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진리를 성도 안으로 - 2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일함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가 전한 말씀은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자신 속에 계시하기를 기뻐하셨다고 우리에게 알려 준다. 바울은 계시를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영적인 지식을 얻었기 때문에 육체에 속한 사람과 상의하지 않고, 계시로 깨닫게 된 그리스도를 이방에 전한 것이다. 바울은 먼저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 들어오셔서 일하시도록 했기 때문에 일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먼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바울 안에 계시해 주셨다. 이를 통해 바울은 그리스도를 육체를 따라 알지 않고 영적 실재 안에서 알게 되었다(고후 5:16).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었다. 그가 전한 그리스도는 객관적이거나 만질 수 없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개인적으로 체험한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는 그에게 실재가 되셨다. 그리스도는 그의 안에 계셨고, 그도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생각 안에, 말과 행동 안에 계셨다. 그의 안에서 주인이 되신 그리스도를 그는 밖으로 표현했다. 당신이 그를 바울이라고 말한다면 그는 참으로 바울이다. 당신이 그에게서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말한다면 그는 또한 참으로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를 점유하셨기 때문이다(빌 3:12). 바울이 전한 것은 그의 안에 있는 것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는 자기가 아는 만큼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고 먼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넣으신 후 우리가 계시로 안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일은 하나님 자신이 하시는 것이고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전할 뿐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여러분이 바로 내가 주님 안에서 이룬 일의 열매가 아닙니까?”라고 말한 것은 곧 바울이 깨닫게 된 그리스도를 다만 그들에게 전하여 줌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를 얻은 결과가 바로 그들 자신이라는 뜻이다.
일의 기초
바울은 일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요 그 외에 다른 기초를 세울 이가 없다고 말했다. 바울은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경작하시는 밭이요, 건축하시는 집이라고 말했다. 밭에 뿌리는 씨앗이 그리스도이면 장래 추수할 것도 틀림없이 그리스도이다. 집의 기초가 그리스도이면 후에 건축되는 것도 틀림없이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거듭날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우리 속에 넣으셨다. 우리가 이전에는 갖고 있지 않았던 생명을 얻은 것이다. 우리가 거듭날 때 얻은 생명은 더해진 생명으로 본래는 우리에게 없었던 것인데 거듭날 때 더해 주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시는 모든 일은 모두 이 더해진 생명에 절대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생명이 곧 그리스도요(골 3:4), 하나님의 일의 기초이다. 이 거듭난 생명이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처럼 그 후의 생명의 성장과 성숙도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양육에 달려 있다(고전 3:6). 여기에서 사람의 손은 쓸모없으며 사람에게 속한 것은 ‘가장 좋은 것’도 결코 여기에 참여할 수 없다. 사람의 가장 큰 책임은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일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되는 것은 이 생명의 연장일 뿐이고, 승리도 이 생명이 흘러나와서 죄악과 육체, 세상, 사탄을 이기는 것일 뿐이다. 생명의 성장과 성숙도 이 생명이 사람 안에서 왕이 되어 사람 전체를 다스리는 것일 뿐이다. 성도가 거듭날 때 얻은 생명이 하나님의 일의 시작이며, 이 일의 계속과 완성도 이 생명 밖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형제자매여, 부름을 받아 주님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참된 동역을 하려면 당신이 하는 일이 이러한 정도까지 순결해야 한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속한 ‘가장 좋은 것’일지라도 거절하여 하나님의 일에 섞이지 않도록 두려워하며 떨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성령의 계시가 없이는 영적인 실재 안에서 본 것과 체험한 말씀이 없이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거듭난 사람만이 주님께서 그를 어떻게 구원하셨는가를 간증할 수 있다. 거듭난 체험이 없이는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다. 승리, 거룩하게 됨, 성령 충만, 내주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다스리시는 것 등등도 오직 은혜로 참된 체험을 통과한 사람만이 간증할 수 있다. 이러한 간증을 할 때에도 성령 안에서 해야 한다. 성령 안에서 하지 않으면 주님의 기름 바름이 함께하지 않는다. 영적인 일에서 우리는 절대로 주의 영께서 일하시는 것을 의지해야 한다. 주의 영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사람이 일해도 소용없다. 하나님의 일은,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한 후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당신을 통해 일하시는 것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오직 이러한 일만이 비로소 교회를 건축할 수 있다.
일의 재료
고린도전서 3장 12절은 우리에게 어떤 사람의 일의 재료는 금과 은과 보석이고, 어떤 사람의 일의 재료는 나무와 풀과 짚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날에 불로써 각 사람의 공력을 시험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나무와 풀과 짚은 태우면 없어지지만 금과 은과 보석은 태워지지 않는다. 금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을 대표하며 하나님의 일이다. 은은 구속을 대표하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이다. 보석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대표하며, 성령께서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사람 속에 조성되게 하셔서 하나님과 사람을 하나로 만드시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보석은 일종의 ‘화합물’로서 이것이 산출되는 데에는 반드시 고열을 통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후에 다시 장인의 손으로 다듬어져야지만 비로소 빛을 발하는 보석이 된다. 하나님께서 믿는 이들을 조성하시는 일도 이와 같다. 하나님은 한 면으로는 불과 같은 여러 환경을 사용하셔서 그들을 태우신다. 또 다른 면으로는 하나님의 손으로 그들을 다루신다. 즉 그분은 성령의 계시를 통해 쓸모없는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은 남겨 두신다. 그런 후에야 그들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석이 된 사람, 즉 사람이면서 하나님이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지으신 걸작품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일을 맡기실 수 있는 사람이다. 고린도전서 7장 25절부터 40절까지에서 바울은 주님께 받은 계명은 없지만(25절), 하나님의 영의 감동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어느 한 시기동안 귀용 부인이 마음으로 결정한 일은 꼭 이루어졌었다. 그것은 그녀의 결정이 곧 하나님의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들의 말은 그들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말을 인정하시고 그들과 연결되는 것을 꺼려하시지 않는다. 바다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과 바다를 나눌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은 이미 자기 자신을 잃고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이 곧 보석이요, 성령의 일의 완결이요,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우리 안에 조성하시도록 그분께 허락해 드려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성령의 조성을 알게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보석의 일이다.
일의 방법-계시
계시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다. 계시는 영 안에 있다. 그러므로 영이 첫째요, 생각은 첫째가 아니다. 영과 생명이 먼저요, 생각과 머리(두뇌)는 나중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찾을 때, 머리를 써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걱정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는 것은 그 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 영 안에 계시해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 후 빛을 우리의 생각에 비출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일에 있어서 생각은 둘째요, 첫째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을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말은 생각을 부차적인 수단으로 사용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적인 것을 보기 위해서 필요한 몇 가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볼 때 적어도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계시이다. 계시란 바로 ‘열어 놓는다’, ‘덮은 것을 벗긴다’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상자 속에 책이 한 권 있어도 뚜껑이 덮여 있다면 당신은 그 책을 보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반드시 뚜껑을 열어야 볼 수 있다.
둘째는 빛이다. 만약 방 안에 빛이 없다면 물건이 당신 앞에 놓여 있을지라도 당신은 그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셋째는 ‘열린 눈’이다. 물건이 덮여 있지 않고, 빛이 있다 할지라도 당신의 눈이 감겨져 있으면 역시 볼 수 없다. 성령께서 계시로써 그리스도 안의 실재를 사람에게 보여 주실 때, 동시에 그 사람의 혼 안에 있는 생각도 비추신다. 생각은 사람 안에 있는 눈이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의 눈이 라오디게아인과 같지만 않다면 그는 반드시 볼 수 있다. 라오디게아인은 자기 스스로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아도 보지 못한다. 자기 스스로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알고 있다’라는 것이 수건이 되어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영 안에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일하실 때
그가 가져야 할 합당한 태도
우리는 마리아에게서 가장 합당한 태도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아래의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그녀는 주 예수님의 발 앞에 있었고, 다른 사람의 발 앞에 있지 않았다. 그녀는 주님을 가까이하였다. 이것이 바로 생명이 자라는 가장 빠른 길이다. 시시때때로 주님을 가까이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경배하고, 끊임없이 주님과 교통하고,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 어떤 방법도 이 방법을 능가할 수 없다. 하나님을 깊게 아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길을 찾았다. 귀용 부인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모든 봉사를 포함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울도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살전 5:17)라고 했다. 사람이 수건을 벗은 얼굴로 그의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끊임없이 교통하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하게 된다(고후 3:18).
둘째, 그녀는 주님의 발 앞에 앉아 있었다. 이것은 바로 그녀가 가장 겸손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겸손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가장 중요한 태도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벧전 5:5). 겸손은 자기를 낮게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지 않는 것이요, 자기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깊은 곳에서 나온 겸손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를 베푸신다.
셋째, 그녀는 언니처럼 그렇게 바쁘게 다니지 않고 앉아 있었다. 잠잠함은 종종 영적 능력이 된다.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 잠잠하지 못하고 항상 우리의 눈과 생각이 바깥세상으로 향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지체 중에서 눈이 가장 바쁘고, 혼 안에서는 생각이 가장 바쁘다. 바쁜 사람은 계시를 가장 받기 어려운 사람이다. 산만한 생각은 마치 끊임없이 파문(波紋)이 일어서 호숫가의 꽃과 나무가 수면 위에 분명하게 비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주님의 형상을 그의 속에 새겨 주님의 형상이 되려면 반드시 주님 앞에서 잠잠한 것이 필요하다.
넷째, 그녀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주님의 말씀이 바로 영이요 생명이다. 주님은 자신을 말씀으로 사람에게 주셨다. 그녀가 주님의 말씀을 들은 것은 주님 자신이 그녀와 교통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님께 드린 것이다. 이것이 그녀가 주님을 얻고 그녀를 주님과 똑같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녀는 다만 그분의 음성만을 들은 것이 아니요, 주님 자신을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형제자매여, 만일 당신이 어떤 설교 안에서 사람의 음성만을 듣고, 그 음성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유감스러운 일일 것이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다음의 몇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째, 성령 안에서 말씀을 전해야 한다. 한 면으로는 자기를 위해서 두려워하고 떨어야 하며, 다른 면으로는 성령의 제한과 관리와 지배를 받아야 한다. 영에 속한 것을 성령 안에서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그것을 들을 때 얼마나 답답한지 모른다. 당신 속의 느낌(영의 지각)은 당신에게 그 말은 옳지만 그 근본은 잘못되었다고, 또 문자적으로는 옳지만 당신의 상태는 잘못되었다고 알려 준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가 말하는 말과 함께 하실 수 없다. 그것은 바로 돼지 코에 금고리를 걸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다(잠 11:22).
둘째, 육체에 속한 분위기에서는 말씀을 전할 수 없다. 사람들이 매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들떠 있을 때, 즉 영적 분위기를 만질 수 없을 때에는 말씀을 전할 수 없다. 이것은 달걀을 냉장고 속에 넣고 병아리가 부화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셋째, 사람에게 영적 실재를 공급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영적인 것은 물질처럼 실재이다. 컵이나 의자가 실재인 것처럼 영적인 것도 실재요, 어떤 이상이나 철학이 아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할 때 이러한 실재를 공급해야 한다.
넷째, 말씀을 전할 때에는 영적인 것들을 전달하기 위해 주님께서 당신에게 합당하고 영적인 구변을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한 예로 로렌스(Lawrence) 형제는 ‘자아성찰’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였는데, 그는 “자아성찰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철저하게 버리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를 사랑하는 행위로서 자신이 완벽해지고자 하려는 열심의 가면을 쓴 행위이다.”라고 말했다. 영적 체험 중 가장 나쁜 것이 바로 ‘자아성찰’이다. 이것은 계속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로렌스 형제는 영적인 것을 영적인 말로 설명하였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것을 영적인 말로 해석하는 것이다(고전 2:13).
다섯째, 영적인 일은 영적인 사람이 깨달을 수 있고, 육체에 속한 사람은 깨달을 수 없다(고전 2:14).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육체에 속한 사람 속에는 영적인 것이 없으므로 깨닫지 못하고, 영적인 사람 속에는 영적인 것이 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시계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시계가 무엇인지를 말할 때, 아무리 분명하게 설명해 주어도 그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에게 먼저 시계를 보이고 난 후에 “이것이 바로 시계입니다. 이것은 이러한 용도로 쓰이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먼저 그 물건을 보아야지만 그 물건에 대해 설명하는 말을 깨달을 수 있다. 영적인 일도 이와 같다. ‘거듭남’을 예로 들어보자.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첫 번째로 갖는 영적 체험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몇 년 동안 복음을 들어도 여전히 거듭나지 못한다. 당신이 그에게 거듭남의 체험을 말해도 그는 날 적부터 소경인 사람이 태양에 관한 말을 듣는 것처럼 알아듣지 못한다. 그는 속에 그것이 없기 때문에 깨달을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참으로 거듭난 체험이 있지만 그가 들은 복음의 진리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거듭난 사람인 줄 모르고 계속 구원받기를 구한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거듭남의 진리를 알려 줄 필요가 있다. 이미 그에게는 거듭난 사실이 있으므로 듣는 즉시 깨달을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먼저 실재를 보여 준 후에 적절한 말로 설명하여 듣는 사람이 영적 실재를 얻을 뿐 아니라 영적 지식을 갖게 해야 한다. 거듭남뿐 아니라 그 후의 체험도 이와 같다. 성도가 얻은 계시가 많을수록 생명은 더욱더 자란다. 영적인 말로 그가 얻은 계시가 무엇인지를 나타낸다면 사람들에게 그것을 볼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게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교회는 참되게 온전하게 될 수 있다.
말씀을 듣는 사람
말씀을 듣는 사람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좋은 교리를 들으려는 생각으로 가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를 만나려는 마음으로 가야 한다. 말씀을 듣는 것은 두뇌를 만족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을 공급받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상을 가지고 아주 분명하게 설교를 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이 감동을 받지만 그 말에 영적 실재는 없다. 당신은 이러한 설교를 사모하지 말라. 당신에게 필요한 말씀은 그 안에 영적인 것을 만질 수 있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말씀이다. 그러한 말씀은 생명과 능력이 있어 당신을 영적으로 변화시키며 당신의 생명의 분량을 증가시킨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별하는 능력을 주시어 우리로 합당한 추구를 할 수 있게 하시기를 구한다.
둘째, 영적인 것을 깨닫는 능력은 영적 연령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들었을 때 당신은 겸손히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모를지라도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알 수 있게 된다. 당신이 약해지는 것을 피하려면 절대로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 된다. 또한 당신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영적인 것을 너무 쉬운 것이라고 보아서도 안 된다. 사람들은 때로 몇 년을 들여서 한 가지를 배운 후에 비로소 말씀을 전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셋째, 대치물을 주의해야 한다. 이것은 말하는 사람이 사슴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듣는 사람은 달리는 말로 이해하는 것과 같다. 사실 그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실재’를 예로 들어 말하자. 우리가 말하는 실재는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하신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심지어 여러 해 동안 주님의 일을 해온 사람들)은 실행을 가지고 실재를 대치한다. 만일 실행한 것이 ‘실재’라면 고린도전서 13장 3절의 사람보다 더 실재적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실재가 조금도 없는 사람이다(물론 실재가 있는 사람은 실행도 한다). 다시 ‘빛’에 대해 말해 보자. 어떤 사람은 그의 생각 속에 하나의 새로운 생각이 떠올라 스스로 깨달은 것을 가지고 빛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근본은 두뇌이므로 능력이 없다. 또 어떤 사람은 빛을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적인 광선이라고 한다. 이들이 말하는 것은 다 ‘빛’이 아니다. 참된 생명의 빛은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며, 후에 생각 속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본 것이 실재가 되며, 성령께서 우리에게 열어 보이신 것이 영적 실재이며, 이것은 능력을 가져온다. 어떤 형제가 말한 것처럼, 빛은 죽일 수 있고 비출 수 있으며 태울 수 있고 사람으로 생명의 변화를 얻게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 성령께서 빛을 비추셔서 그에게 자신의 죄를 보게 하신다. 그때, 그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악한가를 깨닫고 부끄러워하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는 참으로 죄를 미워하게 된다. 이러한 빛 가운데서 죄에 대해 안 것이 지식으로 안 것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빛이다. 유감스럽게도 어떤 사람에게는 대치물이 있기 때문에 진실한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가 무엇이든지 다 알고 무엇이든지 다 깨달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워치만 니 전집 2집 38권 16-31쪽)
인수, 기도, 금주의 추구
구 역 |
주 일 |
기 도 |
소그룹 |
어린이 |
중고 |
대학 |
청년 |
1구역 |
162 |
33 |
105 |
14 |
8 |
40 |
|
2구역 |
121 |
39 |
60 |
26 |
15 |
17 |
2 |
3구역 |
114 |
39 |
87 |
18 |
12 |
26 |
7 |
5구역 |
105 |
37 |
54 |
12 |
9 |
10 |
|
6구역 |
202 |
53 |
102 |
29 |
29 |
13 |
11 |
계 |
704 |
201 |
408 |
99 |
73 |
106 |
20 |
* 주일 인수는 대학청년, 중고등부를 포함한 인수임
■ 기도의 부담
1. 2012년 부산 교회 봉사 방향(교회 소식 머릿글 참조)
2. 복음센터(5구역 집회소) 매입을 위하여
3. 경남의 미개척 교회들(산청, 합천)을 위하여
4. 부산 교회 성경 세미나를 위하여
■ 금주의 추구
① 구약 성경 읽기 : 욥41:1 ~ 시30:12
② RSG(신약 회복역) : 고후11:1 ~ 갈3:14
③ 라이프-스타디 : 레위기 M51 ~ M52
알리는 말씀, 성도들소식
■ 부산 교회 형제 온전케하는 훈련
▷ 일시 : 4/15(주일) 오후 3시 ~ 5시
▷ 장소 : 남구 학생센터
▷ 내용 : 요한 계시록, 생명의 체험(하)
■ 한국복음서원 안내
① 4월 한 달간 연회원 무료 체험(www.kgbr.co.kr 가입)
② 신규, 기존 정기구독자 MP3파일 제공(권당 1,000원에 다운)
■ 성도들 소식
1. #2
① 이사 - 김열경 형제님(010-9846-0645), 정혜선 자매님(010-2406-9109)가정이 4/16(월) 수원 영통구 이의동 오드카운티 아파트로 이사합니다.
② 유학 - 김재권 형제님(010-4809-0003)께서 4/17(화) 미국 필라델피아로 유학 갑니다.
2. #3 - 입원
연춘자 자매님께서 주례 좋은삼선병원 808호에 입원중입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