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 양식22주 4일
오늘의 양식
주님의 노예 2012-05-14 , 조회 (242)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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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33:1-3 보라 형제들이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좋고도 즐거운가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원한 생명이로다

[각주]
 

아침의 누림

하나라는 터는 다만 우리의 존재에 적용되신,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그 안에 있는 하나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임으로써 형성된 하나 안에 있지 않다. … 우리가 일단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을 우리 존재에 적용함으로써 산출된 하나 안으로 들어오면 그 하나에서 빠져나오기가 극히 어렵다. … 기독교의 하나는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교회들의 하나는 삼일 하나님을 우리의 내적 존재에 적용한 것과 관계있다.

이 하나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서부터 몸으로 퍼져나가는 기름 바름으로 말미암아 실질적이고 실지적으로 된다. 우리는 몸 안에 남아있는 한 이 관유를 함께 누린다. 이 관유 안에서 우리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복합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생명 주시는 영의 기름 바름이 우리의 하나의 요소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교회의 지체들로서 하나라는 것은 우리가 그 영의 기름 바름 아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이 관유 아래 있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과도 하나가 될 수 없고, 자기 자신과도 하나가 될 수 없다. (참 하나의 입장, 126, 137-138쪽)

 

오늘의 읽을 말씀

관유는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몸’을 위한 것이다. ‘몸’으로부터 분리되거나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관유를 체험할 수 없다. 시편 133편에 있는 그림에 의하면 이 관유는 머리 위에 있다. 후에 그것은 수염으로 퍼져나가서 옷깃까지 내려간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는 관유를 체험할 수 없음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은 그의 가정에서 혼자 주님을 접촉할 수 있다고 따질지 모른다. 물론 접촉할 수 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교회와 하나인지 아닌지에 달려 있다. 만일 우리가 교회와 하나라면 우리는 가정에서도 혼자 주님을 합당하게 접촉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교회와 분리되어 있다면 주님과의 접촉은 아주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기름 바름이 개인적인 지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머리와 ‘몸’을 위한 것이며 ‘몸’을 가진 머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유로 페인트칠 되려면 우리는 반드시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 교회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모든 요소들을 가진 기름 바름의 적용을 저절로 누리게 된다. 이러한 관유를 적용함으로 산출된 이 하나는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시편 133편 3절에 의하면 ‘하나’는 또한 시온의 산들에 내리는 이슬과 같다. 기름 바름은 사람인 아론 위에 있지만, 이슬은 장소인 시온 위에 있다. 이슬은 생명의 은혜를 상징한다(벧전 3:7). 생명의 은혜는 생명의 공급이다. 교회생활 가운데 우리는 기름 바름 아래 있을 뿐 아니라 생명의 공급인 은혜를 받는다. 우리에게 관유가 부어질 때 우리는 또한 은혜를 받는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은혜를 풍성히 체험했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가시’를 없애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다. 주님은 그분의 은혜가 바울에게 충분하다고 대답하셨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바울의 가시를 없애시기보다 바울에게 주님의 충분한 은혜를 공급하기 원하셨음을 가리킨다(고후 12:7-10).

고린도후서 13장 14절은 … 은혜가 곧 우리의 생명 공급이 되시기 위해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이라는 것을 가리킨다. 관유는 우리의 존재 안으로 ‘페인트칠’ 되시는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을 상징하고, 이슬은 우리의 누림을 위한 우리의 생명 공급이신 삼일 하나님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교회생활 가운데 우리는 매일매일 기름 바름과 은혜를 갖는다. 우리는 과정을 거치신 하나님으로 페인트칠 되며, 과정을 거치신 동일한 하나님을 우리의 생명 공급을 위해 은혜로 받는다. 이 기름 바름과 공급으로 인해 우리가 하나 안에 사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시편 133편 말씀에서 하나는 바르는 관유와 적시는 이슬과 같다. 바르는 관유와 적시는 이슬 아래서 우리는 하나라는 터 위에 임하는 생명의 축복을 체험한다. (참 하나의 입장, 126-128쪽)



추가로 읽을 말씀:  참 하나의 입장,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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