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6 새 예루살렘(3)
진리100선
생명강가 2012-06-06 , 조회 (52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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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치수
스물넷째 항목은 이 성이 같은 크기의 세 차원―길이, 넓이, 높이―을 가졌다는 것이다(계 21:16).
온 성경에서 세 차원이 모두 같은 구조물이 있다면 오직 지성소(至聖所)뿐이다.
성막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지성소는 항상 세 차원이 같다.
성막에서 그것은 10곱하기 10곱하기 10규빗이었고, 성전에서 그것은20곱하기 20곱하기 20규빗이었다(왕상 6:20).
새 예루살렘의 온 성은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같다. 이것은 온 성이 지성소임을 증명한다.
거룩함(聖)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을 계시하고, 의는 하나님의 길이요,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성이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거룩함이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으로부터 분별된 분이시기 때문이다.
새 예루살렘은 절대적으로 분별되고 하나님과 연합된 성이다.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분별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과의 연합을 체험할 때마다 참된 분별과 참된 거룩함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우리와 연합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갖는다면,
우리는 그러한 것에서 거룩함을 체험한다. 거룩함은 통속적인 것으로부터의 분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과 연합되면 될수록 당신은 더 거룩해진다.
당신은 일반적인 모든 것으로부터 분별되고 분리될 것이다.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와 연합된 하나님께 속한 것을 갖는다는 것이다.
거룩함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고 본성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에 있지 않고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되었는가에 있다.
모든 것으로부터 초연한 것이 거룩함이 아니다. 거룩함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과 연합됨을 체험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히브리서 12장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그분의 거룩함에 참여케 하고자 우리를 징계하신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분과 연합됨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본성에 참여케 하기 위해 우리를 징계하신다는 의미이다.
새 예루살렘은 절대적이고 완전한 하나님과의 연합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거룩한 성이다.


새 예루살렘
스물다섯째 항목은 이 성의 이름에 관한 것이다. 왜 새 예루살렘(계 21:2)이라 불리는가?
무엇이 새로움인가?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새롭기 때문이다.
교회 생활에서 우리는 거룩함과 새로움이 필요하다. 교회 생활은 일반적이지 않아야 하고, 교회 생활은 늙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어떤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할 때, 우리가 받는 유일한 인상은 늙었다는 느낌뿐이다.
에베소서 5장에서 교회는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티는 손상된 무엇인가를 말하는 반면, 주름은 늙음을 상징한다. 교회는 티가 없어야 하고,
교회는 늙음으로 인한 주름잡힌 것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가 늙은 교회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다! 교회는 매우 새롭고, 늙음의 흔적조차 없는 것이다. 교회는 매일 새로워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를 매일 매일 체험한다면, 이러한 새로움을 유지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에 있어 매일 매일 자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늙은 어떤 것을 계속 반복할 것이다.
우리의 체험이 지난해에는 새로웠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올해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많이 늙은 것이다.
우리는 새로움을 갖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야 한다. 교회는 한 새사람이다.
그것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우리가 한 가지 요소를 관찰해 봄으로써 어떤 지방 교회가 얼마큼 성장했는지 말할 수도 있다.
즉 만약 집회의 상황과 분위기가 올해도 지난해와 같다면, 거기에는 늙음이 있는 것이다. 자람이 없었다는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만약 교회가 계속 자란다면 집회는 계속적으로 새로워질 것이다.
거룩한 성에는 생명나무가 매달 새로운 과실을 맺는다(계 22:2).
그리스도는 너무 풍성하시므로 우리는 그분을 결코 고갈시킬 수 없다!
우리는 새로움 안에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체험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새로움과 신선함은 교회가 자라고 있다는 증거이다.


빛이신 하나님
스물여섯째 항목은 이 성에 사람이 만든 어떤 빛이나, 해와 같은 자연적인 빛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계 21:23, 22:5).
교회 생활에서 우리는 우리의 빛이신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을 가졌기 때문에 이들 외의 어떤 빛도 필요 없다.
천연적인 빛은 우리의 천연적인 시력이나 통찰력을 의미한다.
많은 때 교회 집회에 많은 형제자매들이 그들의 천연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때때로 집회에 사람의 손으로 만든 빛을 가져온다.
교회 생활에서 천연적인 빛과 만들어진 빛은 둘 다 처리받고 거절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한다.
그럴 때 그리스도 안에 계신 바로 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빛이 되실 것이다.
무엇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빛인가? 가령 지방 교회 안에 정신이 온전치 않은 형제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므로 누군가가 그에게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야 한다고 추천한다. 이것은 사람이 만든 빛을 의미한다.
그러면 당신은 우리가 이 형제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을 것이다.
우리는 기도해야 하고, 심지어 때로는 금식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적인 방법을 거절하고,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
그분은 우리의 빛이 되실 것이다. 그분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우리에게 알게 하실 것이다.
모든 일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방법, 인간적인 빛뿐 아니라 천연적인 방법, 천연적인 빛도 거절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신뢰해야 하고, 그분이 우리의 빛이심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더 체험해야 한다.
거룩한 성에 오직 하나님만이 계신다. 하나님 자신이 모든 면에서 우리의 체험이 되어야 한다.
어떤 형제들은 너무 많은 빛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가진 빛들은 햇빛, 달빛, 별빛, 촛불, 등잔불, 전깃불 등등이다.
그들은 너무 많은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 교회 생활에서 우리는 이런 종류의 빛들을 내려놓는 것을 배워야 한다.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의 빛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그분이 빛이요, 길이시다! 그분이 모든 것이시다.
우리는 모든 다른 길들과 빛들을 거절해야 한다. 이것을 실행하기 위해 몇 가지 실제적인 공과를 배워야 한다.


밤이 없음
스물일곱째 항목은 새 예루살렘에 밤이 없는 것이다(계 21:25, 22:5).
우리는 이미 낮과 밤이 새 땅에서도 계속될 것임을 지적했다. 왜냐하면 거기에 여전히 해와 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룩한 성을 비추시기 때문에, 해와 달이 필요 없다. 따라서 성안에 밤이 없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밤에 우리는 피곤하여 잔다. 그러므로 밤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결코 피곤하지 않을 것임을 상징한다.
새 예루살렘에서 우리는 더 이상 자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부활의 능력을
계속적으로 체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옛 창조 가운데 있기 때문에 피곤하게 된다. 밤은 옛 창조에 속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 생활에서 우리는 여전히 육체적으로 옛 창조 안에 있다. 따라서 항상 피곤한 어떤 기간이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결코 피곤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결코 영 안에서 지치지 말아야 한다.
교회 안에 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두 흐름과 두 성
스물여덟째 항목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온 성경에 걸쳐서 두 성과 함께 두 흐름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흐름은 사탄의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흐름이다.
사탄의 흐름에는 큰 바벨론이라 불리는 성이 있고(계 17:5), 하나님의 흐름에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있다(계 21:2).
계시록은 이 두 성을 계시한다. 큰 바벨론은 다름 아니라 사탄과 인류의 연합이다.
하나님의 눈에 바벨론은 모든 세상적인 사람들로 구성된다.
다른 한편으로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과의 연합이다.
이들 두 성은 결코 혼합될 수 없다. 거룩한 성은 항상 큰 바벨론으로부터 분별되고,
큰 바벨론은 항상 거룩한 성을 손상시키기 위해 기회를 찾고 있다.
결국 하나님은 큰 바벨론을 심판하고 거룩한 성을 건축하기 위해 개입하신다.
만약 오늘날 교회가 충분히 건축된다면, 항상 모든 세상적인 것들 위에 틀림없이 심판이 있을 것이다.
세상적인 것은 바로 큰 바벨론의 요소이다.
만약 우리가 세상적인 어떤 것을 교회의 건축 안으로 가지고 온다면, 그것은 거룩한 성과 바벨론을 섞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이것을 허락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그분 자신을 수호하시기 위해 오실 것이다.
우리는 교회 건축이 세상적이고 바벨론 성에 속한 어떤 것들과 그 요소들로부터 분별될 수 있도록 항상 경계해야만 한다.
이 모든 항목들을 기도 안에서 주님께 가져가기를 바란다. 교회를 위하여 이 모든 항목에 관하여 기도하라.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헛되지 않음을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이 땅 위에서 성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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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결코 피곤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결코 영 안에서 지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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