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성도 안으로 - 5 (2012.4.29)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2-04-28 , 조회 (34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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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진리를 성도 안으로 - 5

   세상의 유명 인사들의 격언도 사람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위로를 얻을 수 있게 한다.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도 이러한 체험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격언이나 좌우명에는 하나님이 없다. 어떤 형제자매는 고난 중에 성경 말씀에서 얻은 유익과 세상 사람들이 유명 인사들의 격언에서 얻은 도움과 별다른 차이점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안에 하나님의 성분이 전혀 없고, 그것은 이성적인 깨우침에 불과하거나 혹은 심리적으로 강화된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 안에서 실지적으로 하나님을 접촉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어떤 사람들은 고난을 통과할 때 성경에서 위로를 받지만, 고난이 지나가고 나면 그들 안에 하나님의 성분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본다. 성경의 참된 기능은 하나님을 사람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참으로 영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접촉하기를 배운다면 평온하고 아무런 탈이 없을 때뿐 아니라, 고난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안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성분은 틀림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위로를 얻을 뿐 아니라 힘든 일이 지나갔거나 고난이 지나갔더라도, 우리 안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성분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가지며 더 많은 연합을 갖게 될 것이다. 지나간 날들 동안 우리가 체험한 것들이 이 일들을 확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여섯 가지의 마음의 상태를 반드시 처리해야만 한다. 우리 마음속에 일단 이러한 상황이 생기면 우리의 영은 침체되며 하나님의 영을 접촉할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받는 제한들을 제거해야 하고, 하나씩 처리해야 하며, 마음이 하나님 외의 일들로 빗나간 것을 처리해야 하고, 영감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상태를 처리하며, 우유부단함을 처리하고, 절대적이지 못하고 차분하지 못한 것, 그리고 마음속의 염려를 처리해야 한다. 이럴 때 우리의 영은 갈수록 쉽게 하나님의 영을 접촉할 수 있게 된다. 아마도 이 여섯 가지 항목 외에도 우리를 제한하는 다른 항목들이 더 있겠지만, 이 여섯 항목이 거의 모든 마음의 어려움들을 포함하고 있다.

두뇌의 문제

문자적 의미에서 시간을 들이고

성경의 은유적 의미의 방면에서 교육을 받음

   마음의 문제 외에도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두뇌의 문제도 처리 받아야 한다. 사실 두뇌란 생각을 가리키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생각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두뇌’의 문제만을 언급할 것이다. 우리의 두뇌가 받는 제한은 첫째로 교육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예를 들어 언급했던 것처럼 만약 우리가 글자를 읽을 줄 모른다면 성경 안에 있는 영을 만질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글자를 읽지 못하는 제한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성경을 읽어 주는 사람을 찾아서 그로 우리의 두뇌를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어서 어떤 때는 여전히 방해가 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조용히 성경을 읽는 것이 한 가지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이 읽어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또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안다. 후자의 상황은 우리가 쉽게 방해를 받을 수 있다.
   원칙적으로 우리는 반드시 성경의 문장들을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어 성경을 읽고 이해할 뿐 아니라 더욱이 히브리어와 헬라어로도 여러 부분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가장 좋다. 이것은 우리가 영감을 얻는데 큰 도움을 준다. 중국어 화합본도 상당히 좋긴 하지만 몇몇 부분의 번역은 확실히 개선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읽었을 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중국어로는 그 말에 내포된 참된 의미를 단정 지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번역은 가장 쉽지 않은 일로 특별히 성경과 같은 경전은 더욱 번역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그 안에는 많은 시와 노래가 포함되어 있다. 시편과 같은 책은 번역하기가 아주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약 원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면 상당히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두뇌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영 안에서 느낌을 갖기란 불가능하다. 영의 느낌은 늘 두뇌의 깨달음을 통해서 오는데, 이것은 확실한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이 당신과 함께 말씀을 들을 때, 중국어를 아는 당신은 상당히 감동을 받지만 그 사람은 말씀을 이해할 길이 없다. 왜냐하면 말씀이 그의 두뇌를 거칠 수 없어서 그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 이들이 되기를 원하거나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접촉하는 이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문자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나는 내 자신이 문학 방면에 조예가 깊지 않음을 항상 괴로워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조적인 방법을 찾는데, 그것은 필사적으로 사전과 참고서를 활용하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한 권의 성경에 이십여 종의 참고서를 사용하여 헬라어 원문의 의미를 찾는다. 내가 헬라어를 아주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참고서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책을 통해서는 이 글자가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고, 어떤 책을 통해서는 이 글자와 다른 글자가 어원이 같다거나 혹은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어떤 책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풍속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또는 율법이나 법적인 용법에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말해 주고, 어떤 책에서는 이 글자가 신약 성경에서 모두 몇 차례나 쓰였는지, 어떤 곳에서는 어떻게 번역되었는지를 말해 준다. 또 어떤 책은 성경에서 이 글자의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해 준다. 이와 같이 많은 책들을 참고하려면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
   우리가 모든 글자를 이처럼 시간을 들여서 연구할 수는 없지만, 몇몇의 중요한 글자에 있어서는 반드시 시간을 들여서 연구해야 한다. 우리가 시간을 들여서 연구하지 않는다면 그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없고, 성경의 영도 만질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중국어 화합본의 구약은 여러 곳에서(출 29:33, 32:30, 레 1:4, 4:31, 5:16, 16:6 등) ‘속죄’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우리가 원문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죄가 있기 때문에 사람과 하나님께 죄를 범했고, 그로 인해 죄를 속량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연구해 볼 때 이 단어는 여러 곳에서 ‘덮는다’라는 의미의 어원에서 왔으므로, 이 단어는 ‘죄를 덮음’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구약에서는 희생 제물을 통해 성취한 것은 죄를 덮는 것이며, 신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을 가리킨다.
   또 성경에서 사용된 ‘창조’(창 1:1), ‘만드심(2:4)’, ‘지으심(2:7)’등과 같은 것은 문자적으로도 차이가 있다. 또 ‘공의’, ‘사랑’, ‘긍휼’ 등과 같은 단어들도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만약 원문의 뜻을 이해한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책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의미는 문자를 통해 표현되는데, 이러한 표현은 우리의 깨달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달을 수 없다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신약 성경의 원문에서는 적어도 세 가지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생명’을 말하는데, 그 중 하나는 사람의 혼 생명을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동물의 생명을 가리키며, 나머지 하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리킨다. 이러한 연구는 아주 광범위하여 만약 우리가 성경을 잘 연구하려면 이러한 방면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두뇌를 훈련하는데, 우리의 두뇌가 만약 훈련을 받지 않는다면 영감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두뇌의 교육이며 문자와 관련된 한 방면이다.
   또 은유하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방면이 있다. 성경을 합당하게 읽으려면 한 종류의 방식으로만 읽어서는 안 되고 두 종류의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한 종류는 영으로 하나님의 영을 만지는 방식이고, 다른 한 종류는 연구하는 방식으로서 우리의 두뇌로 성경의 은유적인 의미를 찾는 교육을 받아 성경의 문맥에 대해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성경 안의 은유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민수기가 ‘군대를 편성함’에 대해 말하고, 신명기가 ‘생활’에 대해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책 속에 은유하고 있는 의미로 교육하는 것이다. 우리의 두뇌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다만 문자의 방면에서 교육을 받는 정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전에 우리가 신명기를 읽을 때 그 안에 있는 문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안에 은유하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가 은유하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약간의 훈련과 교육을 받고나서 다시 신명기를 읽었을 때는 한결 더 분명해질 수 있었다. 또 예를 들면, 우리가 ‘십분의 일’이라는 이 말을 이해하긴 하지만 우리는 성경 안에서의 그 말이 은유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또 ‘십분의 일’에 대해 세 종류의 의미가 있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민 18:21, 신 12:5-7, 14:28-29). 우리가 만약 성경 안의 은유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두뇌 속에는 깨달음이 없고 성경을 읽을 때 영감도 없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성경 안의 은유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을 접촉한다면 즉시 영 안에 느낌이 생길 것이다.
   우리가 만약 성경에서 많은 유익을 얻으려면 이 두 종류의 성경 읽는 방식을 모두 훈련해야 한다. 한 종류는 성경 안의 은유적인 의미를 연구하는 것이고, 다른 한 종류는 성경 안의 영을 접촉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음식을 준비하는데 어떤 음식은 시장에서 닭, 오리, 생선, 고기를 사와서 준비한 것이고, 어떤 음식은 분유, 간장, 쌀, 밀가루 등과 같이 이전에 미리 저장해 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한 끼를 훌륭하게 먹으려면 다만 미리 준비해 둔 식재료가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더욱 이러한 식재료를 요리해야 한다. 이것은 한 방면이다. 다른 방면은 우리가 먹어야 하는데, ‘먹는 것’이 바로 우리가 말한 ‘접촉하는 것’, ‘만지는 것’으로서, 성경을 ‘만지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다. 우리는 먹기 전에 미리 준비하고 재료를 사서 조리하여 음식을 모두 준비해 둔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게을러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려고 하지 않고, 재료를 사러 가지도 않아 결국 아무렇게나 여기저기서 긁어모아 억지로 과자 두 조각, 물 두어 모금을 마시는 것으로 끼니를 때운다. 이것은 우리에게 먹는 문제가 아니라 준비하는 문제임을 보여 준다.
   물론 우리가 성경을 통해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을 만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문제는 우리가 평소에 준비를 하느냐이다. 만약 우리가 평소에 전혀 준비하지 않았다면 마태복음 1장의 계보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2절)라고 말하는 부분을 읽고 나서 그 뒷부분을 읽을 때는 혼란스러워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간을 들여 마태복음을 연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라는 책이 있는데, 우리가 만약 기꺼이 한나절 정도의 시간을 들여 이 책과 마태복음 1장 1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을 잘 연구하여 둘을 서로 대조해 본다면 대체적인 의미는 모두 이해하고 기억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후에 다시 영을 사용하여 마태복음 1장을 접해보면 틀림없이 영감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재료를 사서 음식을 준비하는데 시간을 들이는 것처럼 앉아서 성경을 읽는다면 틀림없이 먹을 만한 것이 아주 많아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란 책은 그리스도의 족보 안에 있는 모든 영적인 의미를 거의 표현해 놓았다.
   우리가 이전에 출애굽기나 신명기를 읽을 때 그 안에서 말한 소나 양의 처음 난 것,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위해 세우신 곳, 장막의 치수 등에 대하여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영감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성경의 영적인 ‘은유’를 연구하는 방면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꺼이 삼사 개월의 시간을 들여서 우리가 전에 말했던 것에 따라 출애굽기 전체를 철저하게 읽는다면, 출애굽기를 모두 읽었을 때 틀림없이 곳곳에서 많은 계시와 자양분을 얻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성경의 문자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교육을 받은 적이 있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 은유하고 있는 의미를 연구하는데 있어서도 교육받은 적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하고 연구해야 한다. 또 가르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심지어 우리가 읽도록 강요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마치 우리가 화학 서적 안의 의미를 몰라 그 가운데의 많은 부호를 이해하기 위해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한 것과 같다. 한 면에서는 성경은 깊은 책이 아니어서 이해하기 쉬운 책이지만, 또 다른 면에서 성경은 너무나 전문적인 책이어서 믿지 않는 이들이 아무렇게나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경의 은유적인 의미를 연구하는 방면에서 우리의 두뇌를 훈련하고 교육받아야 하는데, 우리의 두뇌가 만약 충분한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성경을 읽는 데에 있어서 반드시 손해를 볼 것이고 우리의 영은 쉽게 하나님의 영을 만지지 못할 것이다.


두뇌가 합당해야 함

   우리의 두뇌는 교육의 제한을 받는 것 외에 둘째로 매번 합당하지 않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리는 사람이 타락한 후에 아주 큰 문제들이 두뇌에서 나온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두뇌가 합당한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심리학자들도 사람마다 거의 모두가 약간씩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두뇌를 훈련해야 한다. 성경은 생각이 새롭게 됨(롬 12:2)을 말한다. 우리의 타락한 두뇌는 합당하지 않으므로 생각이 새로워져야 합당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생각이 아무렇게나 온 천지를 마음대로 날아다닌다. 결국, 사람이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는 문제는 그 사람의 어떠함에 달려있다. 이것은 우리의 두뇌가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이다. 우리가 어떠한 사람인 것은 우리가 그러한 두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그러한 두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경 또한 그렇게 읽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만약 영을 사용하여 성경 안의 영을 만지기를 배우려 한다면, 우리의 두뇌와 생각이 점점 더 깊이 그 중심으로 들어가고 합당할 수 있도록 반드시 하나님의 긍휼을 앙망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두뇌가 합당하지 않으면 합당한 영감을 얻을 방법이 없다. 간혹 무언가를 얻었다고 해도 아주 이상한 영감들일 것이다.

두뇌는 집중이 필요함

   셋째, 우리의 두뇌는 집중해야 한다. 다르게 말해서 산만하지 않아야 한다. 두뇌가 산만하고 혼란스러우면 우리의 영 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절대적으로 생각을 집중할 수 있을 정도로 혼란스럽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우리의 체험은 우리가 앉아서 성경을 읽으려고 할 때마다 언제나 생각을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의 생각은 이곳에서 떠돌다가 금세 다른 곳에서 떠돌며, 잠시 이 일에서 맴돌다가 어느새 저 일에서 맴돈다. 눈은 성경을 주시하고 있지만 생각은 이미 다른 곳을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어떻게 영감을 얻을 수 있고, 어떻게 우리의 영으로 하나님의 영을 접촉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제멋대로 날아다니는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우리의 생각을 집중하기를 배워야 한다. (주님을 섬기는 이의 자격·추구·배움 175-184쪽)



인수, 기도, 성도들 소식


구 역

주 일

기 도

소그룹

어린이

중고

대학

청년

1구역

165

36

102

13

9

37

7

2구역

99

30

62

24

13

17

3구역

107

56

81

15

4

27

5

5구역

108

39

65

14

6

12

7

6구역

201

54

106

25

28

11

16

680

215

416

91

60

87

52

* 주일 인수는 대학청년, 중고등부를 포함한 인수임


■ 기도의 부담
1. 2012년 부산 교회 봉사 방향(교회 소식 머릿글 참조)
2. 복음센터(5구역 집회소) 매입을 위하여
3. 15 복음 확산(경남 : 산청, 합천)을 위하여
4. 6월 전국 특별집회(란 캥거스)를 위하여

■ 성도들 소식
1. #1 - 침례
홍정욱 형제님께서 4/22(주일) 침례 받으셨습니다.
2. #2 - 장례
이지미 자매님의 부친 이종덕님의 장례를 4/28(토) 좋은강안병원 장례식장에서 무사히 치뤘습니다. 
3. #3 - 결혼
전인철 형제님(강미희 자매님)의 아들 전대웅 형제님과 리사 자매님의 결혼식이 5/19(토) 오후 3시 안산교회(안산시 상록구 월피동 영현빌딩 305호)에서 있습니다.(010-4232-4864, 강미희)
※ 전세버스 : 5/19(토) 오전 8시 30분, 동래역 3번 출구
4. #6
① 장례 - 김진우 형제님의 장례를 4/25(수) 기장병원 장례식장에서 무사히 치뤘습니다.
② 결혼 - 황병석 형제님(김언희 자매님)의 장남 황정철 형제님과 김명정 자매님의 결혼식이 5/5(토) 낮 12시 부전동 네오스포 로터스웨딩홀 2층 로터스홀에서 있습니다.
(010-8480-1900, 김언희)


 알리는 말씀, 금주의 추구



■ 미 개척도시 15 복음 확산을 위한 헌금 및 복음활동 안내

지난 4/23(월) 남해 교회 집회소에서 부산.울산.경남.제주 권역의 교회들이 모여 15 복음 확산을 위한 구체적인 교통을 가졌습니다.
본 권역안에 있는 합천, 산청을 4/30(월)부터 5/11(금)까지 전시간 훈련생들과 지역 성도들이 동역하여 복음지를 배포하고, 복음을 전파하여 교회 간증을 세워야 한다는 부담을 강화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교회들이 기도와 물질과 복음활동을 통하여 동참하도록 해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부산 교회 각 지역의 형제.자매님들은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동역해 주시기 바랍니다.
① 헌금 : 헌금 봉투에 “15복음 확산”을 기재하여 헌금하실 수 있습니다. 기간은 5/31까지입니다.
② 기도 : 각지의 기도 집회와 소그룹, 활력그룹에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③ 복음활동 : 각 구역의 봉사하는 형제님들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 부산 교회 대학생 장막생활 안내
▷ 일시 : 7/12(목) ~ 7/16(월), 4박 5일
▷ 장소 및 비용 : 제주도 / 15만원(선입금 7만원)
▷ 대상 : 대학생, 청년, 열린가정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5/10(목)까지(마감일 준수, 그 이후 접수 불가) 김수진 자매님께 선입금(7만원) 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010-3445-5392 / 농협 815-127-56-062231,김수진)

■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 실행 훈련 DVD 및 MP3 CD 신청 안내
▷ 가격 :  DVD(\54,000), MP3 CD(\12,000) / 총 8메시지
※ 신청을 원하시는 분들은 5/14(월)까지 집사실로 입금 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 금주의 추구
① 구약 성경 읽기 : 시106:1~ 시136:26
② RSG(신약 회복역) : 엡2:1 ~ 엡4:32
③ 라이프-스타디 : 레위기 M57 ~ M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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