주목 받지는 못했다.
끈질긴 생명력을 증명한 코어 i 시리즈 이후의 셀러론
이후, 인텔은 네할렘(Nehalem) 아키텍처를 도입한 ‘코어 i 시리즈’를 2008년부터 내놓기 시작했다. 코어 시리즈는 코어 i3(보급형), 코어 i5(중급형), 코어 i7(고급형) 등으로 라인업이 보다 촘촘해지면서 인텔 CPU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네할렘 기반으로 재탄생한 펜티엄이 여전히 코어 i3의 하위 제품으로 존속하면서 셀러론은 존재 의미 자체가 크게 퇴색했다. 2010년에 네할렘 기반의 셀러론(코드명 클락데일)이 출시되긴 했지만, 업체들과 소비자들이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아 곧장 잊혀졌다.
이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 했던 셀러론이 다시 부활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1년, 샌디브릿지(Sandy Bridge) 아키텍처 기반의 2세대 코어 i 시리즈가 출시된 이후다. 이전 코어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2세대 코어 i3의 하위 모델로 샌디브릿지 기반의 펜티엄과 셀러론이 출시되었는데, 이전에 비해 상당히 다양한 모델이 등장했고, 그 중에서도 셀러론(코드명 샌디브릿지)은 성능 면에서도 이전 모델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샌디브릿지 아키텍처의 인텔 CPU는 일상적인 컴퓨터 사용(사무, 인터넷, 간단한 게임 등)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성능의 GPU(그래픽카드의 핵심 칩)를 내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으로, 별도의 그래픽카드를 구매하지 않고 그만큼 PC 구매 비용을 아끼고자 하는 소비자들에게 유용하다. 이는 전반적인 PC시장의 축소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인텔의 보급형 모델 강화 전략에 의한 것으로, 샌디브릿지 기반의 셀러론은 특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면서 PC 구매 비용은 최소화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하게 판매되었다.
애증의 그 이름, 셀러론
인텔의 셀러론은 PC의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시기에 맞춰 태어났으며, 높은 가격대비 성능을 앞세워 PC의 대량 보급에 큰 역할을 한 CPU다. 다만, 일부 PC 제조사들은 셀러론의 성능적인 한계를 제대로 알리지 않으면서 단순히 싼 가격만을 강조해 셀러론 탑재 PC를 대량으로 파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사전 정보 없이 셀러론 PC를 구매한 소비자들이 성능에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고, 이 때문에 셀러론이 단순한 ‘싸구려 CPU’로 인식되기도 하는 등,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또한, 코어2 시리즈가 출시되고 펜티엄 시리즈가 보급형으로 내려 앉으면서 이보다 하위 브랜드인 셀러론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고, 한때는 퇴출이 전망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현재까지도 셀러론은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PC를 장만하고자 하는 알뜰파 사용자들에게 있어 셀러론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친숙한 존재로 남아있을 듯 하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