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5 새 예루살렘(3)
진리100선
생명강가 2012-06-05 , 조회 (38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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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교통
열여덟째 항목은 이 성에 참된 교통이 있다는 것이다. 이 교통은 보좌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문들에 이른다.
이 교통은 생명의 공급(나무)과 생명의 길과 함께 있는 생명의 흐름(강) 안에 있다(계 22:1―2).
그러나 이 교통은 우리 가운데 있는 교통일 뿐 아니라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교통이다.
그것은 수평적일 뿐 아니라 또한 수직적이다. 우리가 생명 공급을 누리며, 생명의 길에서 행하며,
생명의 흐름 안에 있을 때 자동적으로 우리는 서로 교통을 갖게 된다.
우리는 모든 성도와 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합당하고 참된 교통을 갖는다.
당신의 체험을 생각해 보면 이것이 사실임을 알 것이다. 우리는 다음에 이 흐름, 이 교통에 대해 더 볼 것이다.


왕권과 제사장 직분
우리는 교통이 생명의 흐름 안에 있음을 보았다. 이제 우리는 또한 보좌(계 22:1)에 관해서도 보아야 한다.
보좌는 권위를 나타내며 생명 안에 있는 합당한 교통은 항상 보좌의 권위에 관계된다.
다른 말로 하면, 권위는 왕권과 관련되고, 교통은 제사장 직분과 관련된다.
새 예루살렘의 모든 거주자는 왕들이요, 제사장들이다. 하나님의 건축에는 이 두 방면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는 왕권, 즉 권위가 필요할 뿐 아니라 또한 제사장 직분, 즉 교통도 필요하다.
구약은 하나님의 건축에 관한 모든 구절에서 이 원칙을 분명히 설명한다.
모세는 성막의 건축에 있어서 왕권을 대표했고, 대제사장 아론은 제사장 직분을 대표했다.
이들 모두는 함께 교통을 가졌었다. 성막은 권위와 교통에 의해 건축되었다. 솔로몬 왕은
첫 번째 성전 건축에서 권위를 대표했고, 제사장 직분 또는 교통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이 거기에 있었다.
70년간의 포로 생활 후에 건축의 회복에 있어서는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있었다.
스가랴 6장은 하나님의 성전의 건축자이신 그리스도를 묘사한다.
그분의 어깨 위에는 왕권과 제사장 직분의 두 직임이 있다.
왕으로서 그분은 권위를 소유하고 있고, 제사장으로서 그분은 교통을 갖고 계신다.
교회의 건축은 오직 두 직무, 즉 권위와 교통, 왕권과 제사장 직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만약 교회가 건축되려면 권위와 질서가 있어야 한다.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주(主)되심, 왕권에 복종해야만 한다.
이것이 우리를 모든 종류의 혼돈으로부터 구출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혼돈으로 충만하다.
그러나 교회의 건축에는 결코 어떤 혼돈도 있어서는 안 된다. 작은 혼돈조차도 건축을 허물어뜨린다.
어떤 건축 청부업자라도 건축하는 동안에는 합당한 질서가 유지되어야만 한다고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왕권과 제사장 직분을 체험해야만 한다.
수직적으로는 질서와 권위가 있고, 수평적으로는 교통이 있다. 이러한 방법으로 교회 건축은 실현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머리되심 아래서 더 많은 교통이 필요하다. 그때 우리는 질서와 흐름을 가질 것이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모든 재료가 함께 모여지고 건축의 실재가 실현되고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의 모양을 닮은 성벽
스무째 항목은 성을 둘러싼 벽에 관한 것이다.
성벽의 모양은 벽옥인데 이는 계시록 4장 3절에서 하나님의 모양을 묘사한 것과 같다(계 21:18).
이것은 성의 벽이 하나님의 모양, 하나님의 모습을 표현함을 의미한다.


성벽의 분별과 보호
스물한째 항목은, 이 벽의 목적에 관한 것이다. 성벽의 기능은 통속적인 것들로부터
거룩한 것을 분별하는 것,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하나님께 속한 것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러한 분별하는 벽은 또한 보호이다.
어떤 집의 벽은 안과 밖을 분별하는 요소이고 그러한 분별은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보호한다.
거룩한 성의 벽은 참된 분별이다. 이 벽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거룩하며 밖에 있는 모든 것은 통속적인 것이다.
이 벽은 또한 성안에 있는 모든 것에 완전한 보호를 제공한다.
바로 하나님의 모양이 이 벽의 분별하는 요소이다.
지방 교회가 하나님의 모양 안에 있으면 있을수록 세상과 통속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더 분별된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모양을 얻는가?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생명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모양을 얻을 수 있다.
만약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흐른다면 우리는 바로 그분의 모양 안에 있게 될 것이고,
그분의 모양은 교회의 분별하는 능력이 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왜 그렇게 세상 사회와 유사한가?
왜냐하면 기독교 안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밖에 하나님의 모양이 결여되었다.
왜냐하면 안에 그분의 생명의 흐름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오!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흘러 우리가 밖에 하나님의 모양을 지니기를!
이것이 교회를 통속적이고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분별되게 할 것이며,
동시에 그 많은 손상시키는 영향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다.


벽의 건축
다음으로 성의 보호인 이 분별하는 벽은 건축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하루저녁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벽은 보석으로 건축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참된 건축은 이 분별의 면에 있다.
모든 것이 정금인 성은 신성한 본성을 상징하고 이 본성은 많은 부분의 건축을 포함하지 않는다.
성의 모든 문들은 진주들인데 이는 어떤 분량 만큼만의 건축을 가리킨다.
그러나 벽은 성의 건축의 주된 부분이다.
우리가 본 것같이 분별하며 보호하는 요소인 이 벽은 하나님의 모양을 닮았다.
그것은 높이가 144규빗, 즉 12곱하기 12규빗인데 이것은 완성 중의 완성을 뜻한다. 그 벽은 참으로 높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그러한 높은 벽을 가지고 편협한 모양을 보여 준다고 비난한다.
많은 때 우리의 벽은 충분히 높지 못하다. 우리는 모든 통속적인 것들로부터 지켜지기 위하여
144규빗 높이의 벽을 가져야 하고, 이 벽은 보석들로 건축되어야 한다.
흙벽돌을 만들기 위한 진흙을 찾아내기는 아주 쉽지만 보석을 발견하기란 매우 어렵다.
우리는 하루저녁에 많은 양의 흙벽돌을 쉽게 생산할 수 있지만, 한 달 동안에 보석 한 조각을 얻기란 매우 어렵다.
보석은 많은 변화되는 일을 요구한다. 진흙 건물을 건축하는 것은 쉽지만 변화되는 것은 매우 느리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양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벽옥의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기억하라.
오늘날 우리는 진흙들이다. 우리는 벽옥으로 변화되어야만 하며, 144규빗의 높이로 건축되어야 한다.


벽의 척량
스물셋째 항목은 벽의 척량이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계 21:17)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것이 마치 천사와 같은 사람의 상황에 있음을 상징한다.
누가복음 20장 35절, 36절은 부활 안에서 사람이 천사와 같이 될 것임을 계시한다.
그러므로 벽의 건축은 부활 안에서이다. 그것은 천연적인 생명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요약하건대, 우리는 벽의 몇 가지 특징을 보았다.
a) 벽은 하나님의 모습과 모양이다. b) 벽은 분별하는 요소이다. c) 벽은 보호를 제공한다.
d) 벽은 아주 높이 건축된다. e) 벽의 돌은 변화된 재료이다. f) 벽은 부활 안에 있는 것이다.
오! 이 성의 모든 항목이 그렇게 풍성하다. 그것은 교회 건축의 모든 측면을 계시한다.
성경에 교회 생활에 관해 그렇게 풍성하게 다룬 부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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