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2번(임홍형제님 교통 소그룹에 대해서)
주님께 감사합니다. 서두에 왜 409장을 부르자고 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찬송은 네가 젊었을을때 자주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사역에 온전케 된 이후에 어떤기간에 이 찬송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은 우리의 친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후에는 너희를 노예라 하지 않고 친구라 하겠다. 부활 하신 후 친구가 친구가 형제가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너희 아버지에게 가지 않았다. 나의 형제들에게 가서 며칠 전에 친구라 하셨는데 부활안에서 형제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역 안에서 온전케 되었을 때 주님과의 관계가 친구에서 형제라 한것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 찬송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10년정도 이 찬송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는 이 찬송을 아주 많이 불렀습니다 곡을 다 외웠습니다
이 노래를 여러 번 부릅니다. 테너, 베이스 알토 모든 파트를 안보고 다 부릅니다.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왜 이 찬송을 제가 부르자고 했을 까요? 작년에 복음 전파 하러 가서, 하루저녁 시간을 정해서 복음전파를 했습니다. 복음전파 전에 온전케 하는 시간 찬송, 성경, 사역의 말씀을 30분 동안 찬송, 기도 읽고 나갔습니다 . 나가서 복음친구를 만났습니다.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409장 다시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아주 좋지 않은 환경이 있었습니다.
그와 그의 배필은 정말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50여세가 되었을때 그의 아내가 암이 걸렸습니다. 살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는 학교에 높은 관직에 있고, 교장시험에 합격했습니다. 그때 그 아내가 암이 걸려서 학교일을 그만두었고, 2년후 그 아내는 죽었습니다. 아주 낙심했습니다 지나치게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에 슬픈 생활을 살았습니다. 그에게는 좋은 친구가 있었는데 상황을 알고 날마다 친구를 밖으러 불러내었습니다. 날마다 등산을 같이 다녔습니다. 그 친구의 아내도 말했습니다. 그 아내가 말하길 나의 남편은 그 사람에게 시집갔다. 나에게 보다 더 잘해주었다. 그래서 그가 말하길 만약 이 친구가 수년동안 나와 같이 해 주지 않았다면 어둠속에서 나올수 없을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한 방면에서 우리는 주님이 참 좋은 친구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다 그런 사람을 만나니 그 찬송이 다시 한번 나를 감동시켰습니다 봉사집회에서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모든 형제들이 이 찬송으로 부흥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복음을 전파하러 나갈 때 너무 이론적입니다. 이론적인 것이 뭔가 하면 복음을 받아서 우리가 기뻐하든지 아니면 더 이상 그를 만나지 않든지입니다. 복음을 받지 않으면 만날 마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삼년반 사역하셨을 때 사람들이 그를 비방하셨을 때 그는 죄인과 세리들의 친구라고 비방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당신은 누구누구의 친구라고 말할 때 한 두번 만난다면 친구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복음을 전했던 이분을 볼 때 자기와 같이 오년동안 등산을 갔던 사람을 친구라 불렀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려운 환경가운데 친구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등산을 해준 분을 친구라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좋은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오년동안 어려움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바리새인들이 죄인들과 세리들의 친구라고 하신것은 주님께서 매일 자주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이러한 부분을 자주 말합니다. 요한이 사람들을 침례줄때 주님은 먹고 마셨다고 했습니다. 레위가 그의 집을 열어서 많은 친구들을 초대 했습니다. 주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앉아계셨습니다. 마치 주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이집에서 저 집으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 다니지만 느낌이 없습니다.
전시간, 동역자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볼때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길거리에 사람을 볼때 사람들이 곤고하며 방황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목자가 없는 양떼가 같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삼년 반동안 사역을 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삼년반 동안 봉사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쓸만한 이야기가 잇을까요? 그러나 성경에서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쓸 때 너무나 사람이 많습니다 이 지방에서 저 지방으로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습니다. 12년동안 혈루병 여인을 접촉하고 절름발이 벙어리 죄인들 이 사람 저사람 집. 귀신에 들린사람 .. 그분은 동일한 분으로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재생산입니다. 675장이죠 한번 불러보죠 “ 이 영광의 복음소식 믿기 간단해 어제오늘 영원토록 변함없는주...
이찬송의 영은 2절 4절에 있습니다. 주님은 여전히 엠마오로 동행하길 원하십니다. 주님은 변함없으신 분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느낌이 별로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분이 어떠한 것처럼 우리도 그와 같을 것이라 했습니다. 요한14장19절 그분은 사실것이고 우리도 살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사신것을 압니다. 그러나 어디에 사는지는 모릅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사십니다. 여기서 사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안에서 무엇을 살아냅니까? 그분은 사람들과 같이 있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분은 죄인들과 세리들과 친구였습니다. 워치만 니 형제님이 젊을 때 바깥에서 갈때가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길 좋아했습니다.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주님은 죄인과 세리들의 친구였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의 친구가 되고 있습니까? 한 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이 찬송에 대해 느낌을 가졌을 때 한 청년이 직장인이었는데 그가 업무실적이 전국에서 몇 년 1등한 아주 뛰어난 직장인 이었습니다. 너무 과로해서 쓰러져서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의사는 가능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럴때 어떤 사람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직장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형제자매들이 그들에게 초대되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매일 기도했을 때 그 사람이 발을 움직였습니다. 형제 자매들은 그가 치료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불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도움 받을 수 없었습니다. 교회지들이 오는것을 좋아졌습니다. 성도들이 가고나면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불러왔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오면 병세가 심해지고 성도들이 가면 증세가 좋아졌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는 것은 그는 뇌사상태였습니다 한 무리의 형제, 자매들이 그를 전혀 몰랐는데 몰랐습니다. 그러나 매일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병문안을 갔습니다. 그후 그 어머니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지속적으로 갈 때 그 청년이 깨어 났습니다. 가시는 분들은 저희 집회소 형제, 자매입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번 따라 갔습니다. 치료된것이 아니고 그분은 그냥 깨어난 상태입니다. 이분은 대북에서 40분 거리에 삽니다. 그래서 그곳의 교회에 그들을 부탁했습니다. 그 교회는 어머니가 침례 받은 것은 기뻐했지만 이 아들에 관해서는 한 두번 가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대북 내가 있는 집회소에 오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너무 딱딱해 져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병자들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딱딱해져 있습니다. 형제, 자매님 왜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까? 어떤 관점에서 복음은 효과가 없다. 믿지 않는다 라고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친구가 되길 원하는 사람입니까? 주님께서 죄인과 세리들의 친구가 되었을 때 모든 사람이 그분을 영접했을까요? 주님께서 친구가 되심으로 그들을 얻었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는 것은 이 뇌사했던 분은 기적이 일어나서 80%회복되었습니다. 수학도 간단한 것은 풀 수 있고 대화도 간단하게 합니다. 병원에서 이러한 일은 일어난 적이 없다고 놀라고 있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합니까? 만약 우리가 사람들의 친구가 되길 원한다면 이것이 진정한 인성안의 목양입니다.
당연히 가정을 열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만약 그분이 믿지 않는다면 그를 또 초청할 것인가요? 이 찬송 “내게는 좋은 친구 있네” . 그분은 여전히 죄인들을 접촉하길 원하십니다. 그분은 여전히 죽은 사람의 관에서 살아나길 원합니다. 그분은 변함없습니다. 그분의 구원은 더 넓은 것으로서 법리적인 구속만 아니라 유기적인 구원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나되어 사람들을 동정하며 복음을 전하길 원합니까?
온전한 구조를 세워야 합니다. 복음의 구조 한국에서 온전하게 세우기 원합니다. 내가 있는 지역도 소그룹과 지역의 구조만 있었습나다. 작년에 우리는 복음의 구조를 세웠습니다. 올해 우리는 가정의 구조를 보완할 것입니다. 이렇게 고령화된 집회소, 성도들을 돌보고자 하는 봉사자가 많지 않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올해부터 화요일 저녁 기도집회를 8:30분까지 기도하고 9시까지 약한 지체들 집에 가서 성경을 읽습니다. 지금 복가소지의 완전한 구조가 세워졌습니다.
오늘 이시간 여러분과 교통하고자 하는 것은 소그룹입니다. 아주 중요한 것이 소그룹입니다. 이 형제님께서 활력그룹은 하나님의 큰 능력의 구원의 충격력을 해방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구원은 큰 능력이 있습니다. 이 구원이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이 구원이 우리 안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이구원은 돌파력이 있습니다. 이구원의 능력이 소그룹에서 나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질문합니다. 이형제님께서 84-89년 소그룹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92부터 활력그룹 말씀하셨습니다. 소그룹과 활력그룹은 어떻게 다릅니까? 소그룹은 10-12명 모이고 활력그룹은 2-3명 모이는 것이다.
제가 말씀드리는데 이것은 틀렸습니다. 활력그룹이 바로 소그룹입니다. 근데 우리 소그룹은 제 모양이 아니죠? 여러분은 대 집회를 소집회로 바꾸고 내용이 변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소그룹으로 바꾼것은 활력적인 것을 위합니다. 대 집회때 찬송 부르고 소그룹에서 찬송 부르고 대집회에서 말씀 교통하고 소그룹에서도 교통하고 마칩니다. 소그룹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이형님의 소그룹은 사실상 활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일 때 활력화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활력그룹을 말한 것입니다. 각지교회는 교회건축의 기본 계층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그룹입니다. 주의 종은 두 가지 근거하여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이집 저집에서 모였습니다. 집에서 떡을 떼고 먹고 서로교통하고, 그러므로 바울은 히브리서 10장에서 말했습니다. ‘서로 돌아보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돌아보고 여러분의 모임을 멈추면 안됩니다.’ 이것이 주의 종의 부담입니다. 이집 저집의 집회하는 소그룹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주님께서 구원받는 숫자를 날마다 더해 주십니다. 그들에게 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더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사람을 주시지만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사람을 함께 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가정형태의 소그룹 집회안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에게서 초신자에게 전달되고 초신자들은 구원이 임함으로 우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종의 중점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삼년 반 동안 열두 제자를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이 주의 종이 우리에게 제시한 소그룹의 가장 좋은 인수는 12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84년도 대만에 오셔서 12명을 한 그룹으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92년도 아나하임에서 활력그룹을 인도하실 때 형제님께서 실험실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그룹은 어떻게 하면 원래의 형태가 아닌 참된 활력 그룹으로 만들것인가? 10-12명 한조 한조 훈련시켰습니다. 이렇게 1년을 하고 난후에 활력그룹은 이렇게 조직적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후반부에 교통해야 할 내용입니다. 주의 종의 느낌은 10-12명 주님께서 행하신 것이 하나의 본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를 볼 때 지역 안에 몇 개의 소그룹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한 지역의 20명이라면 아마 하나의 소그룹만 있을 것입니다. 제말과 다르다면 손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지역이 소그룹이 하나가 아닌 분은 손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몇분이 계시네요. 대부분 한 지역 안에 한소그룹만 남아 있습니다. 30-40명의 지역이 아닌 20명의 지역을 말합니다. 대부분 한소그룹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소그룹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주일날 모이지 않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주 집회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소그룹에 오는 것이 아니죠. 이것이 바로 큰 집회가 소 집회가 된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형제님의 의도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소그룹을 없애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교통하니 여러분들이 우리는 대 집회를 소집회로 바꾸었구나. 새로운 사람도 없으니 이번 주부터 소그룹을 해산하자 정말 해산하면 정말 0 이 되버립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은 과거에 대북에 있는 집회소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활력그룹은 조직으로 할 수 없다 그래서 소그룹을 해산하고 책임형제들이 유기적으로 사람을 찾으십시오. 몇 달이 지난 후에 소그룹도 사라지고 활력그룹도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극단을 취하면 안 됩니다. 지금의 소그룹에서 활력그룹으로 만들어 야 합니다. 주의 종은 우리의 소그룹과 활력그룹이 세가지 요소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호교통, 상호기도, 상호 목양 이것이 첫 번째 요소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주의 종이 말하길 소그룹은 사람들이 다 모였을 때 소그룹을 시작하자고 해서는 안된 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소그룹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다 오기 전에는 땅에 속한 일들을 이야기 하죠? .... 다 모였군요 자 이제 집회 시작하죠. 이제 찬송합시다. 찬송 뭐할까요? 이리 저리 돌아보다 찬송을 선택합니다. 첫 번째 단계가 없습니다. 바꿔야 합니다. 형제님은 30분 동안 친밀한 철저한 교통을 하라고 했습니다. 땅에 속한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교통하는 것입니다. 중보기도 할 때는 철저한 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진정한 목양을 가질 수 있습니다. 훈련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진리에 대한 상호 질문과 대답입니다.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안되면 성경을 읽는 것도 방법입니다. 읽고 난 후 질문과 답변을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간식을 먹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소그룹의 세 번째 단계는 유기적인 나감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교통할 것은 우리 지역에서 누가 안 왔는지, 지난주에 누가 오지 않았는지, 복음친구를 어떻게 만나고 돌볼 것인지 심지어 복음친구를 접촉하는데 누가 동반자로 같이 갈수 있는지 안배가 아니라 유기적인 나감이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를 잘하면 활력 됩니다. 이 세 가지를 잘하면 충격력이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데 하나님의 정하신 길을 갈 때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합니다.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해를 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형제님의 92년도 활력그룹을 말씀하실 때 저는 지금처럼 바쁘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여권을 보니 24번출국했습니다. 그때는 여권이 깨끗했습니다 그때 당시는 제가 앞장서서 봉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렵습니다. 주일날 저녁은 복음전파시간은 최선을 다해 참석하고자 합니다. 형제님들이 한국에 오라고 할때 토요일은 돌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형제님께서 하루라도 올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 왔고 오늘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일 주일저녁 복음전파에 같이 가야 합니다.
,92년도 형제님이 아나하임에서 활력그룹 인도하실 때 팀을 편성했습니다. 약 70명이 참석했습니다. 12-10명 한 소그룹을 편성했습니다. 이형제님의 첫 번째 개요를 보면 활력그룹 개요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활력그룹은 원칙이 있다. 첫째 상호교통 중보기도 30분, 둘째 상호질문 답변 40-1시간, 셋째 집회오지 못한 사람 복음친구, 상호 교통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유기적으로 그들을 돌보기 위해 나가야 합니다. 그때 저는 대만에서 1-3주후 그 개요를 받았습니다. 그때 제가 한 지역에서 봉사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3년을 있었습니다. 소그룹집회가 3년동안 12명에서 8명 삼년 연속해서 그렇게 모였습니다. 이 형제님께서 활력그룹을 인도하실 때 우리도 여러분들 처럼 한 지역에 한소그룹밖에 없었습니다. 주일 30명인데 우리 소그룹은 10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추구 했습니다. 첫 번째 단계를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형제자매들과 교통했습니다. 두명이 모이면 세상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 교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한주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좋습니까? 그러면 형제님은 임형제님은 어떻습니까? “저는 한국에 다녀 왔습니다”. 한국의 상황을 교통합니다. 그러면 기도합니다. 주여 한국의 상황을 축복하소서 하나님의 정하신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렇게 중보기도 합니다. 점차적으로 두명 세명 네명 더해지겠죠. 친밀하고 철저한 교통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배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습관이 없습니다. 형제자매들에게 질문하지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교통하는 습관이 없습니다. 교통하지 않는 습관을 돌파하기 위해 매번 30분간이니까 두명씩 한사람씩 그에게 교통하는 시간을 줍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알게 합니다.
이 형제님 말씀하시길 미국의 자매들 같으면 시집오면 자매들의 성이 바뀝니다. 한국과 대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그 자매의 원래 성이 뭔지 모릅니다. 이형제님은 친밀하고 철저한 교통을 하라고 했습니다. 형제자매님들을 자녀가 몇 명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심지어 5년동안 같이 소그룹에 있었는데 어떤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 몇 살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교통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것은 냉담한 교통입니다. 우리는 아주 영적이죠. ‘우리에게는 좋은 친구가 있습니다’. 이런 찬송이 부르죠. 그것은 형편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한두명의 형제자매들을 안배해서 친밀하고 철저한 교통을 하게 했습니다. 어떻게 자랐는지, 어떻게 결혼했는지, 가정생활은 어떻는지, 처음에는 노련하지 못했습니다. 15분동안 들었는데 좋습니다. 다음 자매님 하십시오, 점차적으로 안것은 교통을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교통하는 과정중에 주님께 만져 졌을때 그때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우리 형제님볼때 25살 때 주님의 긍휼로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른 지체들이 또 기도를 하죠 기도가 마치면 또 그형제가 교통합니다. 그러다 또 기도 합니다. 교통하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교통하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화요일 기도집회죠 자주 모이고 자주 만납니다. 그래서 검토하죠 지난번에 주이 종이 말씀하길 기도하고 교통하고 목양하라고 했는데 지난주에 우리는 어떻게 했습니까? 왜 매번 제가 기도를 먼저하죠? 이것은 기계적이죠? 우리는 듣기를 좋아하죠? 영은 느슨하죠? 제가 말했습니다. 다음주 소그룹부터는 한주에 한명씩 돌아가며 기도합시다. 바꿔야 합니다.
다음 만날때에 “자매님 왜 자매님 차례인데 하지 않았습니까 ”? “죄송합니다. 다음에는 훈련하겠습니다”. 그때 우리는 성경을 읽지도 않았습니다. 진리에 대해 서로 질문하고 대답했죠, 제가 발견한 것은 당시 형제자매님들이 성경을 가져 오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았죠. 세상적인 이야기 하고, 소그룹이 그렇게 기쁘지 않은것도 아니고 안모이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런것은 소그룹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제가 계속 질문을 했습니다. 형제님들의 교통을 듣고 다들 직장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첫 번째 단계입니다. 제가 질문했습니다. 성경에는 직장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있습니까? 누가 대답합니다. 마태복음에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면 그것은 줍니다. 함께 성경구절을 읽습니다. 각주를 봅니다. 어떤 분은 우리가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함부로 구하면 안됩니다 몇장 몇절이죠 우리는 같이 봅니다.
그때 당시 우리소그룹하는 그 집 남편이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는 그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전에는 우리가 땅에 속한 이야기 하는것이 흥미있지 않았습니다. 찬송하지만 별로 흥미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친밀한 교통, 질문하고 대답하고 몇 번 지나니까 그가 우리와 함께 앉았습니다. 셋째 여러분의 주일 집회가 25명 모인다면 현재 성도들 숫자는 몇 명이 될까요? 주일 집회가 평균 25명이면 일년에 한번 참석한 사람은 몇 명일까요? 우리가 통계로는 두배 50명입니다. 더 활동적인 집회소는 세배입니다. 활동적이지 않은 곳은 1.5배입니다. 활력적인 교회는 사람들을 많이 데려 오기 때문에 세배가 됩니다. 소그룹이 되면 유기적으로 나가는 것은 쉽습니다. 지금 한지역에 한소그룹이 있죠 12명이죠 지역은 25명이죠 그러면 13명은 집회 오지 않았습니다. 소그룹은 13명이 오지 않고 주일은 25명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38명이 집회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에는 그렇게많은 인수라고 느끼지 않지만, 많은 사람이 집회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그룹에서 묻죠? 어떤 사람, 어떤 사람에 대해 교통합니다. 지금 몇분 이야기 했죠 그러면 우리 지금 동역해서 방문하면 어떨까요? 누가 갈까요? 이런 중점으로 우리의 습관을 바꾸어야 합니다. 간식먹고 바로 집에 가면 안됩니다. 간식먹기 전에 먼저 이러한 교통을 해야 합니다.이것은 작은 것 같지만 효과 가 있습니다. 제가 있는곳도 3년동안 12명이었습니다. 이렇게 실행한후 5주만에 18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소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각각 9명씩 모였습니다. 저와 전시간 자매가 있었는데 우리는 두소그룹에 다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소그룹이 10명이 되었습니다. 한달이 지나자 두 소그룹이 17명이 되었습니다. 반년이 지나지 않아서 소그룹 인수가 55명이 되었습니다. 원래 주일 집회는 35명이었습니다. 그런대 소그룹은 반년이 지나지 않아 55명이 되었습다.
이 형제님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우리는 친밀하고 철저한 교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철저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 목양, 상호질문 대답, 마지막 세 번째단계 오지 않은 사람들 환경과 어려움이 있는 분들 돌봐야 합니다. 교통해야 합니다. 복음친구까지 포함해서, 우리 소그룹은 복음친구가 오기를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친구가 오면 그 다음에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복음친구가 오지 않으면 천연적인 방식으로 집회했습니다. 복음친구가 오죠 그러면 우리는 아주 강하게 그 사람을 집중해서 공략합니다. 찬송을 강하게 부릅니다. "예수필요해 예수 필요해" 다들 불타서 그사람을 공격합니다. "예수믿으십시오 구원받습니다". 그렇께 해서 그사람은 간식먹고 떠나면서 결심합니다. “다음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여러분은 그렇게 안합니까? 우리가 훈련받고 난후에 소그룹에서 더 이상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복음친구를 얻었습니다. 매번 한사람 얻을때 그가 계속해서 왔습니다 한사람을 얻으면 남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5번 참석해서 침례받았습니다. 그는 어떤것을 느꼈습니다. 어떤 곳에서도 나의 상황을 말할 곳이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다니, 복음친구가 부러워 했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교통할 때, 질문하고 대답하는 할때, 성경내용이 우리의 생활과 관련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와 !! 성경은 원래 이런 것이군요” 라고 합니다. 또 오지 않는 사람을 관심합니다. 어려운분들 가서 돌봐 줍니다. 그가 이런 광경을 볼때 그는 무엇인가 보게 됩니다. 간식을 먹을때에 우리가 한가지 하는것은 그 옆에 앉아서 그에게 묻습니다. 공개적으로 아니라 사적으로 교통합니다. 그가 믿고자 한다면 즐거이 침례를 줍니다.
이형제님은 “강요하지 말라. 우리의 모임은 사람들이 올때 매혹시킬수 있는가? 그것이 더 중요하다,“ 반년이 지난후 주일 집회를 두 개로 나누었습니다. 저의 교통은 우리가 어떤 것을 할때, 이형제님의 인도는 내재적인 요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많은 동역자들이 소그룹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하게 말하지 않겠지만 상호교통하고 진리를 교통하고 돌보고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주의종의 부담을 실행할 부담이 있습니까? 주의 부담은 어떤 영역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들었다고 그대로 할수 있는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어야 합니다. 그때 활력그룹 메시지를 매주 한메세지 추구했습니다.
미국에서 팩스로 받았는데 말씀을 먹었습니다. 우리의 소그룹을 검토했습니다. 미국에서 아나하님에서 교통하셨는데 7개 소그룹이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형제님은 약간 실망하셨습니다. 92년도 8월달 인도하셨는데 첫 번째 시리즈는 92년 겨울훈련전에 에 마쳤습니다 두 번째는 93년 봄 현충일 집회때 형제님이 약간 실망감이 있어서 이러한 개요를 쓰셨습니다. 오랫동안 했는데 결과가 없습니다. 불가능한 것이 아닌데 형제님은 다른 방식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형제님은 실행해 내야 하기 때문에 또다른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활력그룹은 조직으로 형성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사람의 주의 회복의 번식에 절대적인 사람, 사대의 죽어있음, 라오디게아 미지근함 ,열매 없음을 이겨야 합니다. 한사람을 찾아서 기도명단을 갖고 기도하고 시간을 내어서 얻어서 소그룹을 만들어야 합니다. 비교적 큰 집회에서 신언을 하도록 인도해 주어야 한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그것은 소그룹입니다. 이제는 활력그룹을 합니다“. 너무 이상적으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주의 회복의 절대적인 사람이 여러분입니까? 번식을 위해 절대적입니까? 그렇게 절대적입니까? 사데교회의 죽어있음을 이겼습니까? 어떻게 갑자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활력그룹을 훈련해야 합니다. 솔직하게 ”우리가 활력그룹이다“ 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사실상 활력그룹은 이기는 자입니다. 말을 바꾼다면 ‘여러분 나는 이기는 자입니다’. 라고 선포할수 있습니까? 나는 이기는 자입니다. 라고 선포할수 없지만 이기는 자가 되길 갈망합니다. 활력그룹은 이기는 자입니다. 여러분은 활력그룹입니까? 어떤 분은 ”우리 교회는 20개의 활력그룹이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 있는곳은 20개의 어린이 활력그룹이 있습니다’. 저는 엉터리라고 말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아직 구원도 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할력그룹이 될수 있습니까? 대북에서 우리는 정식으로 ‘어린이 활력그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교통했습니다. 이 형제님의 활력그룹은 얼마나 높은지 모르는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활력그룹을 이야기 합니다. 활력그룹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몸의 원칙안에서 실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몸의 원칙안에 매주저녁 나갑니다. 함께 기도하며 활력그룹을 배우고 있습니다. 두사람이 활력그룹 동반자로 나가는 것을 훈련합니다. 우리는 1년동안 이렇게 실행합니다. 우리는 소그룹하지 말고 활력그룹 실행합시다. 활력그룹 실행해 봅시다 그러면 2-3 개월 하지 못합니다. 훈련한다면 하겠죠. 그러나 하나님 정하신 길의 구조안에 가지 않을때 오래 가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 혼자는 이기는 자가 되기 어렵지만 몸안에선 될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교통하죠 이해하시죠? 분투하고 활동적이고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고 돌파해 내야 합니다.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행해야 합니다.
어제 한국의 두가지 큰 문제 증가가 없는것, 20년전과 비교할 때 너무 미미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돌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만은 한해도 증가가 없었던 해가 없습니다. 우리의 큰 문제는 증가의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얻는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안에 젊은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이 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다. 대북의 바깥지역은 문제가 안되지만 시내는 심각합니다. 시내는 집값이 너무 비쌉니다. 결혼전에는 부모와 집을 같이 쓰지만 결혼하면 같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임대와 집값이 세배나 비쌉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도시 바깥으로 다 나갑니다. 45세 이하는 보이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을 얻어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있기 때문에 다른 젊은이들이 있는 집회소로 갑니다.
대북은 집회소가 서로 가깝기 때문에 다른 집회소에 걸어서 갈수 있습니다. 집회소는 20분 걸어 가면 되고 집회소 마다 지역이 있어서 걸어서 5분이면 다른 지역으로 갈수 있습니다. 대북시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250만명이 삽니다. 서울의 한 구에 불과 합니다. 거기에 47개 집회소 500개 지역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곳에 가기가 너무 쉽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우리 집회소를 보고 ‘나와 같은 사람이 없네요’ 하면서 다른곳을 가 버립니다. 정말필요는 있는데 어렵습니다.
올해 년초에 2012년도에 6집회소 목표는, 해마다 봉사집회에서 올해의 목표를 세웁니다. 첫째 매주 복음전파 유지, 둘째 가정집회 세우는것, 셋째 전력을 다해 청년을 얻자.입니다. 청년을 얻자할 때 누구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희망하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제가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들 알았죠 왜냐하면 나이가 많아서 청년들을 돌볼수 없습니다. 저보고 하라면 저에게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절대로 해 낼수가 없습니다. 만약 이런 집회소에서 청년이 없는데 책임을 맡기면 생각하길 ‘임형제님은 사람을 점검하죠 이번주 어떻게 합니까? 다음주는 어떻습니까?’ 이렇게 계속 점검할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교통했습니다.
누가 하는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전체가 합시다. 청년직장인 집회를 따로 하는것이 아닌 지역에서 청년을 돌봅시다. 지역에서 청년 소그룹을 만드는 것입니다. 청년 지역을 하면 청년봉사자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도 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청년소그룹은 그 지역이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청년 지역을 할때 우리 소그룹에 청년들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다들 청년들을 관심하지 않습니다. 청년들을 얻지만 청년지역에 보내야 하기 때문에 관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청년소그룹을 지역에서 해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그 지역에 남습니다. 말했습니다.
”올해 6집회소는 모두 머리를 벽에 부딛혀서라도 해내야 합니다. 어떤 지역이든지 돌파를 해내야 한다. 지역에 청년들이 오지 않을때 우리는 돌파해 내야 한다“. 몇 명의 형제, 자매들이 반응했는지 아십니까? 작년에 40%의 지체들이 산에 올라갔습니다. 이번에는 70%의 지체들이 올라가기를 원했습니다. 6집회소에는 생사의 문제입니다. ”6집회소는 철벽이 있습니다. 우리가 돌파해야 합니다. 뚫어내야 합니다. 올해 뚫어내지 않으면 한 살이 더 먹습니다. 내년 저내년 10년동안 뚫어내지 않으면 가장 젊은 형제가 55세가 됩니다. 또 10년을 하지 않으면 65세가 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우리집회소의 청년의 부족현상은 한국의 어떤 집회소보다 심각합니다. 이것을 뚫어내지 않으면 어떻게 길이 있겠습니까.
오늘 한사람이 해 낼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벽을 뚫어내야 합니다. 정말 벽을 뚫어낼때 사실상 이벽은 종이 벽입니다. 우리 머리로 벽에 부딪힙시다. 봉사교통을 통해 두가지를 교통햇습니다. 각지역이 다 청년소그룹을 뚫어내는 것입니다. 청년들이 없는것이 아니라 집회를 오지 않습니다. 복음친구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히브리서 10장25절에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집회를 포기하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청년들이 자기들이 집회라고 느끼는 집회는 어떤 집회일까요? 그가 소그룹에 왔을때 25세의 청년이 왔을때, 그가 보면 ‘이곳은 나의 집회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동의 하십니까? 청년지역은 길이 없습니다. 청년지역은 그 책임자가 하는 것입니다. 청년소그룹은 지역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없으면 기도집회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없으면 한 사람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각 지역이 일주일후 청년 소그룹을 세웠습니다. 어떤 형제 자매님들이말했습니다. 청년 형제자매들이 없습니다. 사기가 강했을때 우리가 있는 지역에 두명의 청년을 데리고 산에갔습니다. 이 두명은 일년에 7번도 집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산에 올라갈 때 어떻게든 청년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이 청년들이 자기들의 소그룹을 한다고 하니 아주 기뻐했습니다. 교회가 청년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연장하신 분들은 음식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연장한 분들은 참석하면 안된다 한명은 되지만 가능한 가지 말아라“ 모든 지역이 다 청년 소그룹을 세웠습니다. 첫주에 28명 두 번째 36명 세 번째 주 41명 네주째 42명 오주차 48명 이후 40명이하고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제가 있는 지역은 청년들이 없습니다. 산에 끌려간 두명밖에 없습니다.
이 형제는 그의 친구를 초대 했습니다. 자매는 두 여동생을 초대했고 여동생은 남자 친구를 초대했습니다. 우리 청년소그룹은 복음소그룹입니다. 어떻게 집회하는지 말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라고 하면 어렵습니다. 청년소그룹은 청년들이 해내야 합니다. 2월 하반기부터 이렇게 할때 사기가 높아 졌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을 데리고 산에 갔습니다. 38명이 야외로 나갔습니다. 지금 집회소는 청년이 많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준 목표는 년말에100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시내는 집값이 비쌉니다. 외각은 쌉니다.그러나 외각은 교통비가 들어갑니다. 돈을 아낄수 있지만 그렇게 많이 아끼지 못합니다. 청년들은 갓 직장생활 하기 때문에 돈을 아낄려고 하죠. 그래서 형제자매님들께 교통했습니다. 헌금을 해야 한다 이번주에 페이스북에 광고를 낼것입니다. “35세 이하 2년 전시간 훈련을 통과 하신분중에 대북시6집회소에서 함께 동역하고 봉사하길 원하는 분, 직장생활하시는 분은 집세의 1/3을 지원합니다”. 한국돈으로 24만원 한도입니다. 우리가 물질을 드려야 합니다. 사실상 형제, 자매집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 자매집을 하면 어럽습니다. 자기들이 임대를 하는게 낫습니다. 걱정하실 필요없습니다. 이곳에 이사오면 출퇴근 시간을 아낄수 있습니다. 매일 한시간을 얻을 수 잇습니다. 우리가 집세를 지원하면 그가 오면 또 헌금하지 않겠습니까 ?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사를 올것입니다.
동일한 일이죠? 왜 20년간 이 일을 해내지 못했을 까요? 이 형제님은 적극적이고 진취적이고 돌파하고 현상 유지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든 우리는 돌파해야 합니다. 소그룹 너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지역이 한소그룹으로 있으면 안됩니다. 작년 2월달 전에 6집회소에서 4년간 봉사했었습니다. 소그룹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아주 불만이었습니다. 소그룹 16-17명인데 나누길 싫어합니다. 작년 년초에 지역형제, 자매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 우리 소그룹을 나누지 않으면 제가 다른 소그룹으로 가겠습니다. 그들은 “그러면 안됩니다. 반드시 우리에게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누었습니다. 년말에 세 번째 소그룹이 나갔습니다. 2월에 청년소그룹이 생겼고 지난주에 또 하나가 생겼습니다. 우리 지역은 5개의 소그룹이 있습니다.
오늘 제가 이런 말을 하는것은,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교회를 봉사할때 쉽지 않습니다. 이해한다고 해서 해낼수 없습니다. 저의방법을 배웠다고 할수 있다고 하지 마십시오. 방법은 참고할 수 있지만 봉사라는것은 유일한 한 방법이 있는것이 아닙니다. 복가소지 구조이지만 방법은 유일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복가소지외에 다른일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상한 일을 하고 있습니까? 교회의 재물을 낭비하고 있습니까?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의 종의 인도를 따라서 복가소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지역에 한소그룹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