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5:19 …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무엇을 하시든지 아들도 그와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30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하므로 나의 심판은 공정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각주]
아침의 누림
주님은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으셨다(요 5:19). 이것 또한 제자들에게 하나의 본이었다. 그분을 통해 온 우주가 창조되었지만 그분은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으셨다. … 그분은 누구든지 그분을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그분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사셨다.
대학에서 학식이 있는 교수는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신이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들을 드러내 보이려고 많은 것을 행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의 교수와 같지 않다. 우리는 예수님의 복사판인 오늘날의 하나님-사람들이다. 우리는 자신을 부인해야 하며, 어떤 일이든 스스로 하려는 의도를 갖지 말고, 모든 것을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려는 의도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주님과 함께 모든 것을 함으로써 자기를 부인하라는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이다. (고봉 메시지 14권, 하나님-사람의 생활, 186쪽)
오늘의 읽을 말씀
주님은 그분 자신의 뜻을 구하지 않으셨고, 자신을 보내신 분의 뜻을 구하셨다(요 5:30하). 먼저,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셨다. 둘째로, 주님은 그분의 의사와 의도와 목적을 부인하셨다. 그분은 오직 그분을 보내신 분의 뜻만을 구하셨다. 우리 모두는 다음 한 가지를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즉 우리는 어떤 일을 하도록 보냄을 받을 때, 그것을 우리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는 기회로 삼지 말아야 한다.
어느 날 나는 상하이에서 항저우로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니 형제님이 내게 “위트니스 리 형제님, 어떤 목적으로 형제님은 항저우에 가려고 합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그곳에 있는 형제를 방문하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그것이 잘못된 대답이라고 말했다. 대신에, 주님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간다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 우리 자신의 목적, 목표, 의사를 갖지 않고 순수한 마음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보내시는 주님의 의사와 목적과 목표와 의도를 구하며 가야 한다. 이것은 우리 편에서 많은 배움을 필요로 한다.
종종 어떤 형제들은 나에게 어떤 곳을 방문해달라는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고 묻는다. 내가 기본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그곳에 가는 것이 다만 주님의 목적, 주님의 취지, 주님의 목표, 주님의 의사, 주님의 의도, 곧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여러분의 의도와 뜻을 이루기 위한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인가?”이다. 우리 자신의 의도를 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순수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로 정결하게 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주님, 제 자신의 의도와 의사에 따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나가는 데서 저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주 예수님은 결코 자신의 의사나 자신의 목적이나 자신의 관념이나 자신의 의도를 구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순수하게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구하셨다. (고봉 메시지 14권, 하나님-사람의 생활, 186-188쪽)
하나님의 신약 경륜 안에서의 그분의 마음과 뜻, 하나님의 큰 기쁨, 하나님의 뜻의 의결, 하나님의 목적은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의 확장과 표현을 위해 몸을 갖는 것이다(엡 1:9-11, 22-23, 3:9-11). 사람의 몸은 그 사람의 확장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확장이며, 그리스도의 이 확장은 그리스도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하늘들을 창조하시고, 땅과 함께 많은 항목들을 창조하시고, 결국에는 인류를 창조하신 것은, 구원받고 거듭나고 거룩하게 되고 새롭게 되며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된 사람들로 구성된 몸을 얻으시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바로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를 위한 몸을 갖기를 원하신다.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체현되시고, 이 그리스도는 오늘 그분의 확장과 표현을 위해 몸이 필요하시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확장의 일부로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표현의 일부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뜻이다. (교회의 실지적이고 유기적인 건축, 12-13쪽)
추가로 읽을 말씀: 교회의 실지적이고 유기적인 건축,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