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 양식 봄장로 6주 6일
오늘의 양식
주님의 노예 2012-07-05 , 조회 (20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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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9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통하여 그분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통 안으로 부름받았습니다.

12:23 우리는 덜 귀하게 여기는 몸의 지체들에게 더욱 귀한 것을 입혀 줍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들은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게 되지만,

27 여러분이 곧 그리스도의 몸이며, 여러분 각 사람은 그 지체들입니다.

[각주]

아침의 누림

골로새서 1장 15절부터 17절까지는 그리스도를 창조물 중 첫째로, 곧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으뜸으로 계시한다. 그리고 1장 18절은 그리스도께서 몸의 머리로서 가장 먼저 부활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러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새 창조물인 교회 안에서 으뜸이시다(고후 5:17, 갈 6:15). (골 1:18, 각주1)

오늘의 읽을 말씀

신성한 교통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사는 것의 실재이다. 수세기 동안 주님은 교통의 부족으로 인해 좌절당하셨다. 요한계시록 22장 20절에서 주 예수님은 “내가 속히 가겠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거의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오시지 않았다. 그 이유는 믿는 이들이 개인적이고 독립적이며 의견이 분분하고 분열적이기 때문이다. … 믿는 이들은 마치 고삐 풀린 말과 같다. 신성한 교통이 믿는 이들을 통제해야 하는데, 오늘날 아무것도 그들을 통제할 수 없다. … 우리는 신성한 교통 안에 제한받아야 한다. 이 교통 안에 제한될 때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 안에서 지켜지고 사역의 일은 계속해서 전진한다. 교통에서 벗어날 때 모든 것이 끝난다. 모든 것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이 교통이다. 교통하기를 배운다면 우리는 특별히 주님의 일에서 유익을 많이 얻을 것이다.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삼일 하나님, 237쪽)

오, 우리에게는 몸의 이상이 얼마나 필요한지! 우리는 부담을 갖고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한다. “주님, 몸의 이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스도인이 되고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저는 몸 안에서 건축되어야 합니다. 저는 실지적인 방식으로 살아 있는 몸의 지체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반드시 몸 안에서 다른 이들과 교통을 가지고 연결되어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이상, 44-45쪽)

우리는 교통해야 한다. 동역자는 어떤 일을 할 때 다른 동역자들과 교통해야 한다. 한 장로는 다른 장로들과 교통해야 한다. 교통은 우리를 고르게 하고 … 조절하며 … 조화시키고 … 연합시킨다. 우리는 함께 동역하는 다른 성도들과 교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교통은 우리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우리에게 멈출 것을 요구한다. 교회생활과 주님의 일에서 동역할 때 우리는 모두 교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한다. (신성하고도 비밀한 영역, 103쪽)

회복은 몸을 위한 것이지 어떤 개인이나 단순히 어떤 한 지방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하려고 한다면, 몸, 곧 회복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많은 문제들이 몸을 보는 것과 몸을 관심하는 것이 부족한 데서 온다. 우리는 모두 진리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 진리를 실행하는 것은 몸을 관심하는 것이다. 때때로 몸은 강하기도 하며, 또 약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몸이다. 우리가 진리로 돌아와 몸 안에 있는 합당한 질서를 관심한다면, 몸은 즉시 더욱 강해질 것이다. 모든 문제는 한 가지, 곧 몸을 보지 못하고 몸을 알지 못하고 몸을 관심하지 않는 데 기인한다. 우리는 몸을 존중해야 한다. (교회생활 안에서 소요의 원인이 되는 문제들, 57쪽)

그 영께서 믿는 이들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그 영의 나타남인 모든 은사들은 몸의 유익과 건축을 위한 것이다. … 고린도 성도들이나 수세기에 걸친 다른 많은 믿는 이들과는 달리 바울은 대단히 많이 몸을 의식하고 몸을 중심 삼았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 이어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몸에 관하여 길게 이야기한다. 바울의 의도는 그들을 자기만을 관심하는 데서 구출하여 다시 몸을 관심하게 함으로써 더 이상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지 않고 몸의 건축을 위하게 하려는 것이다. (신성한 삼일성의 신성한 분배하심, 389-390쪽)

추가로 읽을 말씀: 주의 회복의 다섯 가지 강조점, 1장

사람의 영 안에서 봉사함,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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