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교회 기도집회 추구
진리를 성도 안으로
두뇌가 명석해야 함
넷째, 우리의 두뇌는 명석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의 두뇌는 합당하지만 명석하지 않고 대충 대충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분명하게 그 깊이를 읽어낸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언약궤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 성경에는 이것에 대해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그는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한다. 그에게 언약궤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물어보면 그는 제단의 길이, 넓이, 높이를 말할 것이고, 그에게 다시 제단에 대해 물어보면 분향단에 대하여 말할 것이다. 이것은 그다지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확실히 두뇌가 명석한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와 신명기의 차이점에 대해서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모두가 제사와 소, 양 등과 같은 것들을 다루지 않느냐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두뇌가 명석하지 않은 것이다.
또 신약의 모든 사도들의 이름 중에서 항상 베드로를 먼저 언급하지만(마 10:2, 막 3:16, 눅 6:14, 행 1:13), 갈라디아서에서는 오히려 야고보를 먼저 언급한다(2:9).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이런 사실을 항상 아무 생각도 없이 받아들인다면 이러한 사소한 부분들을 읽어낼 수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서 두뇌가 합당하고 명석한 이들을 찾아내는 것이 확실히 어렵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참으로 총명하긴 하지만 두뇌가 합당하지 않다. 이러한 사람들은 성경을 읽기에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읽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읽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너무나도 고지식하여 움직이는 것도 감히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두뇌가 명석하지 않아 오리무중에 빠진다. 어떤 이들의 두뇌는 합당하고도 총명하지만, 어떤 손상을 받았는지 도무지 생각을 집중하지 못하고 줄곧 이 곳 저 곳을 마음대로 날아다닌다. 이러한 것들은 다 사탄이 행하는 것이다.
시간을 들여 성경을 연구함
우리의 두뇌는 교육이 필요하고, 합당해야 하며,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 명석해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이 네 가지 항목의 부족이 우리의 두뇌가 받는 제한으로서 우리로 하나님의 영을 만질 수 없도록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만지려고 한다면 반드시 이러한 제한들이 감소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을 받지 않고, 합당하지 않으며, 집중하지 못하고, 명석하지 않은 상황들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공부를 하여 글자를 배워야 한다. 매일 약간의 시간을 들여서 성경을 읽음으로 하나님을 접촉할 뿐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한담하거나 신문을 보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 등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모든 사고력과 시간을 아껴서 하나님께 드리고 성경을 연구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번거롭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삼 개월 간은 창세기를 연구하고, 삼 개월 간은 출애굽기를 연구해야 한다. 일 년 사분기 동안 성경의 처음 몇 권을 다 연구할 수 있다면 아주 좋다. 나중에 다시 약간의 시간을 들여 사무엘상하와 열왕기상하, 역대상하, 시편들을 연구하면 되는데 이러한 것은 결코 헛되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성경을 철저하게 연구하는 것은 식량을 사고 음식물을 준비해 놓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으려고 하든지 창고만 열면 다 있다. 버터를 원하면 버터가 있고, 우유를 원하면 우유가 있으며, 꿀, 밀가루, 간장, 쌀 등 무엇이든지 다 있다.
어떤 이들은 성경의 창고를 열어도 그 안에 아무것도 없고 텅텅 비어 있기만 하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고 인스턴트식품만 조금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성경을 펴서 출애굽기 25장에서 언약궤의 길이, 높이, 넓이를 말하는 것을 읽었어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금으로 싼 조각목을 말할 때 ‘조각’이 어떻게 하나의 명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연구해 본 적이 없어서 사전을 펴고서도 찾지 못한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확실히 이와 같다. 우리가 시간을 들여서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읽는 것이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낼 수 없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큰 손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시간을 들여야 하는데, 유일한 방법은 바로 한 권 한 권 시간을 드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다. 이 일이 각지 교회에 전달되어 형제자매들이 다 일어나 시간을 드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여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한데, 연구하는 것은 준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다. 반드시 먹어야 하고 날마다 조금씩 먹어야 한다. 날마다 시간을 드려서 성경의 말씀을 ‘만져야’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접촉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의 마음과 두뇌는 성경을 읽는데 부족하지 않도록 훈련을 받아 문자적인 의미에 있어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은유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가 다시 성경을 읽을 때, 우리의 영은 쉽게 하나님의 영을 만질 수 있게 된다. 사도 바울이 바로 이러한 사람이었다. 그의 두뇌는 교육을 받았고, 집중할 수 있었으며, 정확하고 명석하여 구약 성경의 어떤 책이든지 그가 읽기만 하면 영감을 받았고, 그의 영은 즉시 하나님의 영을 만졌다. 왜냐하면 그는 앞에서 언급한 필수 조건들을 다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은 처리를 받았고, 두뇌는 훈련을 받아서 쉽게 하나님의 영을 만질 수 있었다.
감정의 문제
세 번째는 감정의 문제이다. 마음의 문제나 두뇌의 문제 외에, 우리가 여전히 제한을 받는 것은 우리의 감정이다. 감정과 생각은 다른데, 감정은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정서’를 가리킨다. 우리의 정서가 불안할 때, 성경을 읽으면 쉽게 영감이 생기지 않는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모두는 우리의 감정과 정서를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감정적인 방면에서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다만 간단히 우리의 정서가 안정되어야 한다고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든 혹은 얼마나 유익이 있든 없든 간에 우리의 감정은 평온을 유지해야 한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감정을 하나님께 올려놓고 어떤 일을 만나든지 감정을 ‘고정’시켜야 하고 하나님께 고정되어야 한다. 모든 일에 있어서 안정되고 태연하기를 배워야 한다.
심지의 문제
네 번째는 심지(心志)의 문제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원하는 결심이나 결의가 없이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다는 의미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무언가 깨닫고서 뜻을 세우고 삶의 방향을 정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뜻을 세우는 것은 여기에서 쓸모가 없다. 우리가 말하는 심지는 견고하게 하나님을 원하고 하나님께 순복하고자 하는 뜻을 가리키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이렇게 하겠다고 뜻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지가 견고한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자신을 의지하지 않는 것인데, 심지 안에서 자신을 의지하면 자신이 실패할 뿐 아니라 성경을 읽는데 더욱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선 우리는 심지가 있어야 하지만 절대로 자신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 다음으로, 우리의 심지는 반드시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야한다. 자신을 의지하는 심지를 가졌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 힘든 실패를 가져올 것이다. 사람이 자신을 의지하는 심지는 성경을 읽는데 방해가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은 상당히 교만한 사람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지는 반드시 자신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자신을 의지함으로 이러한 포부와 뜻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서있어야 한다.
셋째,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심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하라고 명하신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시어 사람을 입고서 하시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하기를 원하시는 모든 것은 다 그분께서 사람에게로 오셔서 사람을 대신해서 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염려나 두려움이 없다. 우리는 단호하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것은 틀림없이 나를 대신하여 이루실 것이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심하고 결의해서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하나님과 함께 서서 한결같이 하나님을 따라야 한다(민 14:24, 신 1:36, 수 14:14).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갈렙이 한결같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어 그곳의 대적이 얼마나 크고 강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위해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실 것임을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읽어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이다. 설마 우리가 자신의 약함을 아는데 하나님께서 모르시겠는가? 설마 우리가 가나안의 일곱 족속의 사람들이 크고 강하다는 것을 아는데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들어가라고 하시는가? 하나님 자신이 그들을 대신해 싸워주시지 않는다면 그들의 대적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심지에 관해서 이 세 가지를 새겨두어야 한다.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반드시 나를 입으시고 나를 대신해서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가 높다라면 그분의 공급 또한 높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을 가져야 하며 그럴 때 우리의 심지가 영적인 심지가 될 수 있고, 이것만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넷째, 우리의 심지 안에 더해져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제가 하기를 원하신다면, 당신이 저에게 분부하신 것을 다 잃는다고 해도, 심지어 목숨조차 잃는다고 해도 기꺼이 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심지는 죽음도 불사하는 정도까지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분부하셨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면 목숨을 잃을지라도 순종하기를 원한다. 보통사람들이 쓰는 말로 하자면 모든 희생과 모든 대가는 다 그것을 아깝게 여기지 않고 대가로 여기지 않는데서 나온다. 이러한 심지는 바로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한결같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분께서 반드시 우리를 대신해서 하실 것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대가를 지불한다 해도, 심지어 그것이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기꺼이 순종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지가 바로 영적인 심지이다.
형제자매들이 마음의 문제에 있어서 힘을 다해 처리 받고, 두뇌에 있어서 힘을 다해 교정을 받으며, 감정과 심지에 있어서 힘을 다해 훈련하기를 바란다. 한 면에서 우리는 힘을 다해 훈련해야 하고, 다른 한 면으로는 성경을 펼 때 두뇌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을 접촉해야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우리가 거두게 될 수확을 볼 것이다. 그러나 처음 시작할 때는 확실히 쉽지 않는데, 마치 자전거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서 타는데 서투르기 때문에 차라리 걸어 다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 번 연습한 후에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확실히 걷는 것보다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외에도, 좋은 성경 읽기는 반드시 좋은 기도가 동반되어야 하고 영을 따라야 한다. 우리는 다 영을 따르는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만약 영을 잘 따르지 않는다면 좋은 성경 읽기를 할 수가 없다.
매일 성경 읽는 시간을 지키고 성경을 읽는 것이
다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봄
정리해보면, 우리 각 사람, 특히 주님을 위해 일하는 전시간 형제자매들과 인도자들은 매일 상당한 시간을 내어 성경을 연구해야 하고, 이 일을 견고하고도 꾸준하게 지속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일로 여겨야 한다. 어떤 때 사람이 나를 찾아오면 나는 그에게 “저는 성경을 읽는 중이어서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성경을 읽는 것이 다른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보았다. 생활 가운데 우리는 일정 시간을 분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 성경 읽는 것을 소일거리로 여기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일들에 비해서 성경 읽기는 그다지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고 그러다보니 누가 찾아오면 성경 읽는 것을 멈추고 내려놓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드시 성경 읽는 시간을 지켜야 하는데, 때로 나는 성경을 읽는 것 때문에 어떤 편지들에 대하여는 답장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답장을 하는 것 때문에 성경을 읽지 못했다고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렇다면 조만간 우리는 손해를 보는 사람이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특별히 말씀의 사역을 하거나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성경을 읽은 적이 없다면 집회에서의 말씀이 풍성하거나 강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바울이 쓴 서신을 읽을 때, 우리는 그가 구약에 대해 매우 잘 알았고 참으로 구약에 통달했으며 자유자재로 운용했다는 것에 동의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와 같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아주 빈곤하다.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때는 말씀을 전할 수도 없다. 혹은 어떤 때 우리는 교회에서 어떤 상황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지만 그런 상황을 대처할 말씀이 없어서 형제자매들이 계시를 얻거나 의욕을 얻도록 할 방법이 없다. 우리가 만약 성경을 철저하고도 잘 읽는다면 모든 필요를 공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성경을 통해 이러한 말씀의 빛과 계시를 공급함으로 교회생활 가운데에 의욕을 얻게 하고 교회가 전진하도록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삼 개월 간의 시간을 들여서 전적으로 신명기에 나타난 교회의 경배에 관한 말씀을 전했다고 하자. 그 결과 형제자매들 모두가 이 경배를 추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말씀의 사역이 강하고 풍성한 것이다.
또 다른 면에서, 우리는 반드시 항상 우리의 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을 접촉하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문자들을 이해하고, 성경에 은유하고 있는 영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상당한 연구를 해야 한다. 또한 우리의 마음은 주님 앞에서 훈련을 받아야 하고, 우리의 두뇌와 감정과 생각도 다 상당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성경을 읽는다면, 우리는 오 분이든 십 분이든 주님의 말씀을 펴서 읽는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읽으며 우리의 영으로 하나님의 영을 접촉할 때, 우리는 또 한 번 배부르게 먹고 마셨다고 말할 수 있다. 매번 우리가 성경을 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 우리 안에서 다시 한 번 적셔지고 신선하게 된다. 또 하루 중에 언제라도 이렇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영으로 하나님의 영을 접촉할 때, 성경을 이해하는 것에 대해 깊은 도움을 받게 된다. 이때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을 만지게 되고, 이렇게 영을 만질 때에야 우리 안에서 계시를 보게 되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만지지 못한 것이며, 보지 못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인과 관계를 이루며 서로 보조하는 관계이다. 성경을 연구하며 읽는 것과 하나님의 영을 만지는 성경 읽기는 둘 다 서로 보완해 주고 지지해 주는 관계이다. 때가 되면 우리는 성경에 대해 상당한 이해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우리는 어떤 단락의 성경은 뜻밖에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거나 철저하게 읽지 않았다
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부분까지 읽고 나서 두어 번 더 읽으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을 읽는 일에 있어서 숙달되었고, 우리의 생각과 영 안에서의 느낌도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으로 한 권의 열린 성경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 전체가 우리에게 열린 책, 곧 우리에게 완전히 계시된 책이 된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성경이 우리에게 살아 있는 책이 되고, 우리는 결코 미신적이지 않지만 우리가 성경을 접촉하기만 하면 반드시 하나님을 만진다고 말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하나님을 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을 만짐으로 하나님 안에 있는 사상을 이해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 가운데 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열어 주신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성경을 접촉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성경을 이해하고 성경의 유익을 얻는 사람이 된다. (주님을 섬기는 이의 자격·추구·배움 184-194쪽)
인수, 기도, 성도들 소식
구 역 |
주 일 |
기 도 |
소그룹 |
어린이 |
중고 |
대학 |
청년 |
1구역 |
163 |
38 |
103 |
21 |
5 |
39 |
|
2구역 |
104 |
32 |
62 |
14 |
11 |
||
3구역 |
111 |
55 |
82 |
15 |
4 |
27 |
7 |
5구역 |
101 |
40 |
61 |
15 |
8 |
12 |
|
6구역 |
186 |
46 |
107 |
26 |
25 |
11 |
12 |
계 |
665 |
211 |
415 |
91 |
53 |
89 |
19 |
* 주일 인수는 대학청년, 중고등부를 포함한 인수임
■ 기도의 부담
1. 2012년 부산 교회 봉사 방향(교회 소식 머릿글 참조)
2. 복음센터(5구역 집회소) 매입을 위하여
3. 15 복음 확산(경남 : 산청, 합천)을 위하여
4. 6월 전국 특별집회(란 캥거스)를 위하여
■ 성도들 소식
1. #1 - 장례
문진훈 형제님(오미정 자매님)의 모친 김연옥 자매님의 장례를 5/3(목) 남천성당에서 무사히 치뤘습니다.
2. #3 - 이사
김영관 형제님(고덕심 자매님)가정이 4/26(목) 수영구 망미동으로 이사 하였습니다.
3. #5 - 결혼
정봉금 자매님의 아들 강구 형제님과 홍정아양의 결혼식이 5/13(주일) 오후 1시 동해시 코스모스 호텔 별관에서 있습니다.
※ 전세버스 : 5/13(주일) 오전 6:30 서면 영광도서 앞 → 오전 7시 사상 파라곤호텔 앞 (연락처 010-7175-2599, 정봉금)
알리는 말씀, 금주의 추구
■ 춘계 전국 청년, 직장인 특별집회 안내
▷ 일시 : 5/19(토) 오후 2시 ~ 5/20(주일) 오후 1시
▷ 장소 : 성경진리사역원
▷ 대상 : 청년, 직장인, 청년들을 돌보는 가정 및 봉사자
▷ 비용 : 숙박 42,000원(1박 3식), 출퇴근 16,000원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5/8(화)까지 집사실로 입금 후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부산은행 278-13-000436-7, 부산교회)
■ 복음 확산 지역으로 이주 희망자 및 연결대상자 안내
▷ 산청 : 이주가정 없으며 3가정 이주 필요 / (연락처 : 한원기 형제님 010-9686-3000)
▷ 합천 : 3가정(김복수/허원욱/임홍욱) 이주 / (연락처 : 임홍욱 형제님 010-6568-9920)
■ 합천 교회 간증 선포 집회 안내
▷ 일시 : 5/13(주일) 오전 10:30 ~ 12:30, 점심식사 제공
▷ 장소 :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 129-5 합천군문화예술회관
▷ 연락처 : 임홍욱 형제님(010-6568-9920)
※ 참석을 원하시는 분들은 5/8(화)까지 집사실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한국복음서원 안내
▷ 성경으로의 여행(중고등부 교재) - 하나님의 말씀 , 5,500원/권
■ 금주의 추구
① 구약 성경 읽기 : 시137:1 ~ 잠6:35
② RSG(신약 회복역) : 엡5:1 ~ 빌1:30
③ 라이프-스타디 : 레위기 M59 ~ M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