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건을 사든, 구매 전 가장 중요하게 검토하는 대표적인 요소라면 성능이나 기능, 디자인, 그리고 내구성을 들 수 있다. 편리하고, 예쁘고, 튼튼한 제품을 사야 후회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유독 IT기기를 고를 때는 내구성 쪽이 덜 고려되는 것 같다. IT기기들은 워낙 섬세하고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보니, 밟거나 떨어뜨리면 고장 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 마련이고, ‘당연’히 사용자가 제품 취급에 만전을 기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특히 노트북 같은 제품의 경우, 워낙 많은 부품들이 오밀조밀 조합되었고, 가격도 너무 비싸서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신주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쓰는 경우가 많다. 물론 몇몇 노트북 업체에서 내구성을 강조하는 모델을 출시하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이들 제품이 실제로 얼마나 튼튼한지 확인해 볼 길은 사실상 없다. 저렴한 모델이라도 100만 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물건을 가지고 직접 내구성을 시험해 볼 ‘강심장’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IT동아는 조금 과감한 실험을 준비했다. 실제로 현재 팔리는 노트북에 대해 극단적인 내구력 테스트를 한다는 것. 테스트는 노트북을 단단한 바닥에 놓아둔 후에 무거운 자동차로 이를 밟고 지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내구성을 강조하는 제품이라면 1~2톤에 달하는 자동차의 무게도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이 외에도 노트북을 공중에 떨어뜨린다거나 하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이런 방법은 떨어지는 속도나 바닥에 닿을 때의 각도 등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없어서 포기했다. 같은 내구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A노트북은 정면으로 떨어져서 고장 나고, B노트북은 모서리 쪽으로 떨어져서 고장이 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테스트 계획을 세운 후에 더 큰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건 테스트에 사용할 노트북의 조달 문제였다. 노트북을 유통하는 몇몇 업체에 문의해 보았지만, 대부분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사실 내구성이라고 하는 것이 노트북의 기본적인 품질 이외에도 ‘운’도 크게 작용하며, 단순한 테스트도 아니고 자동차로 밟는 극단적인 방법이라면 이를 견딜만한 제품이 많지 않으리라는 걱정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업체에서 이 테스트를 수락했다. 바로 ‘에이서(Acer)’였다. 에이서는 사실 만만찮은 규모의 글로벌 노트북 제조사이지만, 진출이 늦은 탓에 한국 시장에서는 그다지 인지도가 높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도전적인 테스트에도 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구성 테스트에 도전하기 위해 에이서에서 온 노트북은 2012년 2월 현재 88만 원(인터넷 최저가 기준)에 팔리고 있는 ‘TM8481G’ 모델이다. 에이서 TM(Travelmate) 시리즈는 이동이 잦은 비즈니스맨을 타겟으로 한 제품으로, 가벼운 무게와 높은 안정성, 그리고 튼튼한 내구성을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이번 테스트에 사용한 TM8481G는 14인치 화면에 2세대 코어 i5-2467M CPU, 지포스 GT520M 그래픽카드 등, 제법 높은 사양을 갖추고 있음에도 탄소섬유 및 알루미늄, 마그네슘 합금 등 가벼우면서 강도가 높은 재질을 사용해 무게를 1.6kg까지 낮췄다.
이번 내구력 테스트는 서울에 위치한 대형 빌딩 지하 주차장에서 진행되었다. 바닥은 당연히 단단한 콘크리트 재질이며, 노트북을 밟고 지나갈 차량은 기아자동차의 ‘K5 하이브리드’다. 이 차량의 중량은 1.6톤 남짓이며 여기에 70kg 정도 체중의 성인 남성이 탑승했다.
차량 전방 5미터 즈음에 노트북을 놓은 후에 출발 신호가 떨어지자, 차량이 시속 1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주행하면서 바닥에 놓인 에이서 TM8481G를 총 두 차례(앞바퀴 한번, 뒷바퀴 한번) 노트북을 밟고 지나갔다.
차량이 노트북을 밟는 순간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고(동영상 참고: it.donga.com/plan/8199/), 이 테스트를 지켜보던 에이서 노트북의 유통사 관계자가 움찔하며 불안해했지만, 이는 노트북이 부서지는 소리는 아니었다. 이후 동영상 분석 결과 이는 노트북 표면과 타이어가 접촉하는 순간의 마찰에 의해 노트북이 살짝 들린 후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로 판명되었다(동영상 촬영: 미디어뮤즈).
테스트가 끝난 직후 노트북의 외관을 확인하니 놀랍게도 약간의 타이어 자국 외의 흠집이나 깨진 부분은 발견되지 않았고, 전원도 정상적으로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다. 운영체제 부팅 후 인터넷 서핑이나 문서 작업, 동영상 재생 등의 작업도 정상적으로 가능한 것을 확인했다. 사실 이 정도로 온전하게 충격을 견딜 수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는데, 비즈니스용 노트북인 에이서 TM8481G의 본체에 쓰인 탄소섬유 및 알루미늄, 마그네슘 합금 재질의 덕을 톡톡히 본 곳으로 분석된다.
이날 테스트한 에이서의 TM8481G는 2011년 여름에 국내 출시된 제품으로, 당시 IT동아에서도 이 제품의 리뷰를 진행해 가벼운 무게에 비해 우수한 성능,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을 높게 평가한 바 있다. 다만, 내구력 테스트만큼은 차마 할 수가 없어서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 테스트로 인해 그 점이 증명되었다.
어떤 제품이든, 높은 내구성은 칭찬할만한 덕목이다. 이는 IT제품 역시 마찬가지지만 관련 기업들이 너무나 최신의, 첨단의 기능만을 강조하다 보니 내구성 쪽은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아무리 첨단 기능을 가진 IT제품이라도 한 번의 떨어뜨림, 혹은 밟힘으로 인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면 참으로 허무한 일일 것이다. 기업들도 이 점을 이해하고 앞으로도 IT동아의 위와 같은 과감한 제안에 긍정적으로 응해주는 제조사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