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 양식 1주 2일
오늘의 양식
주님의 노예 2012-06-03 , 조회 (15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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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3:17 형제님들, 여러분은 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우리를 본으로 삼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이들을 눈여겨보십시오.

살후 3:9 그것은 우리에게 권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여러분의 본이 되어, 여러분이 우리를 본받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의 누림

어떤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믿는 이들이 자신에 대한 간증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들 교사들에 의하면 우리의 체험을 간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회개하여 주님을 믿었으며 은혜를 받고 구원받았는지를 말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이들 교사들은 우리가 단지 주 예수님을 전파하고 성경을 가르쳐야 할 뿐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 2장에서 바울은 분명히 자신에 대해 말한다. 그는 데살로니가 성도들 가운데서 그의 생활에 대해 강하게 간증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 가운데 사도들이 온 것과 사도들의 생활 방식을 그들에게 기억나게 했다. 왜 바울은 이것을 강조했는가? 바울은 어린 성도들에게 합당한 생활의 본을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강조한 것이다. 나는 모든 장로들과 인도하는 이들이 바울의 예로부터 우리가 성도들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기 바란다. 각 지방 교회 안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들이 따를 수 있도록 모범이 되는 몇몇 본들이 있어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라이프 스타디, 13장, 125-126쪽)

오늘의 읽을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1장 6절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여러분은 …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본받음은 성장과 관계된다. 사실 여러 가지 면에서 본받는 것은 성장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나 형들이나 누나를 본받는다. 어린 사람들은 어떤 것도 발명해내지 않는다. 대신에 다른 이들을 본받는다. 이것에 대한 아주 좋은 예로 언어의 구사가 있다. 자녀들은 부모들이 말한 언어를 배운다. 그들은 부모와 동일한 억양으로 동일한 언어를 말한다. 자녀들은 모방함으로 언어와 억양을 배운다. 이것은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를 본받음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설명해준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본받는 것은 실지로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녀들은 많은 것들, 즉 몸짓과 대화와 심지어 성품에 있어서도 그들의 부모를 모방한다. 부모는 그들의 자녀들을 위한 본이자 모형이다. 부모가 어떠하면 자녀들도 부모와 똑같을 것이다.

새로운 믿는 이들이나 어린 믿는 이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것은 그들을 돌보는 합당한 방법이 아니다. 그들을 양육하는 합당한 방법은 그들에게 본을 보이는 것이다. 본을 보임으로 우리는 그들에게 물을 주고, 공급하고, 자양분을 주며, 그들을 소중히 기른다. 이것이 양육이다. 만일 우리의 체험이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새 신자들에게 성경에 있는 여러 인물들을 보여 주라. 예를 들어, 구약에서는 에녹, 노아, 아브라함, 다윗 등이 있으며, 신약에서는 베드로, 요한, 바울, 디모데 등이 있다. 우리는 어린 믿는 이들의 성장을 돕는 방식으로 성경 인물들의 생애를 제시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새로운 이들이나 어린 믿는 이들에게 너무 많은 가르침을 주면 그들을 손상시킬 것이다. 모든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성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가 합당하게 먹이는 것임을 안다. 자녀를 돌보는 것은 구십 퍼센트가 먹이는 문제이며, 십 퍼센트가 가르치는 문제이다. 이것은 또한 교회 안에서 새로운 믿는 이들을 돌보는 데 있어서 우리의 실행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구십 퍼센트는 먹이고 십 퍼센트만 가르치기를 배워야 한다. 먹이는 것은 성경이나 교회 역사로부터 여러 가지 본을 제시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수세기에 걸친 성도들의 전기를 읽음으로 우리는 스스로 자양분을 공급받으며 일종의 양육을 체험한다. 여기에서의 요점은 다른 사람들을 먹이고 양육하는 가장 좋은 길은 그들에게 합당한 본을 보이는 것이라는 점이다. 만일 본이 없다면 양육이 있을 수 없다. 오직 본을 보임으로만 우리는 다른 이들을 먹일 수 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바울은 자신을 전파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울은 그리스도를 사는 자신의 생활을 그의 영적인 자녀들에게 먹이고 있었다. 이것은 바울의 생활 방식이 그의 영적인 자녀들을 먹이는 데 사용되었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자신이 데살로니가에 온 것, 그의 전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방식, 그의 생활 방식을 강조했던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라이프 스타디, 13장, 126-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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