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성도 안으로-3 (2012.4.15)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2-04-14 , 조회 (27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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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진리를 성도 안으로 - 3

                          성경을 읽는 것과 성경을 만지는 것은 다름

   성경을 읽는 것과 만지는 것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성경을 ‘읽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이고, 성경을 ‘만진다는 것’은 바로 성경을 접촉하기 위해서이다. 엄격히 말해, 성경을 이해하는 것과 성경을 접촉하는 것은 두 가지 별개의 일이다. 예를 들면 여기에 물 한잔이 있다고 하자.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인식하며 그것의 성분을 아는 것은 한 가지 일이다. 우리가 그것을 접촉하고 그것을 마시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마치 아이가 매일 물로 세수하고 발을 씻지만, 오히려 물 안에 어떤 성분이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물에 대하여 모르기 때문이다. 물속의 성분을 아는 것은 화학자의 일이다. 그들은 물을 연구하기 때문에 물에 대하여 잘 안다. 그러나 아이들이 물로 세수하는 것은 물을 접촉하는 것이지 물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므로 물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양자의 차이를 보여 준다. 또 예를 들면, 우리가 매일 밥을 먹는 것은 밥을 접촉하는 것이지만 밥의 성분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하여 잘 아는 것은 어떤 것들은 요리사의 일이고 어떤 것들은 영양학자의 일이다. 그들은 어떤 음식 안에 어떤 영양이 있는지를 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먹은 것의 결과를 반드시 아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접촉하고 먹는다.
   우리는 일찍이 많은 시간을 들여 어떻게 성경을 읽는지를 말해 왔고, 사람들이 성경을 이해하고 연구하고 인식하도록 도와주었다.  우리는 또 몇 개월의 시간을 들여서 모세오경, 곧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를 읽은 적이 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었으며 결코 접촉하는데 치중하지 않았다. 각 권의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심지어 일곱 개의 중점, 즉 개요와 중심사상, 요점, 단락, 요지, 예표와 예언으로 나누어 하나씩 연구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각 권의 일곱 개의 중점을 읽어 나가기만 해도 그 책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알고 이해할 수 있으며, 또 성경을 읽다가 이해할 수 없는 난제를 만나도 쉽게 극복하게 된다. 이 일곱 개의 중점은 우리가 평소에 성경을 읽을 때 쉽게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찾아낼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창세기를 읽을 때, 몇 번을 읽든지 간에 마지막까지 읽고 나면 창세기가 책의 큰 줄기인 하나님의 창조, 사탄의 파괴, 사람의 타락,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과 구원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중점을 참고하여 다시 한 구절씩 자세하게 한 권씩 읽을 때, 그 책은 우리에게 투명해지고 밝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점은 단지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고 알도록 돕는 것이지, 결코 우리가 어떻게 성경의 말씀을 만지고 접촉해야 하는지를 돕는 것은 아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만져야만 하는 것인가?

                                       어떻게 성경을 만지는가?

                             성경의 본질이 하나님의 영임을 인식함

   성경을 만지려면 우선 성경의 본질이 하나님의 영임을 알아야 한다(요 6:63하). 우리는 반드시 먼저 이 관념과 인식을 가져야 한다. 마치 우리가 어떤 물건을 접촉할 때 먼저 그 물건의 성질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음식을 식탁에 차려 놓으면 당신은 즉시 그 음식을 먹으러 갈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이 먹을 수 있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옷을 주면 당신은 주저하지 않고 입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이 입는 데 사용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탁자가 앉기 위한 것이 아니며 앉기 위해서는 의자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아주 얕은 비유처럼 보이지만, 아주 중요한 원칙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을 학문이나 교리를 연구하는 책으로 간주한다면, 당신은 성경을 경전으로 혹은 진리와 교리를 말하는 책으로 여길 수 있다. 표면적으로 성경은 한 권의 경전이고, 진리를 말하는 책이다. 그러나 사실 내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다. 주 예수님은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63하절)라고 말씀하셨다. 믿지 않는 이들은 아마도 우리가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이 영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또한 영이라는 것을 안다. 최소한 우리는 성경의 본질이 바로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씨와 같다. 씨는 전적으로 생명의 문제로서, 씨는 생명의 체현이며 생명이 구체화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명은 너무 추상적이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창조에서 생명을 씨로 구체화하셨다. 예를 들면, 한 알의 작은 꽃씨는 안에 생명이라는 것을 감추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땅에 심으면 생명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실험실로 가져가서 실험을 한다면 그 안에 있는 생명은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씨 안에서 많은 성분을 찾을 수는 있지만 생명은 찾을 수 없다. 어떤 과학자나 생물학자 혹은 화학자든지 간에 기껏해야 실험을 통해 그 씨 안에 있는 많은 성분을 찾을 수는 있지만 생명은 찾을 수 없다. 마치 우리가 씨 안에서 생명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없는 것과 같다.
   성경의 말씀은 씨로서 확실히 씨 자체의 성분을 가지고 있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성분과 하나님 앞에서의 조상들의 상황을 볼 수 있다. 출애굽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어떻게 압제받았으며, 모세가 어떻게 출생했고, 어떻게 하나님께 보냄을 받았는지를 본다. 잠언에 와서 우리는 약간의 도덕적인 서술을 본다. 어떤 사람은 잠언의 가르침이 중국의 가훈보다 훨씬 높다고 여긴다. 이것이 모두 성경의 성분이긴 하지만 성경 안에 있는 생명은 아니다. 성경에 생명이라고 불리고 영이라고 불리는 것이 감추어져 있지만 어느 누구도 영과 생명을 꺼내서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은 성경 안에는 생명이 있지만 중국의 사서오경 안에는 생명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성경 또한 흰 종이에 검은 글씨로 쓰여진 책일 따름이 아닌가?”라고 엄하게 힐문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할 때 우리는 확실히 그에게 반박할 수가 없다. 우리가 아무리 증명하고 설명해 주어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결국 최선의 대응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서오경을 복음으로 전해보고 이것 때문에 회개하고 거듭나는 사람이 있는지를 보면 된다. 모든 사람이 알다시피, 사서오경의 복음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좋은 본성을 밝히는데 있으며 결코 사람들을 거듭나게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을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려는 것입니다.”(요 3:16)라고 말해 주면 즉시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회개하며 구원받아 거듭나고, 그런 후에 이 사람은 바뀌어져 달라진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이며 또한 생명이다. 우리가 한 알의 씨를 땅에 심고 며칠을 기다리면 연하고 푸른 싹이 자라 나온다. 비록 우리가 생명을 꺼내서 보여 줄 수는 없지만 나타난 사실을 통해서, 이 씨가 살아 있으며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이러한 비유는 우리에게 무엇이 성경을 이해하는 것이고 또 무엇이 성경을 연구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 준다. 이것은 마치 화학자가 씨의 성분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실험을 통해 씨의 성분을 분석하는 것과 같으며, 또한 밀이나 콩이나 쌀과 같은 각기 다른 씨들을 성분 실험을 통해 각기 그 성분이 다르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실험을 통해서는 속에 있는 생명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씨는 땅과 접촉하여 배양되어야만 생명이 자랄 수 있다. 화학자가 소용이 없고, 천재적인 두뇌도 소용이 없다. 씨는 땅이 있어야 발육하고 성장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된 것인지 영문도 알지 못하고 그 생명을 만질 수도 없지만, 씨는 땅에서 발아됨으로 씨 안의 생명이 나타날 수가 있는 것이다.
   성경의 비밀은 이와 같이 성분적인 면이 있을 뿐 아니라 영적인 면, 곧 생명의 방면이 있다. 유명한 생물학자라 할지라도 이 생명과 관련된 사실을 증명할 수가 없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숫자를 연구할 수 있는데 ‘7’은 완전함을 상징하고, ‘3’은 부활을 상징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성경의 성분으로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또 연구를 통해 민수기가 동역과 건축에 대하여 말하고, 신명기는 생활과 경배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성경 안에 있는 생명을 만지는 것은 또 다른 방면의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밖에서 보면 진리이고, 안에서 보면 영과 생명이다. 마치 씨와 같아서 밖에서 보면 씨마다 각기 그 성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안에서 보면 씨마다 그 안에 가지고 있는 생명은 별개의 이야기이다.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반드시 이 두 방면이 모두 있어야 한다. 이 두 방면은 우리와도 서로 관련된 부분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사람이 설명할 수 없고 꺼내어 보여 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 곧 하나님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영의 체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인식이 만약 이 정도까지 이르지 못했다면 우리는 시간을 들여 성경을 연구하고 읽기만 하면 된다고 여길 것이다. 이와 같다면 우리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두 방면의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어떤 성도들은 여전히 이 두 방면, 즉 성경의 외적인 성분과 내적인 생명과 영을 분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성경의 외적인 성분을 이해할 뿐 아니라 더욱 성경의 내적이 생명과 영을 만질 수 있도록 이 두 방면을 분별해야 한다. 생명의 씨가 여기에 있는데 우리가 그 씨의 성분을 알고자 한다면 잘 분석해야 하고, 우리가 그 생명을 만지려고 한다면 그 씨를 적합한 토양에 두어야 한다. 그러면 며칠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생명이 자라나올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성경이 하나님의 영의 체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을 접촉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는 것임

   두 번째로, 우리는 성경을 접촉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미신적으로 성경을 보아서는 안 되지만, 우리가 매번 성경을 접촉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접촉한다는 진지한 태도와 관념과 느낌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만약 이러한 태도가 부족하다면 성경을 만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마치 우리가 음식을 접촉하는 이유는 그것을 먹기 위해서인 것과 같다. 우리에게 이러한 자세가 없다면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념과 태도는 아주 중요하다.
   매번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마다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러 온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접촉하러 온 것인가? 우리가 만약 연구를 위해서라면 그 안에 있는 교리를 연구해야 하고, 성경을 접촉하기 위해서라며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접촉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을 읽는 백 명의 사람 중에서 구십구 명은 거의 성경 안의 교리를 연구하기 위해 성경을 대한다. 하나님의 긍휼로 많은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성경 안의 교리를 연구하고 있지만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영을 만지신다. 어떤 때 우리는 마치 눈먼 사람이 더듬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예가 비록 좋지는 않지만 원칙은 오히려 맞아 떨어진다. 원래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만지고자 하는 의도가 없이 단지 성경의 교리를 연구하려고 했을 뿐인데, 성경을 연구하다보면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의 영을 만지시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성경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성경을 접촉할 때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을 이런 분명한 관념과 태도와 동기를 갖고 대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오늘 우리는 오늘 이 두 방면의 훈련이 다 필요하다. 한 면은 성경을 읽는 것을 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한 면은 성경을 만지고 접촉하는 것을 훈련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훈련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기 위한 습관을 세움

   우리는 반드시 어떤 것이 성경을 읽는 것이고 어떤 것이 성경을 만지는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까지 하나님의 자녀 중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두 방면을 분별할 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을 읽는 것은 다만 성경을 읽는 것일 뿐, 성경을 읽는 것이 성경을 접촉하고 만지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사용한 ‘접촉’이라는 이 글자는 특별한 용법이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이 성경을 접촉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만지는 것’과 ‘읽는 것’은 차이가 있다. ‘읽는 것’은 연구하는 것이고, ‘만지는 것’은 접촉하고 몸으로 부딪치는 것으로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작용이다. 우리가 말하는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음식 안의 성분을 연구하는 것과 같다. 성경을 만지고 성경을 접촉하는 것은 마치 사람을 초대하여 밥을 먹는 것과 같다. 양자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과거에 성경에 대해 얼마나 이런 방식으로 만지고 접촉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체험에 따르면, 우리가 특별한 인도를 받은 적이 없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성경을 읽는 것은 구십 퍼센트가 읽고 연구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보며 생각해보자. 연구하며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접촉하기 위해서 성경을 폈을 때가 언제인가? 아마도 그런 경우는 극히 적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배우고 더 훈련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접촉할 때마다 반드시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기 위해 나온다는 신중한 관념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관념으로 이 일을 훈련해야 한다.

‘이해하려고 하는’ 관념을 버림

   그 다음으로 우리는 성경을 접촉할 때에 ‘이해하려고 하는’ 관념을 버려야 한다. 처음에는 상당히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을 꺼내기만 하면 습관적으로 연구하며 읽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약 성경을 대할 때 그것을 연구하려고 하지 않고 단순하게 성경을 접촉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많이 훈련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비결이 있는데, 우리가 만약 잘 훈련할 수 있다면 점차 성경을 읽는 것이 아주 유익하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접촉하기만 하면 즉시 영을 접촉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해하려고 하는’ 것 때문에 해를 입었다. 우리가 속으로는 “만약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영감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훈련한다면 참되게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영감에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장 피해야 할 한 가지 일은 바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 ‘이해하려고 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마치 우리의 말이 약간은 모순이 있는 것 같다. 성경을 읽는 것이 어찌 성경을 이해하려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게다가 우리에게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매번 우리는 성경을 접촉하려고 할 때, 이해하려고 하는 생각을 거절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영을 감지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을 이해하지 못할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때가 되면 반드시 성경을 이해하게 되며, 그때가 참되게 이해하게 되는 때이다. 우리는 반드시 성경을 이해하려고 하는 관념을 한 쪽에 제쳐두어야 한다. 마치 우리가 풍성한 잔치에 참여하여 이 것 저 것을 분석할 필요도 없이 다만 마음껏 우리 눈앞에 있는 음식을 먹으면 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아주 얕은 비유이다. 우리들이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께 이런 수준에까지 구원받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다. 우리가 성경을 펴기만 하면 심지어 이것이 성경의 어떤 책인지 알 필요도 없이 다만 단순하게 그것을 접촉하면 된다. 성경을 읽을 때 심지어 이러한 ‘어리석음’이 필요하기까지 하다. 다만 하나님의 영을 접촉한다는 마음과 관념과 태도를 가지면 된다. 우리는 반드시 이렇게 ‘어리석은’ 정도까지 우리의 관념을 전환해야 한다. 심지어 우리가 읽을 때에 이해했더라도 그것을 거절하고서 주님께 “주님, 저는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다만 당신의 영을 접촉하기 원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우리가 만약 이렇게 시간을 들여 성경을 읽는 것을 훈련할 수 있다면, 때가 되었을 때 이런 실행이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형제자매들 가운데 지금까지도 이런 방식으로 훈련한 이들이 많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우리는 ‘성경 읽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읽기’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모두 마치 화학이나 과학을 공부하듯이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읽기’라는 글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서 끊임없이 연구에 몰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하게 개선하고 점검받는 것이 필요하다. (주님을 섬기는 이의 자격·추구·배움 153-163쪽)



인수, 기도, 성도들 소식


구 역

주 일

기 도

소그룹

어린이

중고

대학

청년

1구역

146

41

113

16

6

41

2구역

115

17

64

27

16

11

2

3구역

113

69

85

15

12

29

7

5구역

113

38

71

12

12

12

6구역

206

33

111

26

33

12

5

693

198

444

96

79

105

14

* 주일 인수는 대학청년, 중고등부를 포함한 인수임


■ 기도의 부담
1. 2012년 부산 교회 봉사 방향(교회 소식 머릿글 참조)
2. 복음센터(5구역 집회소) 매입을 위하여
3. 15 복음 확산(경남 : 산청, 합천)을 위하여
4. 6월 한국 교회들 특별집회(란 캥거스)를 위하여

■ 성도들 소식
#2 - 이사
김석주 형제님(이정남 자매님) 가정이 4/14(토) 영도구
동삼동 동삼 그린힐 304동으로 이사 하였습니다.

■ 부산 교회 청년직장인 야외섞임 안내
▷ 일시 : 4/22(주일) 오전 10:30 ~ 오후 3시
▷ 장소 : 해양대학교 실내체육관
▷ 회비 : 5,000원(점심식사는 개인 부담)
▷ 대상 : 청년직장인, 봉사자, 열린가정

■ 부산 교회 형제 온전케하는 훈련 재안내
▷ 일시 : 4/15(오늘) 오후 3시 ~ 5시
▷ 장소 : 남구 학생센터
▷ 내용 : 봄 장로 책임형제 전달 집회
▷ 대상 : 모든 형제님들

알리는 말씀, 금주의 추구


■ 15 복음 확산 계획 안내
 2007년 8월, 남한 땅의 회복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미개척된 도시 69개소 중 지난 4년간 54개소를 회복하였고, 2012년 8월 31일까지 완료해야 할 곳은 15개소(함평,고성,양구,보성,옥천,청양,서천,장수,진안,강진,구례,신안,완도,산청,합천)가 남아 있습니다. 그 중 경남은 산청(새신자 4명), 합천(2가정 김복수, 허원욱) 2개소가 남아있는 상황입니다. 남은 15개소의 확산을 위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주님께 간구하고, 가능한 성도의 이주를 격려하고, 동심합의 하여 추진토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온 교회가 4/15(주일) ~ 5/13(주일)까지 함께 기도로 동참하며, 부담있는 성도들은 아래 복음 개척자 합숙 훈련에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복음개척자 합숙훈련 안내
▷ 일시 : 4/27(금) 저녁 6:30 ~ 4/28(토) 오후 2:40
▷ 장소 : 성경진리사역원
▷ 대상 : 15 복음 확산 동참자 전원 및 부담 있는 성도들
▷ 회비 : 32,000원(1박 3식)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4/20(금)까지 집사실로 입금 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 한국복음서원 안내
▷ 봄 장로들과 책임 형제들을 위한 양식 신청(전체 주제 : 장로들과 책임 형제들로서 앞장섬 / 총 8메시지)
한글 - 6,500원 / 영어 - 8,500원

■ 금주의 추구
① 구약 성경 읽기 : 시42:1 ~ 시72:19
② RSG(신약 회복역) : 고후11:1 ~ 갈3:29
③ 라이프-스타디 : 레위기 M53 ~ M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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