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 양식 1주1일
오늘의 양식
주님의 노예 2012-06-03 , 조회 (20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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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7:14-15 보라 처녀가 …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까지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마 11:29-30 나의 멍에를 메고 나에게서 배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혼이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나의 짐은 가볍기 때문입니다.

아침의 누림

사복음서를 읽어 보면 우리는 주님의 생활이 얼마나 놀랍고 완전한지를 알 수 있다. … 주님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완전하신 사람의 아들이실 수 있었는가? 이사야서 7장 15절은 주님께서 그러한 생활을 하실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해 주고 있다. 주님은 어떻게 하여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실 줄 아셨는가? 주님은 어떻게 하여 사람의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선택하실 줄 아셨는가? … 우리는 이사야서 7장 14절이 주님을 가리켜 말한 것임을 알 뿐 아니라 15절도 주님을 가리켜 말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15절은 주님께서 일생 동안 버터(엉긴 우유)와 꿀을 드셨다고 말한다. 주님은 일생 동안 버터와 꿀을 드셨기 때문에 능히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실 수 있었다. 이것으로 인하여 그분은 하나님께 순종하실 수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시며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실 수 있었다.

버터와 꿀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맛있는 모든 음식 중에 가장 기름진 것이 버터이다. 또한 이 세상에서 꿀보다 더 달콤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버터는 가장 기름진 음식이며 꿀은 가장 달콤한 음식이다. 주 예수님은 일생 동안 가장 기름진 음식과 가장 달콤한 음식을 드셨기 때문에 능히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장 기름진 것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성경은 또한 가장 달콤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항상 그리스도 앞에 풍성한 은혜를 두셨고 그리스도께 달콤한 사랑을 주어 맛보게 하셨다. 이것으로 인하여 그분은 하나님께 순종하실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실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분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아셨다. (워치만 니 전집, 제1집, 제17권, 150-151쪽)

오늘의 읽을 말씀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약 사역을 수행하실 때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으시고(요 5:19), 그분 자신의 일을 하지 않으시며(요 4:34, 17:4), 그분 자신의 말을 하지 않으시고(요 14:10, 24), 그분 자신의 뜻대로 어떤 일도 하지 않으시며(요 5:30), 그분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다(요 7:18)고 말씀하셨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몇 가지 항목들을 기준으로 하여 오늘날 기독교의 모든 일들을 평가한다면, 기독교의 거의 모든 일들이 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함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일을 할 때 스스로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자기 자신의 일이나 자기 자신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또한 자기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만약 우리가 이러한 다섯 가지 항목에 긍정적으로 대답할 수 있다면, 나는 우리도 또한 하나님의 신약 사역 안에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빗나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약 사역에서 주 예수님의 부분이며, 바로 이것이 교회를 산출하고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몸을 건축한다. 이러한 다섯 항목 중 결여된 것이 있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든 분열적이고 분열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일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일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말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 종결된 사람에게 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생활은 하나님의 신약 사역의 한 부분일 뿐 아니라, 그러한 생활을 사신 그 인격은 또한 우리의 본이다. 주님께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우리의 이상을 투명하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 (장로 훈련(Ⅰ), 신약의 사역, 67-68쪽)

주님의 멍에를 메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은 율법이나 종교의 어떤 의무에 규제받거나 통제받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뜻에 제한받는 것이다. 주님은 그렇게 사시면서 다만 아버지의 뜻만 주의하셨다(요 4:34, 5:30, 6:38). 그분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전적으로 복종시키셨다(마 26:39, 42). 그러므로 그분은 그분 자신에게서 배우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마 11:29, 각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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