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신언함으로 몸을 건축함 - 임홍 형제님 교통
지역 - 건축
요셉의창고 2012-05-21 , 조회 (1979) , 추천 (0)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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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3번(임홍형제님 교통)

 

주님께 감사합니다. 지난 두시간 동안 생양교건에 있어서 복가소지 세가지 구조에 관해 교통했습니다. 복음전파, 가정집회를 세워서 사람을 돌보는 것도 교통했습니다. 소그룹은 활력이 있어야 합니다. 소그룹은 하나님의 능력의 구원의 돌파구가 되어야 합니다. 소그룹은 하나의 생활입니다. 이것은 소그룹지체들이 복음을 전파해야 하고, 가정목양이 있고 소그룹의 온전케 함이 있습니다. 아침부흥, 사람들을 양육하는 것, 섞임을 갖는 것, 주말에 야외로 갈수 있습니다. 소그룹은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소그룹 집회만이 아니고, 이렇게 할때 섞일수가 있습니다. 잘 알게 되고 서로 자신을 열고 질문하거나 대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주일 주님말씀을 읽는데 질문할 내용이 없다면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정말 질문할것이 없습니까? 질문이 없다면 정말 그렇게 성경을 잘 아십니까? 한번 보면 다 깨달아 집니까? 그말은 성경을 읽지 않거나 대충보거나입니다. 진지하다면 추구해서 많은 질문이 있게 됩니다. 실행문제에서나 환경의 문제에서 질문이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 섞일 수 있습니다. 친밀한 교통과 질문 기도 ,상호 부축하고 서로 배우고 기능을 발휘하는 것도 서로 도울수 있습니다. 이형제님은 소그룹 안에서 형제, 자매님들에게 신언노트를 적도록 도와 주라고 했습니다. 아침부흥, 주말엔 신언노트를 적도록 도와주고 이 모든 것이 소그룹 생활입니다. 소그룹은 교회생활의 80%가 되어 야 합니다. 집회가 80%가 되라고하는 것이 아닌 생활입니다.

 

이번에는 지역에 대해 말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지역집회는 하나님의 종이 말한 그런 수준에 있습니까? 많은 형제, 자매들이 시간을 분별해 집회를 하지만, 우리의 집회에서 공급이 없다면, 이해를 못한다면, 맛이 없다면 건축은 어렵습니다. 귀만 가져오면 안되지만 교회안에는 연약한 지체들도 있습니다. 약하고 갓 구원받은 사람, 아침부흥 하지 못한 사람 어떤 사람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운데 1/3은 봉사하기 원합니다. 그런 사람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할 때 신언인지 아닌지 , 사람들로 하여금 입맛을 느끼게 하는지 아주 중요합니다. 이 형제님은 주일 집회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물론 복음전파, 목양과 온전케함 다 중요하게 여기셨지만 비중을 따지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주일 집회입니다.

 

초기 새길을 가지 않을 때에도 우리가운데 주일 집회를 하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 니 형제님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니 형제님은 모든 사람이 신언하는 집회를 세우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해내지 못했습니다. 리 형제님도 이것을 해 낼려고 하셨습니다. 87년도에 이것을 해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어쨋던 주일집회는 사람들이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다고 없앨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습관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말씀을 듣기 원합니다. 만약 우리가 사람들에게 공급과 만족을 주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은 건축되기 어렵습니다 87년도 이 형제님은 대북에서 정식으로 새길을 인도하셨습니다.

 

형제님은 새길의 새로움은 방법이 아니라 본질의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타고난 존재입니다. 우리가 자아를 부인할 때 하나님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으로 충만되고, 하나님에 의해 살 때 이것이 새길이고 하나님의 정하신 길입니다. 거룩한 성은 새 예루살렘이라 불립니다. 왜냐하면 그 성이 하나님으로 조성된것이기 때문입니디; 그 길이 정금입니다. 도금이 아닙니다. 본성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새 예루살렘입니다. 새예루살렘은 하나님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새 예루살렘입니다. 주의 종이 새길을 인도할 때 복음전파 양육, 온전케함 어떤 것도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타고난 방식을 한다면 오래 갈수 없습니다. 우리는 분투하고 진취적이어 합니다. 87년 년말에 때가 되어서 대북교회는 지역실행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11월 8일 그날 하루에 대북교회를 100개의 지역으로 나누었습니다. 지금은 500개입니다. 매년 증가되어 갑니다. 11월 8일 처음으로 지역집회를 했습니다. 3일후 형제님은 미국으로 가셔서 동역자 집회를 소집했습니다. 추수감사집회, 겨울집회 중국어 집회를 인도하셔야 하고, 여름 훈련개요 준비등으로 4개월을 가셔야 했습니다. 우리가 갓 시작했는데 형제님께서 가셔야 했기 때문에 이것을 할수 있을지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교통하지만 형제님은 우리에게 부담을 주셨습니다.

 

50년도 이전에 주의 회복은 중국에서 니 형제님께 위임되었습니다. 니 형제님 본것을 실행했습니다.. 그래서 연대 상해 교회 부흥이 있었습니다. 50년 니 형제님께 감옥에 가시고 리 형제님은 대만으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40년이 지낸 후 지금 형제님은 형제님이 니 형제님의 부담을 실행한 만큼 아무도 그렇게 실행에 부담을 가진 동역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40되지 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 형제님 안심하십시오 우리는 해 낼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다음 88년 3월 대만에 오셨습니다. 주말을 사역집회를 준비했습니다. 주일 집회전 기도할 때 형제님께서 1집회소의 한 지역집회를 참석 했는데 형제자매들이 시간에 맞춰왔고, 영도 좋았고 성도들이 대부분 말했고, 말하는 목소리도 좋았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뻤습니다. 우리 지역은 아니지만 대북을 대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흡족해 할 때, 형제님은 “그러나 그것은 신언이 아니었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할때 우리는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때 이 형제님은 정말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형제님의 관찰한 것을 교회의 부족한 부분, 교회의 필요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집회에서 하나님을 말함’ 교회 건축을 위한 신언‘ 책에 있는 한 메시지를 교통하셨습니다. 5월말 미국으로 가셔서 현충일 집회를 하시고 노동절 집회 하시고 겨울 훈련집회 개요를 마치고 9월말 오셨습니다. 주일 저녁 집회전 기도 모임에서 기도 마쳤을때 어렵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오늘 아침 대북 1지역 집회에 참석했는데 아주 불편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누가 봉사합니까? 어투가 불편한 느낌입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집회를 보십시오 형제자매들이 시간에 다 맞춰왔는데 영도 좋고 목소리도 크고 좋았는데 그것은 신언이 아닙니다. 그 지역책임자는 집회전에 5분 10분전에 시간을 이용해서 신언을 가르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신언은 간증이 아닙니다.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니고 느낌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신언은 주님을 위해 말하고 주님을 말해내고 주님을 사람안으로 말해내는 것입니다. 제도 교통가운데 같이 있었는데 이 형제님이 저의 지역에 올까봐 겁이 났습니다. 형제님은 그 지역책임형제를 책망하셨는데 그형제가 누군지 모르지만 저를 알고 있습니다. 이 형제님께서 또 일련의 말씀을 해방하셨습니다. 11월에 미국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긴장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북에서 연말에 지역 실행할 때 대북에서 가장 증가가 빨랐던 집회소가 제가 있던 곳입니다 지역 실행할 때 100명이었습니다. 년말에 250명이 되었습니다. 한지역이 9개 지역으로 증가 되었습니다. 87년말 추수감사절 파사로 디나에서 그때 그 집회에서 저를 간증하라고 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1지역에서 멀리떨어져 있었고, 사이에 몇 개 집회소가 있었고, 형제님이 오시기에는 조금 불편한 집회소입니다. 안전거리에 있었습니다. 그때 생각하였습니다. 이형제님께서 대만에 오시면 우리가 있는 집회소에 오실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준비하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제대로 준비해야 합니다. 주의 종의 메시지를 하나하나 추구했습니다. 화요일 봉사집회에는 자매들도 다 올수 있습니다. 추구하고 어제 신언집회와 이 형제님의 멧세지와 어떻게 다른지 교통했습니다. 주의점을 검토하고 교통했숩니다. 화요일은 지역의 봉사집회이기 때문에 신언에 오는 분들입니다. 우리가 검토해서 이 형제님의 인도와 비슷하다면 저는 형제님의 신언을 누렸습니다라고 격려하고, 부족하면 제가 교정해 줍니다. 주일날 또 신언하고 교정하고 이렇게 반년이 지났습니다.

 

98년 3월 이형제님께서 대만에 오셨습니다. 첫주에 “임홍형제가 있는 집회소에 가보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정말 놀랐습니다. 저는 40여세 젊은이였습니다. 형제님은 80세 였습니다. 기도할 때 멀리서 보았지만, 우리는 몇 명되지 않는 지역집회입니다. 이형제님과 자매님이 집회 중심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 집회에서 평소보다 못했습니다. 긴장되고 말할 때 떨면서 신언했습니다. 오유성 형제님이 이형제님을 모시고 가시면서 이 형제님께 물었습니다. 이 집회 어떻습니까? 이 형제님께서 이것이 바로 고린도 전서 14장의 신언집회입니다. 이 형제님은 큰격려를 받았습니다. 형제님께서 동남아와 미국에서 대북에서는 신언집회를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우리는 처음했기 때문에 그렇게 잘하지 못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신언이 아닌 그런 집회와 비교해서 이 형제님이 격려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오랜기간동안 배운것은 어떤 형제들이 좋은 교통을 했는데 저는 그것이 신언인지 아닌지 압니다. 형제자매님들 여러분은 분별할 수 있습니까? 내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길을, 새길을 가는 것은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의 문제입니다.

 

소그룹도 본질의 문제입니다. 상호 교통, 상호기도 상호 질문 답하는 본질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것도 필요한데 상호성이 있어야 합니다. 오지 않는 사람들을 관심해야 합니다. 가정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병이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있는데 1년후에 안다면 그것은 수치스런 일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는 형제가 3개월 집회를 오지 않는데 왜 오지 않는가 라고하면 안됩니다. 그가 오지 않았다면 바로 그집에 가야 합니다. 2주 오지 않았는데 관심하지 않습니다. 5주후에 그는 이 지역에 오지 않고 다른곳에 갈려고 할것입니다. 여기 교회생활은 너무 냉담합니다. 관심이없습니다. 이런 교회생활이 어떻게 번식할 수 잇습니다. 형제님은 집회를 하는것. 편성하는 것이 아닌 본질을 말씀하셨습니다.

 

주일집회도 신언도 본질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누가 신언하는데 “이번주에 내가 싸웠는데....” 이것은 간증입니다.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어떤 말을 하는가에 상관없이 이것은 신언이 아니라 간증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길을 가는데 강아지를 만났습니다. ....” 그 뒤를 들어보지 않아도 이것은 신언이 아니라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님들은 진리를 잘 모를때는 이런 이야기 좋아합니다. 주일 오전에 느낌, 이야기,간증을 말하지 말고 신언을 해야 합니다. 신언은 주님을 말해내는 것입니다. 이 형제님은 신언의 구조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어떤 성경구절을 말할것인지 어떤 개요을 말할것인지 예를 들어 “형제들이 들이 연합해 ...” 첫 번째 구조를 붇잡은 것입니다. 어떻게 시작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지만 시작은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신언이 준비되지 않은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진리의 요점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진리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 최소한 2분을 교통합니다. 셋째 이러한 진리를 어떻게 적용하는 가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잘모릅니다. 제가 있는 집회소도 30명정도 훈련생이 토요일 신언을 훈련합니다. 대부분 훈련안에 있는 간증을 합니다. 잠을 자는데 옆의 지체는 코를곱니다..... 등등 이런것을 제가 교정해 줍니다. 진리의 요점은 말하지 않고 이야기를 길게 합니다. 이것은 신언이 아닙니다.

 

형제님은 세가지 구조를 말했습니다. 첫째 말씀제시 어렵지 않습니다. 둘째 진리 제시 어렵지 않습니다. 셋째 적용이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는지 잘 모릅니다. 적용에 간증을 말할수 없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어떻게 말하는 가가 중요합니다. ”형제들이 연합에 동거함이 어떻게 아름다운고... 우리는 타고난 존재가 있습니다. 타고난 존재가 있을 때 문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번주에 저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감사합니다. 내 안에 비결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주예수님을 부를때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야기 한것입니까? 제가 간증했습니까? 제가 이야기할 때 간증이 아닙니다. 많은 형제들이 진리를 말하지 않고 간증을 합니다. 좋은 간증이니 오래 이야기 합니다. 이번주에 수요일에 같은 숙소에 있는 형제가 저에게 아주 솔직히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오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형제를 피했습니다. 일부러 피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 주님이 빛 비춤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형제를 찾아가서 형제님 용서하십시오 저는 형제님이 저를 미워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형제를 피했습니다. 형제들이 하나안에 거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집회에서 이런 말을 할때 진리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만 이리같다 저리 갔다 하는 것만 들었죠.

 

이 형제님은 우리의 체험만 말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제 자매가 나에게 화를 냈습니다.....‘ 이런 것은 자매가 악하다는 말입니까 ? 그러면 집에와서 자매가 화를 냅니다. 왜 신언했는데 자매가 화를 냅니까? 신언이 사람개인의 어떠함, 체험, 간증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해서는 안됩니다. 이 형제님의 모든 말씀에는 다 적용이 있습니다. 이형제님의 말씀은 대부분 적용입니다. 체험은 아주 적습니다. 필요하면 조금 말할수 있습니다. 신언은 세가지 구조가 있습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형제, 자매님들 훈련하시길 바랍니다. 주의해야 할것들 다 교통했습니다. 이런 것들만 해도 훈련할 것이 많습니다.

 

토요일 신언노트를 준비하셔야 합니다. 첫째,성경구절은 무엇인지 둘째,진리의요점은 무엇인지? 진리의 요점은 오늘의 양식의 내용과 다른것이 아닙니다. 쓰고 난뒤에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주일날 신언노토를 줄줄 읽습니다. 신언은 노트를 읽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집회는 사람을 죽입니다. 차라리 오늘의 양식을 읽는게 낫습니다. 읽는 것은 느낌이 없습니다. 말하는 것은 전달력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신언 구조가 있어야 하고 둘째는 주말에는 신언노트를 적습니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형제, 자매들을 훈련했습니다. 노트를 제출받아 수정해 주었습니다. 주일날은 신언할때는 신언노트를 읽지 말고 영을 해방해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길게 할수 없다면 짧게 하면 됩니다. 주일 집회가 풍성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됩니다. 제가있는 6집회소에 35명이 모였습니다. 신언은 저는 3분만 말합니다. 모두에게 신언하게 합니다. 매주 35명이 신언합니다. 주일집회 인수는 60명이 되었습니다. 같이 떡을떼고 신언은 둘로 나눕니다. 같은 집회소이지만, 나누어서 17-18명씩 신언집회 합니다. 새길을 갈 때 모든 단계가 쉽지 않습니다. 모든 단계를 세워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형제자매들이 실행하고 진보가 있을 때, 자기 자신이 성취감을 느낍니다. 이렇게 교회생활 할때 진보가 있다고 느낍니다. 그렇지 않다면 5년 10년 지나도 진보가 없으며, 교회도 진보가 없습니다. 교회가 정체되죠. 우리는 필사적으로 분투해야 합니다. 이 형제님 87.11.11일날 형제님 보신 이상을 우리가 실행하라고 우리를 격려하셨습니다.

 

주일집회를 위해 우리는 예비집회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25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있는 집회소는 주일 아침에 예비집회가 있습니다. 우리 예비 집회는, 주일집회를 9시에 하고 7:30분에 모입니다. 6집회소에 왔을때 지역은 35명이었습니다. 그 예비집회때 6-7명 모입니다. 지금은 20명 이상 모입니다. 우리 예비집회에서 전체 개요을 다시 읽고 교통합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누가 조감하고 마무리 할것인지 교통합니다. 말씀은 어떤 것을 읽을 것인지 신언을 어떤 것을 할것인지 어떤 사람은 월, 화,수요일, 어떤 사람은 토요일 매일 다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수요일 몇 명, 목요일 몇 명 이렇게 나누어서 교통합니다. 오늘 누구에 전화를 걸어야 할 것인지 매주 이렇게 실행합니다. 7:30부터 8:50분까지 하고 난후 집회 장소 앉아 있습니다.

 

제가 6집회소에 갔을때 집회가 너무 늦게 시작했습니다. 20분이나 늦게 합니다. 그래서 떡때는 집회를 70분 동안 했습니다. 이 형제님은 40분동안 하라고 많아야 45분을 넘지 말고 그후 성경을 읽고 말씀먹기하고 그후 한시간 신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87년도 인도하신 말씀입니다. 집회소 왔을때 떡떼는 집회를 70분 합니다. 11시에 마쳐야 하는데 11:30분에 마칩니다. 형제자매님들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집회를 일찍와야 합니다. 한시간 후에 떡을떼야 하는데 9:55분에 옵니다. 많은 형제 자매님들은 집회를 오래 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늦게 오는데 벌써 신언을 합니다. 벌써 왜신언을 하고 있는가 하고 다음에는 조금 일찍옵니다. 9:45분에 왔는데 말씀을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조금 일찍옵니다. 한자매님은 정말 시간은 정말 잘 계산하는데 9: 20분이면 떡을뗀다고 계산하고 왔는데 아버지를 경배하는 시간입니다. 그 자매님의 표정이 변했습니다. 그 자매는 지금 9시전에 옵니다. 우리는 일찍합니다. 우리는 8:50분에 시작합니다. 그때 2/3형제자매님들이 다 옵니다. 떡는 집회를 9:30분에 마칩니다. 40분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이미 10분전에 시작했기 때문에 40분이 됩니다.

 

우리의 떡떼는 집회는 강화되어야 합니다. 신언집회가 강화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왔을때 공급이 있다고 느껴야 합니다. 만짐이 있다고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몸이 건축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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