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성도 안으로 - 1 (2012.4.1)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2-03-31 , 조회 (32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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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진리를 성도 안으로 - 1


   계시록 3장 17절에서 “나는 너희가 가난한 것을 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한 것이다.

바울은 축적된 은혜를 가지고 있었음

   말씀의 사역의 근원은 영감에 있다. 우리가 사역을 할 수 있으려면 우리에게는 영감이 필요하다. 모든 말은 영감을 의뢰하는데, 이것은 옳으며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당신이 기억해야 할 것은 영감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계속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초대 사도들에게조차도 계시가 항상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바울에게조차도 계시가 항상 있던 것은 아니었다. 바울은 어떤 때에는 “내가 주님께 받은 명령은 없으나”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말도 없고, 주님도 그에게 어떤 것을 말하지도 않으셨다고 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가 말한 것이다. 바꿔 말한다면, 계시가 없고 어떤 영감도 없고 근본적으로 주님의 신선한 말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놀라운 일은 바울이 “주님께 긍휼을 받은 신실한 사람으로서 나의 의견을 말합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천 년이 지나는 동안 신학자들이 고린도서를 여기까지 읽고서는 아주 두려워한다. 바울은 매우 분명하게, 즉각적인 영감이 없으면서도 말할 수 있었다. 영감이 없으면서도 여전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내면에 축적된 것이 없고, 남아 있는 것이 없고, 여분이 없기 때문에 영감이 없으면 할 말도 없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많은 은혜를 주시면 그는 단지 그날에 쓰기에만 족하다. 이러한 사람은 영감이 없게 되면 할 말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임시적인 은혜를 의뢰하여 대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임시적인 은혜가 없으면 말이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한 가지 기본적인 원칙이 있는데, 바울에게는 임시적인 영감 외에 여전히 다른 어떤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임시적인 영감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주님을 따랐고, 여러 해 동안 제한을 받았으며 여러 해 동안 방종하지 않았고, 여러 해 동안 범죄하지 않았고, 여러 해 동안 실패하지 않았고, 여러 해 동안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서 그 내면에 어떤 것이 있게 되었기 때문에 비록 계시가 없을지라도 오히려 여전히 말씀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축적됨, 또는 그의 부요함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린도서처럼 그렇게 바울 자신을 많이 드러낸 곳은 한 곳도 없다. 그는 자신이 말한 것이며 영감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말한 것은 도리어 교회의 계시가 되었다. 여기에 한 사람이 있어 사람의 말을 하였지만, 오히려 그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서 성경 속에 놓여 있다. 이것은 신약 가운데 최고봉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하나님께 지음 받은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함양되고, 조각되고, 순수케 되고, 그분에 의해 조성됨으로 결국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말이 되는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이 부요함이며, 이것이 내면에 축적됨이 있는 것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여러 해 동안 바울에게서 일하신 결과이다. 이것은 결코 임시적인 은혜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축적된 은혜를 가져 부요해져야만 한다.
   많은 때에 임시적인 은혜만을 의지하는 형제자매들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내게 큰 고통이다. 은혜가 없으면 그의 말이나 그의 근성은 이방인과 같다. 이것은 얼마나 가련한 것이지! 이러한 사람은 은혜가 오지 않으면 그 내면은 즉시 공허해진다. 나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날 때 우리에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시인한다. 그러나 나는 또한 하나님의 은혜의 어떤 일부분이 사람 안에 조성된다는 것도 인정한다. 사람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축적됨은 또한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만 임시적인 수입을 의지하여 그의 임시적인 지출에 대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없다. 시련은 무엇인가? 표면상으로 보면 마치 하나님께서 돌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듣지 않고, 하나님께서 교통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 상황이다. 누가 시련을 가장 많이 이해하였는가? 귀용 여사이다. 영적인 시련은 무엇인가? 마치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고 돌보지 않으시는 것 같으며, 그분께서 입을 닫으시고 말씀하시지 않는 것 같으며, 그분께서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고, 하나님께서 소리를 내지 않으시는 것 같고, 그분께서 침묵하시는 것 같으며, 마치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과 같다. 이러한 때에 즉시 누가 축적됨이 있는 사람이며, 누가 축적됨이 없는 사람인지 분별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은 그럴 때 기도의 기쁨에 의지하여 생활하고, 한 번 떡을 떼는 것의 신선함으로 유지해 나간다. 이것이 없으면, 그 한주일은 실패하고 나아가지 못하며 쓰러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모든 생명과 생활에 임시적인 은혜를 의지한다. 이것은 그에게 축적됨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귀용 여사는 계속해서 몇 개월 동안 시련을 받았었다. 온 세상은 마치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은 것처럼 혼란스러워졌다. 이럴 때 내면에 축적됨이 있는 사람은 그 안에 충분한 축적됨이 있어서 그것을 견디어 낼 수 있음을 나타내게 되는데 이것을 부요함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한 부요함이다. 그러므로 가난하다는 것은 축적됨이 없는 것이며 부요하다는 것은 축적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영적인 실재이다.

시간이 필요함

   어떻게 해야 우리의 내면이 부요해질 수 있으며, 어떻게 해야 축적됨을 가질 수 있는가? 나는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가 직선적으로 말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젊은 형제여, 만일 당신이 젊다면, 어찌하든 당신은 부요함에 이를 수 없다. 아마도 당신은 생각하여 나는 이미 풍성해졌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요함은 첫째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을 가진 사람이라야 하나님 앞에서 부요하게 될 가능성을 가진다. 시간이 없는 사람은 결코 부요하게 될 수 없다. 젊은 형제는 어찌하든 언제나 불가능하다. 당신은 시간이 큰 문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에 푸저우(福州)에서의 일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는데, 종전에 우리는 영적인 일에서는 어떤 젊은 사람들이 연장자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최근 푸저우에서 더 깊은 문제들을 만질 때 우리는 대부분의 좋은 젊은 형제들은 가장 실제적인 일들을 만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젊은 사람인 당신은 축적된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당신이 축적한 것은 아마도 아주 조금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만해서는 안 된다. 교만은 가장 우매한 일이다. 당신은 반드시 자신 앞에 아직도 큰 길이 놓여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하며, 날마다 성령에 의해 조성되고 견고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시간은 첫째 되는 문제이며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반드시 체험이 있어야 함

   둘째로는 반드시 다양한 체험을 통과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보내온 시간은 많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통과한 체험은 매우 적다. 부요해지려는 사람은 시간이 있어야 하며, 또한 반드시 체험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체험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성령의 징계이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된 지 팔구 년이 되었는데도 마치 성령께서 그를 아주 느슨하게 다루시는 것 같다. 다루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치 매사에 관심이 없으신 듯하다. 마치 성령은 그를 다루시는 일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의 징계가 매우 엄격하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가 어떻게 해도 성령은 말씀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성령은 그의 환경에서도 말씀하시지 않고, 양심 안에서도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환경은 그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지 않았고, 양심 또한 그에게 많은 어려움을 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의 시간은 비록 많이 지나갔지만 만일 제약받고, 새겨지고, 저지되고, 책망 받는 것이 충분치 않다면, 이것은 이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의 풍부함 또한 부족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만나게 되는 일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나는 일은 모두 우리의 부요함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난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축적되는 것이 적으며, 다른 사람에게 하는 당신의 말 또한 적어진다. 체험하지 않고서 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당신이 체험한 것만큼 당신은 말할 수 있다. 당신이 부딪힌 것만큼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공급할 수 있다. 우리의 공급은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배움을 근거로 한다.
   이것은 결코 교리나 성경의 주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성령께서 우리의 매일의 행함에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을 통해서만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와 같이 하나님을 따르기를 배우는 사람들은 일상의 체험을 느슨하게 풀어놓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일들, 실망하는 일들, 뜻대로 되지 않는 일 가운데 주님께서 우리를 엄격히 처리하실 때에 우리는 고개 숙여 하나님을 경배하며 이렇게 말해야 한다. “당신은 오늘 이 모든 일을 통해 나를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나를 부요함 가운데로 이끄시려하시니 당신께 감사합니다.”
   어떤 한 형제는 자신의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병이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가난함을 만나보지 않고서는 우리는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병을 만나보지 않고는 믿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어려움을 만나보지 않고는 경배가 무엇인지 모른다. 체험이 없으면 배움이 없으므로 가난하게 된다. 어려움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순조로운 환경을 구하는 모든 사람도 가난한 사람이다. 우리가 진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들을 통과할 수 있기를 구해야 한다. 우리의 소망과 믿음과 복종은 이러한 서로 다른 환경으로부터 조성되어 나오는 것이며, 이는 우리를 함양하고 이런 상황들을 통과하도록 이끌 것이다. 밖에 한 가지 일이 생기면 내면에서 영적인 풍성의 한 가지 항목이 더 늘어나는 것이다. 일을 만날 때마다 육체가 얼마나 고난 받고, 당신이 이런 일을 얼마나 좋아하지 않는가에 관계없이 당신은 그러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로 배우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언제나 고개 숙여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것은 또 하나의 기회이며, 일생에 보기 드문 기회이며, 다시는 얻기 어려운 기회입니다. 주여, 나는 이것으로 인해 당신께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이 당신 곁에 앉아 있는데, 역시 그들도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마치 보호를 받고 있는 것과 같이 시련이 없다. 당신은 이러한 형제자매의 생활이 매우 평안하고 안온한 것을 본다. 그러나 당신은 즉시 이 형제가 믿음이나 소망이나 의뢰함이 얼마나 적으며 빈궁한가를 느끼게 된다.
   나는 여러분이 나의 아주 솔직한 말을 듣기 바란다. 여러분은 시련을 만났을 때에 마땅히 고개를 들고 그분께 찬미하며 “주여, 당신은 다시금 내 안에 풍성을 저장할 기회를 만드심을 감사합니다. 그것은 나에게 모두 유익한 것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조성하셔서 나로 교회에 공급할 수 있게 하십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형제여, 여러분은 결코 책자에 의지해서 설교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설교할 수는 있지만, 당신에게는 풍부한 영이 없다. 당신은 말을 바꾸어서 말의 의미를 풍부하게 할 수는 있지만 당신의 영으로 풍부하게 할 수는 없다. 의미의 충만과 영의 충만은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많고 부딪히는 것이 많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학대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그분께서 이러한 큰 기회를 제공하시는 것은 우리를 우대하시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것을 발견해야한다. 우리에게 만일 빛이 있다면, 결국 한 가지 일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많은 체험을 하였는가, 축적이 있는가 없는가이다. 당신이 얼마나 교만한지에 관계없이 당신의 교만은 쓸모가 없다. 내면에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속이려고 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은 더욱더 당신을 알게 된다. 당신이 교만하면 교만할수록, 가리면 가릴수록 당신 자신은 더욱더 드러나게 된다. 당신이 열자마자 나온다. 당신은 만져보면 에서이지만 목소리는 오히려 야곱이다. 남을 속일 수 있다고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영적인 풍성함은 우리가 통과한 체험의 풍성함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함

   셋째는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체험이 얼마나 되는가만으로는 부족하다. 시간이 충분했고 체험도 충분했지만 결과가 있는가 없는가 이것도 여전히 또 하나의 문제이다. 반드시 결과가 있어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화학 실험을 할 때 ‘결과를 얻을 때까지 실험하라’란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결과에 이르도록 해야 하며, 철저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때 일들이 있지만 철저하지는 않다. 철저하지 않은 것은 쓸모가 없다. 모든 것은 철저하게 해야 한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한 가지는 바로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다루는 데 있어서 결코 느슨하지 않으시며 그를 철저하게 다루신다는 것이다. 생축이 사로잡혀도 부족하고, 양떼와 노예가 불살라져도 부족하고, 집이 무너져도 부족하고, 자녀가 죽어도 부족하고, 몸에 악창이 나도 부족하고, 결국에는 입술과 혀가 낮아져서 입을 진토에 대는 날까지 이르러야 한다(욥 1:6~2:10, 42:1~6). 야고보서에서는 ‘결말’이라는 두 글자가 있는데(5:11), 이것은 ‘주님께서 주신 결말(his end from the lord)’이며 주님의 결말이다.
   이 말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문제는 시련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시련을 통과한 결과가 있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욥의 아들은 죽었다. 당신은 죽도록 허락할 만한 자녀가 도대체 몇이나 되는가? 잃어도 좋을 만큼 많은 자녀를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이것은 매우 엄중한 일이다. 욥의 다룸은 상당히 중했지만, 그는 여전히 빈궁했다. 당신은 하나님께 당신에게 무한정 시련을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어떤 자매는 남편이 죽고 없는 과부였다. 그러나 그녀는 영적인 일에 대해 상당히 느슨하였다. 어느 날 그녀가 간증을 끝냈을 때, 내속에서는 솔직한 말로 그녀에게 말하고 싶은 부담이 있었다. “당신의 태도가 틀렸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남편을 데려가셨는데, 이것은 매우 엄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배움이 없습니다!” 잃어도 좋을 만큼 많은 남편을 가진 사람은 없다. 이미 소와 양이 약탈당하고, 집이 무너지고, 자녀가 죽었는데도 여전히 아무런 결과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결과가 없다는 말의 의미이다. 한 사람이 체험하는 것은 많아야 하지만, 실제로 체험하는 일은 상당히 유한하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체험이 있을 때에 배우지 않는다면, 주님의 결말에 도달할 수 없고 주님의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주님도 별로 얻지 못했고 당신 또한 별로 축적됨이 없다면, 당신은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이며, 헛되이 다룸 받고, 헛되이 시련 받고, 헛되이 징계 받은 것임을 기억하라. 이것이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다룸을 겪었지만, 산출되어 나온 것은 여전히 산산 조각난,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는 그릇이다. 예레미야서 18장 4절에서 말하는 도자기 공장처럼 땅에 가득한 것은 그릇이 되지 못한 조각들뿐이다. 늘 불속에 있으며 또한 늘 깨져서 땅에 널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체험하는 일이 많기를 바라야 하며, 또한 체험을 거쳐 나왔을 때에 영광의 그릇이 될 수 있기를 바라야 한다. 그러므로 욥은 단지 어떤 일을 체험한 것만이 아니다. 어느 날, 하나님은 그에게 결말의 때가 왔다는 것을 보셨다. 이것은 욥 안에 새로운 조성이 있으며 그에게 변화가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것은 생명이 들어오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과 사람의 생명이 짜이는 문제이다.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옛사람은 결코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오해하곤 한다. 하나님은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는데 이것은 사실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을 우리 안에 넣으셨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이 생명을 가져가시면 옛사람은 여전히 옛사람이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사람이 변화될 수 있으며, 생각이 더욱 새롭게 되고 변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신이 기억해야 할 것은, 새 생명이 우리 안에 있어 우리로 다른 사람과 같지 않게 할 뿐 아니라, 우리 안에서 생명이 운행함으로써 변화가 있게 되고 다른 사람과의 분별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어떤 사람과 함께 오랫동안 살면 그의 모습을 좀 닮게 된다.
   사람이 하나님과 오랫동안 함께 사는데, 조금도 변화가 없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하물며 성령께서 당신 안에 거하시는데, 당신은 다소 그분의 모양을 닮기를 배우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새롭게 됨이며 변화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움이 있고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시간을 들여 한 가지 한 가지 배운다면 어떤 결과가 있게 될 것이다. 주님은 그분의 영을 우리 안에 넣으셔서 우리로 배움이 있게 하고, 결과가 있게 하신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주님도 우리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공급하실 수 있다. 이것은 말씀을 읽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바울의 말을 들어서 된 것도 아니며, 오직 주님에게서 배운 것이다(엡 4:20). 단지 성경이 이와 같이 말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도 또한 그렇게 배웠다. 나는 나 자신이 배운 적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말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빛을 받아야 함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일은 빛 비춤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에 있어서 어떤 사람이 풍부하다면, 그의 빛 또한 풍부하다. 당신에게 배움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영 안에서 주님께서 당신을 비추어 우리가 무엇을 배웠는지 우리로 깨닫게 하셔야 한다. 이 일은 당신에게 진리로 조성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당신은 당신이 배운 것을 말로 표현하여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다. 당신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또한 당신은 배운 것을 다른 사람 앞으로 가져갈 수 있다. 빛이 있을 때 우리는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공급할 수 있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은 당신을 다루시지만 당신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때로는 당신이 알기도 한다. 이렇게 아는 것은 그 다룸의 결과를 강화시킨다. 빛으로 인하여 당신은 믿을 수 있고 또한 순복할 수 있으므로 당신은 능히 그 다루심의 결과를 강화할 수 있다. 열매가 있어 성숙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사람의 결과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빛 비춤은 바로 계시록 3장 18절에서 말한 안약으로서 당신을 볼 수 있게 하고 밝아지게 한다. (일곱 광주리 가득히 11, 45-58쪽)



인수, 기도, 성도들 소식


구 역

주 일

기 도

소그룹

어린이

중고

대학

청년

1구역

172

42

112

12

8

44

2구역

114

40

66

23

13

23

4

3구역

113

39

86

18

8

31

7

5구역

106

35

58

17

8

10

6구역

190

49

106

30

31

16

15

695

205

428

100

68

124

26

* 주일 인수는 대학청년, 중고등부를 포함한 인수임


■ 기도의 부담
1. 2012년 부산 교회 봉사 방향(교회 소식 머릿글 참조)
2. 복음센터(5구역 집회소) 매입을 위하여
3. 경남의 미개척 교회들(산청, 합천)을 위하여
4. 부산 교회 성경 세미나를 위하여

■ 성도들 소식
1. #2 - 침례
최성락 형제님께서 3/29(목) 침례 받으셨습니다.
2. #5 - 이사
박미경 자매님(강종덕 형제님)께서 양산으로 이사하셨습니다.

■ 고3 수험생집회 안내
▷ 일시 및 장소 : 4/8(주일) 오후 1:30 ~ 3:30 / 남구 학생센터


 

 알리는 말씀, 금주의 추구


■ 여름 훈련 집회 안내
▷ 일시 : 7/2(월) 오후 4시 ~ 7/7(토) 오후 9:30
▷ 출국 및 귀국 예정 : 6/30(토) ~ 7/10(화)
▷ 장소 : 미국 캘리포니아 LSM
▷ 대상 : 17세 이상 60세 이하의 성도들
▷ 훈련 기부금 : $155(개요비 $5 포함)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4/23(월)까지 집사실로 신청금 200,000원을 입금 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 제 1 차 대학생 해외 복음 훈련 및 교회 방문 안내
▷ 일시 및 장소 : 7/11(수) ~ 7/17(화) / 몽골 울란바토르 외
▷ 대상 및 비용 : 대학생, 청년 및 캠퍼스 봉사자 / 약 120만원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4/9(월)까지 집사실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국 자매 온전케 하는 훈련 DVD 및 MP3 CD 신청 안내
▷ 가격 : DVD(\70,000), MP3 CD(\10,000) / 총 10메시지
※ 신청을 원하시는 분들은 4/13(금)까지 집사실로 입금 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 금주의 추구
① 구약 성경 읽기 : 욥18:1 ~ 욥40:24
② RSG(신약 회복역) : 고후4:1 ~ 고후10:18
③ 라이프-스타디 : 레위기 M49 ~ M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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