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성도 안으로 - 4 (2012.4.22)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2-04-20 , 조회 (29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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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진리를 성도 안으로 - 4

영을 가지고서 영을 사용하기를 훈련함

   세 번째,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먼저 우리의 두뇌가 아니라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접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그분은 우리가 영을 사용하여 그분을 만지는 것을 필요로 하신다. 물론 성경을 읽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고, 또 두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것은 영의 문제라는 것이다. 어떤 형제는 성경을 읽는데 두뇌는 확실히 사용하지만 마음은 사용할 때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부족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사랑하는 것도 부족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접촉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은 마음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신문을 보듯이 두뇌만 사용한다. 어떤 이들은 두뇌를 사용할 뿐 아니라 마음을 사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대가를 지불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려고 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영을 사용할 줄 몰라서 결국 신성한 생명의 공급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읽고 저렇게 읽어도 여전히 성경 안에서 교훈들을 얻어 행위를 개선하려고 할 뿐 내적인 생명을 만지지 못한다.
   당신과 내가 성경을 읽을 때 한 가지 공과를 배워야 하는데, 다만 두뇌만 사용하거나 마음만 사용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영을 사용해야 한다. 즉 두뇌를 의지하지 말고 영으로 성경을 접촉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말씀 앞에 있는 것이 바로 그분 앞에 있는 것이라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경배하는 영을 가져야 하며 다만 성실한 마음만을 가지고 그분의 말씀을 읽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드시 경배하는 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하나님을 접촉해야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는 우리의 깊은 곳에서 그분께 경배해야 한다. 이 말은 우리의 두뇌를 제쳐놓아야 하며, 그분을 향한 우리의 열성으로 그분의 말씀을 접촉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시므로 우리는 이러한 인식과 마음과 태도를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두뇌를 거절하고 우리의 생각을 거절하며, 우리의 이해력과 우리가 배운 것을 다 거절하고, 단순히 우리의 깊은 곳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경배함으로 그분의 말씀을 접촉하기를 더욱 훈련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만약 이처럼 훈련한다면 성경을 반장만 읽더라도 우리의 영은 성경 안의 영을 만질 수가 있다. 성경을 십 분 접촉하든 이십 분을 접촉하든 이런 방식으로 읽는다면 우리 속은 신선해지고 밝아지며 강해지고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영을 만졌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성경에서 무언가를 얻기 원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 점에 있어서 시간을 들여 훈련함으로 성경이 우리를 양육하고 공급하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 기억해 주기를 바라건대 이것이 바로 성경의 가장 귀한 면이다. 물론 우리는 성경의 빛과 진리가 우리의 생각의 부분도 공급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은 다른 면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성경은 하나님의 영이 계시는 곳으로, 우리가 성경을 접촉할 때 먼저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앞에 올 때, 반드시 우리의 두뇌와 우리의 이해력을 거절하고 단순하게 깊은 속에서부터 하나님을 경배하며 이 말씀들을 접촉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만지는 것은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는 것이며, 그 결과 우리는 우리 속에서 즉시 하나님의 영을 만지게 된다. 이러한 접촉 안에서 거룩과 능력과 사랑과 위로가 산출되는데, 이것은 마치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질 때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열매들이 맺히는 것과 같다. 이것은 가르침을 통해서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자라나와 맺히는 것이고,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말씀을 만질 뿐 아니라 더욱 하나님의 영을 만진 것이다. 왜냐하면 말씀 안에 영이 있고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이 계시는 곳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매번 우리가 성경을 접촉할 때 줄곧 취해야할 하나의 태도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우리의 영을 사용해야 하며, 우리의 두뇌와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은 적극적인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형제자매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성경을 접촉하는 것을 훈련하거나 연습하면서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을 들여야 하며, 처음 성경을 읽는 초보자들이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설사 그들이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들이 해낸 정도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왜냐하면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이 그들로 이런 정도까지 도달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을 접촉할 수 있다면 이것은 성경을 읽는 방면에서 이미 상당히 숙련된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우리의 영적 수준은 아직 상당히 초보적이고 혹 어느 정도 해낼 수도 있겠지만, 그 해내는 정도는 틀림없이 제한적일 것이다. 이 제한의 원인은 아주 많다.
   이제 우리는 부정적이고 제한하는 요인들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오직 이러한 제한의 요인들이 점진적으로 감소될 때에라야 우리 안에 있는 영이 하나님의 영을 만지는 정도는 갈수록 더욱 높아질 수 있다. 이것은 마치 한 사람이 무거운 물건에 눌려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것과 같은데, 누르고 있는 무게가 점점 감소될 때마다 이 사람은 자연스럽게 천천히 일어나게 된다. 그 무거운 물건이 완전히 제거될 때에, 이 사람은 완전히 일어날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는 방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를 제한하는 그러한 요인들이 완전히 제거되고 나면 우리는 높은 정도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제한하는 이러한 요인들이 완전히 제거되는 데까지 이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접촉할 때 받는 제한

   우리는 수없이 성경을 읽었지만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접촉했었던 적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있는 많은 제한 때문이며 또 많은 것들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를 누르고 있는 이 요인들이 점진적으로 감소되지 않고서는 일어설 수가 없다. 누르고 있는 것들이 조금 감소되면 우리는 그만큼 일어서게 된다. 좀 더 감소되면 좀 더 일어설 수 있다. 다시 좀 더 많이 감소되면 그만큼 더 많이 일어날 수가 있다. 완전히 제거되었다면 완전히 일어날 수가 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성경을 읽으며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을 접촉할 때, 그에게는 아무런 눌림도 없었고 이 일에서 모든 눌림을 다 벗어버렸다고 믿는다. 우리는 또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펼 때마다 그가 읽은 만큼 하나님의 영을 만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사도 바울이 이러한 경지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틀림없이 그의 모든 눌림이 완전히 제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마치 독수리처럼 땅에 속한 모든 묶임을 벗어버리고 창공을 향해 솟구쳐 올라가 마음껏 날개짓하며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체험에서 우리 각 사람은 억누르는 요인이 제거되는 정도가 각 사람마다 다르다. 갓 구원받은 사람은 성경을 읽을 때 상당히 많은 제한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에게서 많은 제한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갓 구원받았는데, 그는 지금까지 공부를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글자를 읽을 줄 모른다. 그런데 이제 구원을 받고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권의 성경책, 곧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성경을 읽음으로 그분을 접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묻겠는데 갓 구원받은 이 사람이 성경을 읽을 때 영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영을 접촉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르고 그것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형제자매들은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글자들을 읽을 수 있고 문장들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공부를 해야 하고 글자를 익혀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그 제한이 제거될 수 있다. 그럴 때 그가 다시 성경을 읽는다면, 얼마든지 그의 영 안에서 하나님의 영을 만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영의 느낌은 반드시 사람의 다른 부분을 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약 마음에서 이해하지 못했다면, 영 안의 느낌 또한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영의 느낌은 반드시 생각을 거쳐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글자를 모르고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두뇌를 통과하여 사람을 이해시킬 수 없고 영 안에서도 영감이 있을 수 없으며 또한 하나님의 영을 접촉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영을 만질 수 없을 때마다 우리에게 무언가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가 받고 있는 제한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 

                                             마음의 문제

   우리가 받게 되는 첫 번째 제한은 통상적으로 마음의 문제이다. 마음의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다. 우리의 마음이 만약 하나님 외의 다른 어떤 사물들로 빗나갔다면 더 이상 영감을 얻지 못한다. 우리는 앞에서 성경을 읽을 때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을 접촉해야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태도가 얼마나 단호하든지 간에 다만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외의 사물들로 빗나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영감을 얻을 수 없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마음을 돌이켜 빗나간 곳에서 돌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고 우리의 마음이 빗나간다면 영감을 완전히 활용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받게 되는 두 번째 제한은 무관심이다. 비록 우리가 성경을 읽고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감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는 일의 방면에서 하나님을 추구하는 마음이 부족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외의 다른 어떤 사물들로 빗나간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관심이 없고 이렇게 되든지 저렇게 되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완전히 성경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다.

   세 번째 제한은 우유부단한 마음이다.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조금은 원하는 것 같고, 마음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조금은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순복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마치 순복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이것저것을 고려하면서 대가를 따진다. 좀 심하게 말하면 당신은 성경에서 말하는 ‘두 마음을 품은’(약 1:8, 4:8) 사람이며 두 혼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하나의 혼만을 주시어 하나의 생각과 하나의 의지를 갖게 하셨다. 두 혼을 가진 이들은 하나님도 위하고 세상을 위하기도 하여 마음이 나누어진다. 우유부단한 이들은 하나님도 원하고 다른 것들도 원하는, 곧 둘 다를 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접촉하고 싶기도 하고 또 접촉하고 싶지 않기도 하여 마음이 한결같지 않다.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이 되면 마치 전기 스위치의 나사가 느슨해진 것과 같게 되어, 눌렀을 때는 불이 켜지지만 누르고 있지 않으면 불이 꺼진다. 반드시 나사를 잘 조여야 계속 켜져 있도록 할 수 있다. 우리가 우유부단할 때, 마치 느슨해진 나사 같아서 느슨해졌다가 다시 조이기를 거듭하고, 켜졌다가 꺼지기를 반복하는 것이 일정하지 않아 영 안에서는 계속 혼란스럽다. 우리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이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

   네 번째 제한은 절대적이지 않은 마음이다. 우리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우유부단하지도 않지만, 절대적인 마음도 아니어서 견고하지 않고 한결같은 의지가 부족하다. 그러한 마음은 무슨 일을 하든지 가볍고 한가하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얼마나 깊게 접촉하는지는 전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절대적인지에 달려 있다. 영은 마음을 따라가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절대적이지 않으면 영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당신과 내가 마음을 조금만 보류해도 즉시 영 안에서 하나님과 접촉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반드시 우리의 마음을 처리하기를 배워야 한다.

   다섯 번째 제한은 차분하지 않은 마음, 즉 마음이 쉽게 요동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체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혼란스러울 때, 즉 어떤 일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때 우리는 제대로 성경을 읽기가 어렵다. 일이 생기면 우리는 요동하고 혼란에 빠져서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을 만지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끓어올랐다가 잦아드는 물거품처럼 요동치면서 우리로 성경을 읽을 수 없게 한다. 우리는 아무리 심각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을 훈련하는 공과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환경이 얼마나 요동치는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접촉하고, 우리의 마음을 가라앉혀서 이 일에 방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된다. 이렇게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은 우리에게 더욱 큰 유익을 준다.

   여섯 번째 제한은 염려에 빠진 마음이다. 우리에게 문제가 있고 환경 가운데 풍파가 있어서 마음이 오르락내리락 할 때, 우리는 성경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체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 마음에 염려가 있을 때, 곧 우리의 친척 때문에 염려하고 우리의 사업 때문에 걱정이 될 때, 성경 읽기는 늘 우리에게 큰 유익을 준다. 성경 말씀은 참으로 우리를 위로하며 우리의 구원이 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이 한 가지 일이지만, 우리가 영 안에서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것이다. 어떤 때에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고 말씀에서 도움을 얻지만, 언제나 영 안에서 하나님을 접촉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어떤 사람이 고난을 당할 때 성경 말씀에서 위로를 받지만 그 고난이 지나간 후에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의 성분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이유이다. 이것이 바로 어떤 사람들은 마음속에 염려가 있을 때 성경을 읽고 위로를 받을 수 있지만, 염려하던 것이 지나간 후에 그의 속에 하나님의 성분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이다. 아마도 그는 고난을 당할 때 성경 말씀이 어떻게 그를 위로했는지를, 그에게 염려가 있었을 때 성경 말씀이 어떻게 그에게 도움을 주었는지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환경이 지나가고 나면 그의 안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성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는 다만 하나님의 말씀의 위로만 얻었을 뿐 영 안에서 하나님을 만지지는 못했다.
(주님을 섬기는 이의 자격·추구·배움 163-175쪽)



 인수, 기도, 성도들 소식


구 역

주 일

기 도

소그룹

어린이

중고

대학

청년

1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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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103

1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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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구역

113

39

77

2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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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3구역

115

49

66

22

8

32

5구역

101

34

59

10

10

6

6구역

204

56

103

27

29

15

7

691

217

408

105

68

110

9

* 주일 인수는 대학청년, 중고등부를 포함한 인수임

■ 기도의 부담
1. 2012년 부산 교회 봉사 방향(교회 소식 머릿글 참조)
2. 복음센터(5구역 집회소) 매입을 위하여
3. 15 복음 확산(경남 : 산청, 합천)을 위하여
4. 6월 전국 특별집회(란 캥거스)를 위하여

■ 성도들 소식
#6 - 침례
육영주 자매님께서 4/6(금) 침례 받으셨습니다.

■ 재단법인 설립 허가 알림
▷ 법인명칭 : 재단법인 부산 교회 유지재단
▷ 법인허가 : 부산시청 문화예술과 (2012.4.17 허가)
※ 5월 중 설립 등기 후 지정기부금 단체 신청 예정(기획재정부)

■ 전국 중고등부 학부모 봉사자 집회 안내
▷ 일시 : 5/12(토) 오후 2:30 ~ 5/13(주일)
▷ 장소 : 성경진리사역원
▷ 회비 : 전체참석 41,000원 / 출퇴근 15,000원(1식 추가비용 6,000원)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4/29(주일) 오후 7시까지 석기완 형제님(010-5424-7670)께 입금 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농협 179656-51-004560, 석기완)

■ 부산 교회 대학생 체육대회 안내
▷ 일시 : 4/28(토) 오전 11시 ~ (점심, 저녁제공)
▷ 장소 : 동명대학교 운동장
▷ 대상 및 회비 : 대학생, 청년, 열린가정 / 5,000원
▷ 등록 : 4/25(수)까지 박영록 형제님(010-9775-2167)께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리는 말씀, 금주의 추구


■ 국제 가을 장로 훈련 및 일본 쥬빌리 축제 안내
① 국제 장로 책임형제 훈련
▷ 일시 : 10/4(목) 오전 9시 ~ 10/6(토) 오후 6:15
▷ 출국 및 귀국 예정 : 10/3(수) ~ 10/8(월)
▷ 장소 : 일본 요코하마(PACIFICO)
▷ 기부금 : \390,000 / 훈련비, 3일간의 점심?석식 6식 포함(숙박,조식, 항공료 불포함)
▷ 대상 : 동역자들, 각 교회 장로 및 책임형제들, 장로들에게 추천받은 형제들

② 일본 쥬빌리 축제
▷ 축제 기간 : 10/7(주일) ~ 10/10(수)
▷ 출국 및 귀국 예정 : 10/6(토) ~ 10/10(수)
▷ 장소 : 동경(2곳), 오사카(1곳) 동시 진행
▷ 기부금 : \336,000 / 숙비(4박), 식비, 교통비 포함(항공료 불포함)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5/9(수)까지 집사실로 입금 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취소시 신청금은 환불되지 않으며, 기타 자세한 사항은 집사실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 전국 특별집회 및 전국 봉사자 온전케 하는 훈련 안내
① 특별집회 : 6/3(주일) ~ 6/10(주일)

내용

일시

메시지

시간

장소

경기권역

6/3(주일)

C1

10:00-12:00

고양 킨텍스

서울, 강원

6/3(주일)

C2

16:00-18:00

성경진리사역원

호남권역

6/8(금)

C3

19:30-21:30

광주과학기술교류협력센터

충청권역

6/9(토)

C4

10:30-12:30

대전교회 학생센터

경북권역

6/9(토)

C5

19:30-21:30

대구 엑스코

경남권역

6/10(주일)

C6

10:30-12:30

부산교회 교육관

② 전국 봉사자 온전케 하는 훈련
▷ 일시 : 6/5(화) 오후 3:30  ~ 6/7(목) 오후 1:20
▷ 장소 및 강사 : 성경진리사역원 / 란 캥거스 형제님
▷ 비용 : 전체참석 81,000원 / 출퇴근 29,000원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5/15(화)까지 집사실로 입금 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취소시 신청금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 한국복음서원 안내
▷ 제목 : ˝교회생활을 위해 다음 세대를 양성함˝
▷ 가격 : 예약가 13,000원(정가 20,000원)

■ 금주의 추구
① 구약 성경 읽기 : 시73:1 ~ 시105:45
② RSG(신약 회복역) : 갈4:1 ~ 엡1:23
③ 라이프-스타디 : 레위기 M55 ~ 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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