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6:4 다만 우리는 모든 일에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사역자들로 추천합니다. 곧 우리는 많은 인내를 하고 환난과 궁핍과 곤경에 처하고
골 1: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받는 나의 고난을 기뻐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웁니다.
아침의 누림
주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후 그 영께서 그분 위에 임하셨다. 그런 다음 주님은 그분의 움직임 안에서 일하러, 곧 사역하러 나가셨다. 우리는 주님께 생활과 일이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보았다. 그분의 생활은 그분의 일이었으며 그분의 일은 그분의 생활이었다.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그분의 일을 사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분은 사역을 사셨다. 주님은 전파하고, 가르치고, 귀신을 내쫓고, 병든 사람을 고치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는 생활을 사셨다. 그분께는 오직 한 가지, 그분의 일이자 움직임이자 사역인 그분의 생활만이 있었다. 주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든, 무슨 말씀을 하시든, 어디에 가시든, 그 모든 것은 그분의 생활의 일부였다. (마가복음 라이프 스타디, 57장, 491-492쪽)
오늘의 읽을 말씀
그리스도의 생활이 그분의 일이었듯이,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의 생활도 우리의 일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을 위한 우리의 사역에 부합하는 생활, 즉 주님을 위한 우리 봉사의 근거와 버팀목이 되는 생활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의 결론, 그리스도, 526쪽)
오늘날 기독교 세계에서나 세속적인 세계에서나 모두 사람의 존재보다는 사람이 하는 일에 더 관심을 집중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로 일이나 사역을 주목할 뿐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존재는 소홀히 한다. 그들은 일꾼과 사역자들보다는 일과 사역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일이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보다는 우리의 존재를 더 관심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를 주의하시며 어떤 부류의 생활을 사는지를 주의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먼저 신약의 사역을 제시한 후에 계속하여 이런 탁월하고 놀라운 사역에는 뛰어난 생활을 하는 뛰어난 사역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지보다 우리의 존재를 더 관심하신다는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은 반드시 우리의 존재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더욱이 우리의 어떠함은 우리의 일과 부합되어야 한다. 즉 우리의 존재가 우리가 하는 일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반드시 우리의 일과 부합되어야 한다. … 새 언약의 사역자들은 모든 것을 충족시키고 완전히 성숙한 생명이자, 사역을 수행할 수 있도록 모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생명, 즉 어떤 대우도 견딜 수 있고 어떤 환경도 받을 수 있으며 어떤 조건에서도 일할 수 있고 어떤 기회도 붙잡을 수 있는 … 생명으로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 (고린도후서 라이프 스타디, 39장, 355-356쪽)
우리는 구속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에는 참여할 수 없을지라도, 만일 우리가 그분께 신실하다면 그분의 몸의 산출과 건축을 위한 그분의 고난에 참여해야 한다. 바울은 이 점에 있어서 우리의 본이었다. 그는 회심한 후 즉시 그리스도의 이러한 고난, 곧 몸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이 땅에 사셨을 때 끊임없이 고난을 받으셨다. 그분의 생애의 기록에 따르면, 그분의 이름인 예수는 고난의 사람, 슬픔의 사람을 의미한다(사 53:3). 그러므로 예수님의 환난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나사렛 예수님을 따르며 고난과 박해를 받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데 있어서 초기의 사도들을 따라야 한다. 우리는 또한 교회 건축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교통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일의 목표는 반드시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복음 전파나 성경을 가르치는 그러한 활동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는 환영을 받고 인정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전파나 가르침의 목표가 교회 건축이라면 우리는 종교인들에게 반대를 당할 것이다.
괴로움과 고난의 시기 동안 주님 안에 숨을 때, 우리는 그분의 고난의 교통에 참여한다. 이같이 하여 우리는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이다. (골로새서 라이프 스타디, 12장, 115, 117-118, 122쪽)